일평균 1만5000명, 총 100만명 설비복구 참여···완전복구 내년 1월 18일 목표
“경영진 판단으로 태풍 오기 전 생산라인 가동 중단···골든타임 지키고 피해 빠르게 복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2후판공장이 이달 14일부터 재가동을 시작해 후판을 생산하는 모습. /사진=포스코
포스코 포항제철소 2후판공장이 이달 14일부터 재가동을 시작해 후판을 생산하고 있다. / 사진=포스코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포스코 포항제철소에 태풍 침수 피해가 발생한지 78일(11월 23일 기준)이 지났다. 올해 9월 6일 태풍 힌남노는 시간당 101mm, 강수량 4시간 기준 354.5mm의 강우를 뿌렸다. 기상청은 4시간 동안 205.9mm만 내려도 500년 만에 오는 비의 양이라고 말하는데, 포항에는 2배 가까운 수준이 쏟아진 것이다.

이 폭우로 포항제철소 인근의 냉천이 범람해 여의도 면적의 약 1.2배에 달하는 제철소 지역에 약 620만톤(t)의 흙탕물이 유입됐다. 이로 인해 수전변전소가 손상돼 제철소 전 지역에 정전이 발생했고 열연과 후판, 선재, 냉연, 전기강판, 스테인레스강(STS) 전 압연라인이 침수됐다. 제품 창고도 피해를 입어, 재고 132만톤 중 96만2000톤의 제품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나 힌남노 피해가 나타난지 78일째인 지난 23일 찾은 포항제철소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수많은 인력이 투입돼 빠르게 복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침수 이후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김학동 부회장(복구단장)을 중심으로 한 ‘태풍재해복구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안전하고 효율적인 복구 작업이 실시돼 온 것으로 전해졌다.

포항제철소에서 만난 천시열 포항제철소 공정품질부소장은 “78일간 100만여명의 헌신적인 참여로 복구 작업이 예상보다 빠르고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포스코와 협력사 임직원뿐만 아니라, 포항 시민과 해병대 등이 일치단결해 일평균 1만5000여명이 설비복구에 참여하면서 자체 성능복원과 납기단축 등으로 복구 기간을 단축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포항제철소 직원이 3고로에서 작업하는 모습. /사진=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이 3고로에서 작업하고 있다. / 사진=포스코

천 부소장은 글로벌 철강소마다 천재지변으로 인해 큰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복구까지 확보해야하는 데드라인인 ‘골든타임’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쇳물을 녹이는 고로의 온도는 약 1500℃다.

포스코의 경우 생산라인 가동 중단으로 고로가 식게 되면 6.5일 안에 다시 고로 온도를 올려야 한다. 6.5일이 골든타임인 것이다. 이를 넘길 경우 쇳물이 굳어버리는 ‘냉입’ 상태가 돼 더 이상 고로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포스코는 9월 6일 침수 발생 4일 후인 10일부터 고로 재가동에 성공해 골든타임을 지켜냈다. 최악의 상황 만큼은 피한 것이다.

전사적 역량이 집중된 정상화 작업에 포항제철소 18개 압연공장 중 15개가 올해 복구될 예정이다. 현재 1열연과 1냉연 등 7개 공장은 정상 가동되고 있다. 나머지 라인은 내년 1월 18일까지 정비를 끝낸다는 목표다. 포항제철소의 완전 정상화까지 50여일이 남은 셈이다.

현장을 보면 흙탕물 등 토사물은 대부분 정리된 상태다. 벽면에 침수의 흔적인 ‘물때’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생산라인을 가동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철소 임직원들은 이번 침수 피해가 빠르게 복구된 배경에 관해 최고경영진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포스코는 매뉴얼에 따라 힌남노 상륙 1주일 전부터 자연재난대책본부를 가동해 하역 선박 피항과 시설물 결속, 침수 위험 지역에 모래주머니 방수벽 설치 등의 사전 준비를 했다. 또 공장 침수시 화재와 폭발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나타날 수 있어 전 공장 가동 중단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포항제철소 54년 역사상 유례없는 특단의 조치였다.

김진보 포항제철소 부소장(고로 담당)은 “제철소의 심장인 고로 3기가 동시에 가동중단되는 상황은 30여년 근무하는 동안 처음 겪은 일”이라며 “경영진의 가동중단 판단이 없었다면 침수 피해로 고로가 골든타임을 지킬 수 없었거나 모터와 변압기 등 전력기기의 합선·누전으로 대형 화재가 발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지난 23일 2열연공장 복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포스코
포항제철소 직원들이 지난 23일 2열연공장 복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사진=포스코

고로뿐만 아니라, 각 공장의 설비 구동에 핵심 역할을 하는 모터도 빠르게 복구되고 있다. 침수 모터 1만3500대를 자체 수리했는데 불량률은 3%에 불과하다는 게 사측 설명이다. 당초 포스코는 침수 모터 등 설비를 새로 발주할 것을 검토했지만 제작·설치에 1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가능한대로 기존 설비를 직접 복구하기로 했다.

최대 170톤에 달하는 압연기용 메인 모터 복구작업은 손병락 EIC기술부 명장의 주도로 이뤄졌다. 그와 그의 소속팀원은 47대에 달하는 침수 메인 모터 중 33대를 자체적으로 분해·세척·조립해 복구에 성공했다.

손병락 명장은 “포항제철소에 1977년 입사해 올해 만 45년이 지났는데, 자식 같은 설비가 물에 잠긴 모습에 처음에는 망연자실했다”며 “하지만 소중하게 돌봐온 만큼 폐기하지 않고 다시 살릴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 분해 작업에 돌입했고 대부분의 모터가 현재 정상가동되고 있다”고 전했다.

포항제철소에서 만난 수많음 임직원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느꼈지만 동시에 자신감도 보였다. 시장에선 물에 잠긴 설비를 다시 살리지 못할 것이라고 봤고, 생산라인의 물을 빼내는 데만 수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임직원과 민·관·군의 수많은 이들이 합심해 78일 만에 피해가 컸던 압연공장 등을 대부분 정상화하는데 성공했다.

내년 1월 18일까지 모든 생산라인이 가동한다는 목표도 단순한 청사진이 아닌 현실 가능한 목표로 느껴진다. 태풍보다 강했던 100만명의 땀과 열정이 이뤄낸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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