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바이든·빌 게이츠 만나 대규모 미국 투자 결정
총수의 빠른 의사결정과 결단력이 큰 몫···과거 하이닉스 인수 성공으로 과감하고 빠른 판단력 입증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최태원 SK 회장의 성공 경험치와 과감한 결단력이 3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결정을 이끌었다. 그는 최근 한 달간 조 바이든 대통령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등 미국의 정·재계 핵심 인사를 만나 이같은 판단을 내렸다.
최 회장은 지난달 26일 미국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화상면담을 갖고 220억달러(약 29조4000억원) 규모의 대미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한미 양국이 글로벌 경제를 주도할 기술과 인프라 구축을 위해 힘을 모으고, 협력을 통해 핵심 기술과 관련한 공급망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다.
SK의 29조원 투자금은 반도체와 배터리, 그린에너지, 바이오 등 4대 핵심 성장동력에 집중될 전망이다. 세부적으로 반도체 연구개발(R&D) 협력과 메모리 반도체, 배터리 제조 시설 등에 150억달러(약 20조원), 첨단 소형 원자로 등 그린에너지에 50억달러(약 6조7000억원), 세포·유전자 치료제 등 바이오에 20억달러(2조7000억원) 등이 투입된다.
아울러 SK그룹은 지난 15일 빌 게이츠 창업자의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 ‘테라파워’에 2억5000만달러(약 3000억원)의 지분 투자도 진행했다.
테라파워는 빌 게이츠 창업자가 2008년 설립해, 차세대 원자로의 한 유형인 소듐냉각고속로(SFR) 설계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SFR 기술은 고속 중성자를 이용한 핵분열로 열을 액체 나트륨 냉각재로 전달하고, 이 과정에서 증기를 발생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현재 가동 중인 3세대 원전 대비 안전·경제성 측면에서 한 단계 나아간 4세대 기술이다.
대미 투자에 더해 테라파워까지 한 달 새 3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가 진행된 셈이다. 이 과정에는 최 회장의 빠른 의사결정과 결단력이 큰 몫을 했다는 후문이다.
기업은 일정금액 이상의 투자 및 자금을 집행할 때 이사회나 계열사 CEO(최고경영자) 등과 합의 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SK의 30조원 투자는 이러한 일반적인 절차를 최소화하고 최 회장의 판단에 기반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SK 내부에선 이번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기존에 발표한 70억달러(약 9조3000억원) 규모의 미국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 확장 계획에 이어 30조원까지 더해져 자금 융통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최 회장은 미국 사업 확대와 소형원전 사업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투자를 단행했다. 2011년 하이닉스 반도체(현 SK하이닉스) 인수 결정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가 하이닉스를 인수하려 했을 때 그룹 분위기는 회의적이었다. 반도체 시장의 큰 불확실성과 3조5000억원에 달하는 인수금액이 큰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인수 10여년이 흐른 지금 SK하이닉스는 그룹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는 알짜 기업으로 성장했다. 통신과 정유 등 국내 사업에 묶여있던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도 크게 변화했다. 최 회장의 사업 안목이 SK의 딥체인지를 가져온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SK의 대규모 투자 및 인수 결정에 있어 최태원 회장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며 “그룹 총수인 점에 더해 하이닉스 인수라는 성공 경험치가 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한편, 빌 게이츠와 함께 진행하는 소형 원전 사업은 그간 SK가 진행해보지 않은 ‘신사업’이다. 실제 사업을 담당할 관련 계열사에선 생소한 영역이다.
SK는 “원자로 관련 투자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테라파워의 차세대 소형 원전 기술과 SK의 에너지·바이오 포트폴리오가 연계되면 강력한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한다”며 “테라파워와의 업무 협력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