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파운드리 투자 1兆 늘릴 동안 TSMC 22兆 확대
오너의 과감한 결단 필수···“총수들의 경영족쇄 풀 시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신동빈 롯데 회장. /사진=삼성·롯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신동빈 롯데 회장. /사진=삼성·롯데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의 광복절 특별사면이 유력한 상황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의 삼중고로 한국경제가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만큼 ‘경제 살리기’라는 명목 아래 사면 명단에 기업인들의 이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총수가 수년 만에 사법 리스크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삼성과 롯데의 경영시계 역시 정상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감지된다.

법무부는 지난 9일 사면심사위원회를 열고 대상자를 논의했다. 위원들은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 등 일부 기업인의 사면이 적정하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6개월을 확정 받아 복역하다가 지난해 8월 가석방됐다. 형기는 지난달 29일 끝났지만, 5년이라는 취업제한 규정에 묶여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면이 확정되면 사법 리스크를 털고 삼성의 경영시계를 정상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 부회장의 경영공백은 삼성전자의 핵심인 반도체 부문에 악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최대 고객사인 퀄컴과 엔비디아는 대만 TSMC에 더 많은 일감을 배분하고 있다.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TSMC의 파운드리 투자규모는 삼성의 4배 수준이다. 선진기술을 확보할 것이란 예측에 고객사들이 TSMC에 일감을 더 많이 분배한 것으로 풀이된다. TSMC의 올해 파운드리 투자액은 40조원, 삼성전자는 11조원 수준이다.

TSMC는 매년 파운드리 투자금액을 크게 늘려왔다. 2020년 18조원에서 지난해 30조원, 올해 40조원 등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2020년 10조원으로 TSMC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지난해 11조원, 올해도 11조원이다.

반도체 분야는 대규모 투자와 장기적 안목이 중요한 만큼, 이를 책임지고 결정하는 단호한 오너십이 필수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반도체 투자 결정처럼 현재도 강한 오너십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파운드리 투자규모를 늘려야하는 시점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사법 리스크로 그동안 부친인 이건희 회장과 같은 과감한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었다. 하지만 특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 국내외 현장을 자유롭게 다니며, 글로벌 생산 거점의 현황을 확인하고 투자규모를 더욱 늘릴 수 있는 경영행보가 가능해진다.

아울러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론이 커지고 있다. 양 국은 반도체 핵심 생산국인 우리나라의 반도체 기업이 서로 본인들의 편에 서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칩4’ 공급망 협의체 가입을 요구 중인데, 중국은 이에 대해 비판적인 논평을 펴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큰 수요처인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난처한 상황에 빠져 있다.

이 위기를 타개할 최적의 인물로 이 부회장이 거론된다. 그는 과거에도 반도체 산업에 외교적 문제가 나타났을 경우 직접 해외로 떠나 이해 관계를 조율했다. 대표적으로 2019년 일본과의 외교 분쟁으로 반도체 소재의 원활한 유입이 어려웠을 때, 이 부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협력사와 릴레이 미팅을 하며 수급 문제를 해결했다.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의 사면에 관해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장의 앞서 말한 것처럼 최고 경영진이 재판에 발목이 잡혀 정상적인 기업 운영이 어려워지면 국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사면이 경영시계 정상화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직·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롯데그룹 상황도 마찬가지다. 신동빈 회장은 이 부회장과 달리 취업제한 대상은 아니다. 그는 2019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선고 직후 ‘시행령 시작 후 형이 확정된 시점부터 취업제한이 적용’으로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이 개정되면서 취업제한의 족쇄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그러나 사법 리스크에 운신의 폭이 좁은 상황이다.

글로벌 기업은 협업을 할 때 오너의 컴플라이언스(법·명령 등의 준수) 상황을 꼼꼼히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신 회장은 사법 리스크에 갇혀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롯데 측은 설명했다.

또한 롯데는 바이오와 헬스케어, 모빌리티 등 신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바이오 사업의 경우 최근 롯데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하고 미국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생산공장을 인수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1조원 규모의 생산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법인을 설립하고 사업구조를 구체화하는 중이다. 모빌리티 역시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분야를 주도하기 위해 글로벌 역량과 뛰어난 가능성이 보이는 기업의 인수합병을 적극적으로 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해외 기업과의 네트워크나 협력이 필수인 만큼 신 회장의 사법 리스크 해결이 롯데에 필수적인 현안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총수들이 국정농단 사건 등에 얽혀 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한지도 어느덧 5년이란 시간이 지났다”며 “이 기간 경영에 수많은 제약을 받아온 만큼 사면을 통해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할 시기”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사면이 확정될 경우 대규모 투자 및 고용계획이 발표될 수 있다는 다소 이른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과거 정부의 기업인 사면 사례를 보면 투자·고용과 같은 경제적 효과가 곧바로 나타난 바 있어서다.

최태원 SK 회장은 2015년 사면 후 메르스 사태로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SK하이닉스에 46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이끌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도 2008년 사면 후 11조원 투자 및 4500명을 채용했다. 롯데도 신동빈 회장이 집행유예로 출소한 2018년 10월 50조원 투자와 7만명 고용을 약속한 바 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현 정부의 기업인 사면 목표는 침체된 경제 살리기”라며 “사면을 기다리고 있는 기업 역시 정부에 응답해 힘든 상황에서도 대규모 투자 및 고용 보따리를 풀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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