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없으면 다양한 AI 연구 사라질 것
미국·중국 AI 놓고 치열한 신경전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인공지능(AI) 원천기술 연구‧개발 핵심 사업인 혁신성장동력 프로젝트 내년도 예산이 편성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자 학계 반발이 거세다. 미국과 중국 등이 AI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과 견줘 글로벌 추세에 한참 뒤처진다는 반응이다. 해당 소식을 접한 연구원 등은 “믿을 수 없다”며 탄식했다.

장준혁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26일 “인공지능은 이제 도입 단계로 막대한 인적, 물리적 자원이 초기에 투입돼야 그나마 지금의 격차를 유지할 수 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며 “중국은 35개 대학이 인공지능학과를 만들고 공산당 차원에서 6조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고 미국은 MIT에서 1조원을 들여 AI 단과대학을 만드는 중인데 우리나라도 GDP(국내총생산) 수준에 비례한 정도라도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中‧美 선두다툼…우리나라 AI 미래만 ‘어두컴컴’

장 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AI회의에 참석했다가 들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사실 확인을 완료한 후 글을 남긴다”고 운을 뗀 뒤 “우리나라 과기정통부 AI연구개발 여기서 좌초하나? 알파고 사태 이후 AI 기초연구역량을 높이기 위해 진행된 플래그십 AI사업도 내년에 종료하고 마무리한다고 한다. 과기정통부 AI 연구개발의중심 축인 혁신성장동력 AI사업에 2020년 신규예산 배정이 중단돼 신규 과제 도출이 없을 것으로 예정돼 있다고 한다”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과거 AI가 홀대를 받아 전 세계적 암흑기였다면 이제는 우리나라만 암흑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나라가 예산을 삭감하는 동안 미국과 중국은 인공지능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 중국은 정부가 나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며 기술력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중국 정부는 2030년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을 앞지르겠다는 목표로 매년 350억위안(약 6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베이징 근교에 138억위안(약 2조2600억원)을 투입해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지능 연구단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중국에 설립된 AI 기업은 1040곳으로 전 세계 AI기업의 20.8%를 차지했다. 특히 베이징에만 AI분야의 기업이 412곳으로 단일 도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한국의 AI 기업은 26곳이다.

중국은 인공지능 인력과 특허 분야에서도 미국과 1, 2위를 다툰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간 AI분야 특허 출원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니혼게이자이가 AI 특허 출원 건수를 집계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특허출원 상위 50개 회사 가운데 중국기업이 19개로 가장 많았고, 이어 미국기업이 12개로 2위를 차지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 1월 발표한 ‘스타트업 사례를 통해 본 2018년 중국 AI 시장 동향’ 보고서를 보면 중국의 최근 10년(2008~2017년) AI 분야의 인력은 1만8232명으로 미국 2만8536명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반면 한국 2664명으로 주요국 중 15위로 중국의 14.6% 수준이었다.

미국도 적극적으로 AI를 육성하고 있다. 최근 MIT는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를 들여 인공지능 대학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 대학은 학제간 연구를 중심으로 한 학위과정을 개설하고 50명의 새로운 교수진을 채용할 계획이다.

◇ “예산부터 프로젝트 선정까지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정부의 AI 관련 사업 기획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혁신성장동력 프로젝트 예산 소식을 접한 뒤 ‘큰 일’이라며 정부의 과제 선정부터 근본적인 문제를 뜯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대학이나 정부연구소는 기업과 달리 중장기를 내다보고 과제가 진행돼야 한다. 그게 학교나 정부연구소가 해야 할 일”이라며 “실패나 실수, 위험성이 있더라도 그것을 감수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과제를 많이 해야 하는데 여태 정부는 그런 과제를 선정하지 않았고, 평가자에 맞춰 대학도 이미 개발한 제품을 조금 응용하는 수준의 과제를 연구하는 수준에 머무르면서 혁신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모험을 해야 혁신이 생기는데 그런 점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달리 정부 과제를 통해서는 다소 무리한 연구도 자행이 돼야 하는데 기존에 나와 있는 연구에서 크게 나가지 못하면서 성과 역시 기대에 못 미쳤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을 통해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과제를 선정하고 평가하면서 성과에 치우치는 근본적인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예산이 줄어들면 대학은 기업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험성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기업은 실험적인 연구를 지원하기가 어렵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 “기업은 학교와 교수를 따져서 상당히 가려서 지원하는 편이다. 정부의 역할이 잘 되는 산업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은 위험하고 실패할 위험성이 있더라도 다양한 발전을 위해 지원하는 것인데 이렇게 지원이 끊기면 그런 연구는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인공지능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한 연구원은 “정부가 나름대로 전략적인 판단을 했다고 하면 존중받아야 하지만 너무 근시안적인 태도인 것 같다”며 “AI는 유행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 등 분위기를 봤을 때 향후 10~20년은 AI 기술이 산업분야에 적용돼서 산업경쟁력을 올리는 트렌드가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가 잘못하다가는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또 “냉전시대 때 미국과 소련이 우주 기술로 경쟁하면서 국가적으로 온갖 지원을 퍼부었을 때처럼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AI를 갖고 경쟁하고 있다”며 “AI에서 다음 세대 산업경쟁력이 결정 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사정은 암울하다. 이대로 가면 정말로 AI 후진국이 될 거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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