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년도 긴축 예산안 의결···산업 예산, 첨단산업·원전·소부장·공급망 강화
수출 부진 속 수출기업 경쟁력 강화책도···총선 앞둔 국회, 예산안 증액 가능성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정부가 역대 최저 수준의 지출 증가율을 담은 내년도 예산안을 내놓았다. 기업과 관련된 산업·통상 분야는 첨단산업·수출 강화에 방점을 뒀고 나눠먹기식 연구개발 예산은 대폭 삭감했다. 세수 감소를 감안할 때 긴축재정은 불가피하지만 현재 경기침체를 감안할 때 추후 국채 발행 등 적극적 재정 역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단 조언이 나온다.

정부는 29일 국무회의를 열고 2024년 예산안을 의결했다. 내년도 예산안의 총지출은 올해 본예산 대비 2.8%(18조2000억원) 증가한 656조9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지출증가율 2.8%는 재정통계를 정비한 2005년 이후 20여년 만에 최소폭이다. 확장재정 기조를 견지했던 문재인 정부의 증가 수준(7~9%대)은 물론 현정부가 처음 편성한 올해 예산(5.1%)보다도 지출 증가율이 낮다. 

내년도 총수입은 국세수입 감소 영향으로 금년 대비 2.2%(13조6000억원) 감소한 612조1000억원이다. 총지출보다 44조8000억원 적은 수준으로 이는 고스란히 재정수지 악화로 이어지게 됐다.

◇산업 분야, 첨단산업·원전·공급망 예산 강화···수출기업 강화책 적극 편성

산업 분야와 연관된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안은 11조2214억원으로 금년(11조737억원) 대비 1.3%(1477억원) 증가했다. 산업에 5조1432억원, 에너지에 4조7969억원, 무역·통상에 1조1114억원을 편성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에 발맞춰 관행적 지원 사업, 유사중복이나 집행부진 사업, 신재생에너지 등 부적정하게 집행된 보조금, 나눠먹기식 연구개발(R&D) 등은 과감히 구조조정 하되 첨단산업 육성 및 수출 총력 증대, 에너지 복지 등 꼭 필요한 분야에 투자를 확대했다”고 말했다. 산업부를 포함한 전체 부처의 R&D 분야 구조조정 규모는 7조원 가량이란 설명이다.

내년 산업 분야 예산은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원전생태계를 조기 복원하며 수출 증대를 지원하는데 방점을 뒀다.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금년(1조9388억원) 대비 2215억원 늘어난 2조1603억원 편성했다. 중소·중견기업에 연구개발(R&D) 자금을 저리로 지원하는 1000억원 규모 융자사업(국가첨단전략산업기술혁신융자)을 신설했다. 최근 신규 지정된 첨단전략산업특화단지 중 내년 기반시설 지원 수요가 있는 포항 이차전지 특화단지 용수시설 구축에 154억600만원을 지원한다. 

첨단전략업종의 외국인 투자 확대를 위해 현금지원 규모도 올해보다 4배 많은 2000억원으로 확대했다. 

첨단산업 인력양성과 적기 공급을 위한 지원도 강화했다. 배터리 산업 현장인력 양성을 위한 아카데미 신설 예산을 새로 37억1000만원 편성해 연간 600명을 교육한다. 현재 운영 중인 반도체아카데미 교육 인원도 올해 520명에서 800명으로 확대하며 관련 예산 또한 금년 대비 85.2% 증액한 42억6000만원으로 편성했다.

산업 분야별 석‧박사 혁신인재 양성에 금년 대비 16.1% 늘어난 1574억7900만원을 지원하고 한미첨단분야청년교류지원사업에 신규로 60억8900만원 투입한다.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바이오·미래차·로봇 등 6대 첨단산업에 대해선 R&D를 확대하고 실증 인프라 구축·기업지원·인력양성 등 지원을 강화한다.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관련해선 국내 생산비중 확대와 글로벌 경쟁력 확대를 위해 209억원 늘어난 1조3476억원을 편성했다. 소재부품기술개발에 올해 대비 21.7% 증액한 1조1410억4500만원, 소재부품산업기술개발기반구축에 6% 늘어난 1844억원, 소부장공급망안정종합지원 예산엔 20.2% 증가한 19억100만원을 각각 편성했다.

산업단지 환경개선, 지역투자 보조 등 지역경제 활성화 지원 예산도 확대했다. 지역 노후산단의 환경개선에 민간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조성된 산단환경개선펀드에 정부 투자액을 올해 대비 약 2배로 확대한다. 복합문화센터·아름다운거리조성 등 노후산단 이미지 개선 사업 예산도 20.9% 늘렸다. 

기업이 지방투자시 받을 수 있는 지방투자 촉진 보조금도 확대했다. 지역에 신증설투자 시 설비보조금 지원비율을 1%포인트 올리고, 수도권 기업의 지방이전 시 중견기업의 입지보조금 지원비율을 5%포인트 상향했다. 

원전 분야 예산 지원을 강화했다. 원전 중소‧중견기업을 위해 시설투자, 운전자금 등을 저리로 지원하는 1000억원 규모 융자 지원 사업을 신설한다. 원전 중소‧중견 기업이 기자재 공급계약 체결 시 선금지급 신청을 위해 필요한 선금보증보험 수수료 지원 예산도 57억8500만원 규모로 신규 편성했다. 

산업부 측은 “원전 기업 지원 예산과 함께 원전 생태계 강화를 위해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 원전해체 기술개발, 중‧저준위 방폐물 2단계 처분시설 준공 등 혁신기술개발과 방폐물 관리 강화를 위한 예산 등도 충분히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안정적인 에너지‧자원 수급을 위해 자원 공급망 예산을 1773억원 증액한 8554억원으로 편성했다. 리튬·희토류 등 핵심광물 비축 확대하기 위해 한국광해광업공단 출자 금액을 526% 늘리고, 석유도 2025년까지 1억 배럴 비축한단 목표다. 

수출 감소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수출기업 지원 예산도 적극 편성했다. 원전·방산 등 대형 프로젝트 수출 지원 등을 위한 예산을 올해 6077억원에서 6853억원으로 확대했다. 해외 마케팅과 해외인증 취득 지원을 강화한다. 수출판로 개척을 위한 해외전시회 참가 지원 단가를 인상하고 수출바우처 지원 규모 및 전문무역상사의 대행수출 지원도 확대한다. 

대규모 프로젝트 수출 지원을 위해 무역보험기금에 선수금환급보증(RG) 특례보증, 플랜트 및 인프라 프로젝트 수주지원을 위한 예산을 출연한다.

정부는 양자협력과 공적개발원조도 추진한다. 통상이슈가 증가하는 유럽연합(EU)과 통상대응을 지원하고 한미일 산업협력을 강화한다. 산업부가 수행하는 산업에너지 등 ODA 6개 사업 전체 규모도 273억원 늘어난 979억원 편성한다.

◇총선 앞둔 국회, 송곳 검증 예고···“긴축 불가피, 침체 감안 국채 고려해야”  

정부 예산안은 다음달 초 국회에 제출, 소관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임의위 심의를 거쳐 오는 12월 본회의 의결을 통해 확정된다. 국회 과반을 점한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정부곳간 수입을 거덜내고, 재정준칙은 지키지도 않았으며 미래대비 투자나 민생사업 예산도 사실상 줄이고 있다며 송곳 검증을 예고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는 대로 사업벌 문제점을 분석하고 실상을 국민께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은 내년 예산안에 대해 건전재정을 위한 정부의 단호한 의지가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미래세대를 위한 건전재정과 민생예산이란 목표를 갖고 심사에 임할 것”이라고 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치 일정상 국회 심사과정에서 여야 모두 예산 증액 필요성이 거론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예산 증액은 감액과 달리 기획재정부의 동의가 필요해 예산이 정부안보다 큰 폭으로 예산을 늘리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 정부 예산안을 두고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도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현재 경제 상황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란 점을 감안했을 때 시기적으로 아쉬운 면이 있단 진단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을 건전하게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타이밍적으로 아쉬움은 있다. 현재 경기상황은 정부 재정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줘야 하는 시점”이라며 “R&D 예산 삭감의 경우 일반 지출처럼 사용되는 부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긍정적으로 봐야 하지만 한편으론 성장 역량과 관련된 핵심 R&D의 과감한 투자 또한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인프라 투자 또한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부의 긴축재정은 세수 어려움을 감안했을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침체국면에 있는 경기를 감안했을 때 추후 국채 발행도 고려할 수 있단 조언이다. 성 교수는 “재정을 무작정 확장하란 의미의 국채 발행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현재 경기 상황에선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재정 역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한단 취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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