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안 준 아빠, 신상공개 되자 “비공개해 달라” 법원에 가처분 신청
형사사건 무죄 판결에 민사적 제재 시도···공익성·긴급성 등 쟁점 될 듯
양육자들 법원 앞 시위 “신상공개 계기와 원인 등 살펴야···신청인 파렴치”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를 비공개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이 접수돼 법원이 심리 중인 가운데, 이 청구를 기각해 달라는 양육자들의 탄원이 이어지고 있다.
탄원인들은 사이트가 공적 사안인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무료사이트인 점, 집행권원(판결문 등 집행력이 부여된 공정증서)을 사전에 확인해 정확한 사실만을 공개하는 점, 악의적 의도나 비방의 문구가 전혀 없는 점 등을 강조했다.
13일 법원에 따르면, 배드파더스 사이트와 관련 SNS, 블로그, 유튜브에 대한 비공개 가처분 신청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민사51부에는 전날 기준 총 25개의 탄원서가 접수됐다. 이날까지 접수되는 탄원서는 100여개에 달할 것으로 양육비 해결 시민단체 관계자는 전망했다.
이번 탄원서 러시는 양육비를 주지 않은 채무자 A씨의 게시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비롯됐다. A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 등에 자신의 신상이 공개되자 지난 9월 법원에 이를 막아달라고 가처분 소송을 냈다.
강남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A씨는 신청서에서 ‘경쟁학원과 학부모들에게 (양육비 미지급 사실이) 노출돼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대치동에도 출강하고 있는데 경력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또 ‘양육비는 건강상 이유나 재정상의 문제로 유보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 ‘신상공개는 개인의 인권과 영업에 피해를 주는 행위다’는 취지의 주장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경우, 배드파더스 사이트 내 일부 게시물이 즉각 삭제될 수 있고, 사이트 전체 폐쇄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양육비 지급 판결, 양육비 이행관리원을 통한 양육비 소송으로도 양육비를 받지 못했던 양육자들이 ‘최후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이트가 법원 결정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2013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양육비를 전혀 받지 못했다’라는 응답이 83%였으며, 지난해 기준으로도 미지급 응답률은 78.8%에 달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이용하더라도 양육비 지급 비율은 31.9%에 불과했으며, 양육비 청구 소송을 한 경우 7.6%, 이행확보 절차를 이용한 경우 8%만이 양육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양육자들은 탄원서에서 ▲배드파더스 활동가 구본창씨는 운영자가 아닌 ‘자원봉사자’인 점 ▲ 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가 대한민국이고 이혼에 따른 양육비 지급은 아동의 생존권과 연결된 공적 사안인 점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한부모가정의 아동권리보호라는 공익성을 인정받은 무료사이트인 점 등을 재판부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게시 내용이 모두 사실인 점 ▲악의의 의도나 비방의 문구가 전혀 없는 점 ▲명예훼손 피해자가 양육비 미지급으로 신상공개자를 자초한 점 등을 강조했다.
가처분 사건에서 A씨는 신상공개에 따른 자신의 명예훼손 및 인격권 침해 정도를 소명해야 한다. 해당내용이 소명된다고 해서 가처분이 신청이 무조건 인용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게시의 목적, 내용, 게시 기간과 방법, 피해의 정도, 게시자와 피해자의 관계, 사이트의 성격 및 규모, 영리 목적 여부, 개방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론을 내린다.
처분의 긴급성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가처분 신청은 현저한 손해가 예상되거나 급박한 상황에서 선제적 처분으로 인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는 “인격권 침해 정도와 표현의 자유, 처분의 긴급성 등을 비교 형량해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앞에서 시위한 양육자들 “‘사적 보복’ 프레임 잘못 돼···본질 살펴야”
양육비 피해자 20여명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가처분 신청을 기각해 달라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15년간 1억원 상당의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했다는 배드파더스 활동가 정유정씨는 “라면을 끓이다 화재로 동생이 사망한 인천 형제사건이 남일 같지 않다”며 “형제의 어머니가 이혼한 전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무총리께서도 양육비 대지급제도는 고려할만한 사항이라고 답변할 만큼 양육비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공감하고 겪을 수 있는 공적사안이다”고 말했다.
이어 “배드파더스 활동가 구본창씨는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구씨는 사이트 운영자들의 활동비와 유튜브 제작이 필요한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하고 있다”며 “신상공개 역시 집행권원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등재신청이 가능하다”고 배드파더스 사이트 공익성을 설명했다.
정씨는 또 “문재인 대통령도 양육비 대지급제도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를 정지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며 “양육비는 더 이상 사인 간 채무로 인식돼선 안된다. 아이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고 국가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청구인 김씨에 대해서도 “김씨가 만약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징역형에 처해져야 하는 범죄자다”며 “자녀들의 양육비와 생존에 대한 문제는 철저히 외면한 채 자신의 명예만을 생각해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은 파렴치하기 짝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아무런 댓가를 받지 않고 오로지 ‘아이들의 생존’이라는 공적 사안에 대해 공익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배드파더스 및 이와 관련된 SNS게시물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제대로 된 역할을 해 줄때까지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 양해연 대표는 “한국의 한부모 가정은 154만 가구에 이르고 현행법으로 정해진 모든 법적 절차를 다 밟아도 10가구당 8 가구, 미혼모부 가정은 10가구당 9가구가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며 “아이들은 결핍된 성장을 하고 있고, 장래 복리마저 침해받아 성년으로 자란 이후에도 고통이 대물림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우리 사회와 국가는 양육비 미지급으로 고통받는 가정과 아이들을 방치했고 그로인해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개설되었다”며 “배드파더스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형사사건을 통해 양육비가 공적인 사안이라는 것으로 증명해 냈고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에서도 양육비 이행강화 법안이 발의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또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공익적 목적으로 진실한 사실을 알린 것은 피해아동보호와 나아가 사회 정의를 위한 것이고,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신상공개의 계기와 원인 등 본질보다 결과에 치중에 ‘사적 보복’ 라는 틀을 만들어 이를 제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이 진정으로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하는 대상은 법원의 판결을 어기고 양육비를 주지 않는 무책임한 어른이 아닌,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어린 아이들”이라며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으로 줄지어 일어날 부당한 법적 분쟁을 막아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