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등 우량주 매수에서 한달만에 고위험 파생상품·바이오테마주 투자에 집중
손실가능성 크지만 묻지마 투자 횡행···금융당국, 동학개미들의 파생상품 투자 제한 검토
동학개미들이 고위험 투자로 분류되는 파생상품이나 바이오테마주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놓고 당초 삼성전자 등 저평가된 우량주를 매수하겠다는 초심에서 변질됐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파생상품이나 테마주 투자는 변동성이 커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동학개미들은 충분한 교육 없이 이런 고위험 투자상품에 쉽게 접근하고 있어 금융당국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고위험 투자' 동학개미, 투기판 변질 논란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4월초부터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KODEX WTI원유선물(H)로 총 1조1882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4월 개인투자자 순매수 상위 10위 가운데 ETF파생상품은 KODEX WTI원유선물(H), KODEX 200선물인버스2X, KODEX 인버스, KODEX 코스닥150선물인버스 등 4개로 이들은 모두 지수 관련 파생상품이다. 앞서 동학개미운동이 본격 확산됐던 3월 초(3월2일~3월6일)에는 개인투자자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이 대부분 삼성전자 등 우량대기업이었다. 개인투자자들의 선택이 대기업에서 파생상품으로 바뀐 것이다.
최근 국제유가가 한 때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급락하고 있는 추세 속에서 개인투자자들의 원유 관련 파생상품 투자는 ‘투기 광풍’이라는 표현마저 나오고 있다. 원유 관련 파생상품 수요가 폭증하면서 유통물량이 씨가 말랐고 유가지표가격보다 상장지수증권(ETN) 가격이 비싸지게 되면서 나타나는 ‘괴리율’은 연일 폭증하고 있다. 전날 장 종료 이후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H) 상품의 괴리율은 848%,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 상품의 괴리율은 214%에 달했다.
한국거래소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이 하루에 50% 하락하면 전액 손실이 확정되는 구조라며 개인투자자들의 섣부른 투자를 말리고 있지만 개인투자자들의 묻지마 투자를 막기는 역부족이다. 결국 한국거래소는 23~24일 이틀 동안 두 상품의 거래를 정지했다. 이로써 앞서 거래정지된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과 함께 국내 증시에 상장된 원유 레버리지 상품 4종은 모두 거래정지가 됐다.
개인투자자들의 묻지마식 바이오기업 투자도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3월 첫 주 당시 코스닥에서 개인투자자 순매수 상위 20위는 다양한 업종이 고루 분포되어 있었지만 이달 들어서는 바이오기업 비중이 높아졌다. 공시나 보도자료를 통해서 코로나19 관련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힌 코스닥 종목이 상한가로 직행했다 급락하는 경우도 연일 쏟아지고 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진단키트 관련 기업 등은 코로나19 사태로 실적반등이 예상되기에 주가 상승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코로나19 관련 개별 바이오 종목의 주가 급등은 코멘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고위험 투자 확산, 금융당국 개입 검토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과거보다 다양한 파생상품을 편리하게 제공하고 있기에 개인투자자들이 파생상품을 집중 매수할 수 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의 확산으로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편의성 역시 대폭 개선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파생상품은 구조가 복잡해 이제 막 주식시장에 뛰어든 주린이(주식+어린이, 투자초보자)들에게는 권하지 말아야 할 투자 상품들로 꼽힌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전 충분한 안내가 부족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최근 개인투자자들의 파생상품 투자는 상당히 걱정스러운 수준”이라며 “파생상품 투자는 투자 이전에 충분한 사전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동학개미열풍이 점차 합리적인 투자보다는 ‘대박’을 노리는 한탕주의적 성격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지적도 업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원유 관련 레버리지 파생상품들은 대부분 전액 손실 가능성이 있는 ‘고위험’ 상품인데 신한금융투자가 21일 신한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H) 1억주를 추가 상장하자마자 투자자들은 곧바로 물량을 싹쓸이해버리기도 했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한국거래소는 괴리율이 극도로 벌어진 원유관련 레버리지 상품을 적극적으로 거래정지시키고 있다. 금융당국 역시 해외 상장지수증권(ETN) 등 고위험 파생상품 등에 대한 일반 개인투자자들의 투자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원유관련 파생상품들의 강제통폐합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오전 열린 코로나19 대응기업 지원을 위한 금융권 간담회에서 “경제 및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 속에서 고위험·고수익 금융상품 판매가 증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금융당국은 시세조종 등 주식시장 교란행위를 단속하고 투자자들 역시 금융시장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냉정한 투자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