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우량 회사채 담보대출 10조원 발표···증권가 유동성 리스크 해소 기대↑
증권사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차환 막기에는 역부족 지적도
ABCP 담보대출 확대는 도덕적해이와 형평성 논란이 꼬리표
한국은행이 국내 증권·보험사를 대상으로 10조원 한도로 회사채 담보 대출에 나서면서 증권사들이 겪고 있는 자금난이 다소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증권사들은 최근 부동산 등을 담보로 발행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차환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은행의 이번 회사채 담보대출로 증권업계 자금난이 일부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한국은행이 ABCP 담보대출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ABCP발 유동성 리스크 해소될까
16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 임시회의를 열고 증권사 등 비금융사를 대상으로 하는 회사채 담보 대출안건을 의결했다. 총 10조원 규모다.
한국은행의 민간 대출은 한국은행법 79조에 의해 막혀 있지만 다음 항목인 80조에는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중대한 애로'가 있으면 정부의 의견을 들은 이후 금융업 등 영리기업에 대출을 해줄 수 있다”고 예외를 두고 있다. 다만 한국은행은 한국은행법 64조와 77조를 근거로 신용대출은 불가능하고 담보대출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이 비은행 금융사에 대한 대출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최초다. 그만큼 최근 증권사들의 자금난 우려가 심상치 않았다는 반증이다.
앞서 국내 증권사들은 지난달 국내외 증시 급락에 따라 주가연계증권(ELS)에 대한 담보금 추가납입 요구(마진콜)로 수조의 현금을 글로벌 증권사에 지불하면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한국은행은 환매조건부채권(RP), 국공채, 특수채를 시장에서 매입해주는 형태로 증권사들의 유동성 위기를 일부 해결해줬다. 그러나 최근 증권사들이 만기가 돌아오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차환(롤오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시 유동성 위기가 불거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ABCP는 자산유동화증권(ABS)의 한 형태로 통상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유동화가 어려운 자산을 담보로 발행된 단기어음이다. 실물종이가 아닌 전자방식으로 발행되면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가 된다. ABCP만기는 보통 3개월인데 증권사들은 그동안 새 ABCP를 찍어서 만기가 돌아오는 ABCP를 차환해왔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악화로 한화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등이 ABCP차환에 실패하면서 자기 돈으로 만기가 돌아오는 ABCP를 상환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영훈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부동산을 담보로 발행된 ABCP에 대한 차환우려는 증권사 유동성 부담을 가중시킬 잠재위험”이라며 “대형증권사는 보유한 유동성으로 흡수가 가능하나 중소형사는 흡수여력이 크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 ABCP 담보 추가대출 가능성은
일각에서는 한국은행의 회사채 담보대출 규모가 확대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은행은 3개월간 한시적으로 10조원 한도 내에서 우량 회사채 담보대출을 운용하되 금융시장 상황과 한도소진 상황 등에 따라 연장 및 증액 여부를 추후 결정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그러나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만기가 돌아오는 ABCP 규모는 무려 29조4000억원에 이른다. 특히 4월에는 13조7000억원으로 가장 많다.
증권사들은 한국은행이 유동성리스크 해소를 위해 자신들이 보유한 우량 ABCP를 담보로 최대한 대출을 확대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증권사들은 보유하고 있는 우량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최근 한국은행의 시장개입 과정에서 증권사들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대부분의 우량채권(RP, 국공채, 특수채) 등을 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증권사들이 담보로 내세울 수 있는 우량채권은 대부분 ABCP인 셈이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내부에서는 ABCP담보 대출확대를 놓고 모럴헤저드 논란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증권사의 ABCP를 담보로 유동성 위기를 해소해주면 그동안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써줬던 타 증권사들과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증권사들은 한국은행 돈을 마구 가져다 써도 된다는 인식을 조장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은행이 대출담보로 잡은 ABCP의 기초자산인 부동산 물건이 부실화되면 한국은행이 손실을 떠안게 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증권사들의 부동산기반 ABCP는 현재 최소 70조~80조원 규모인데 신용경색이 확대되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다”며 “한국은행만이 ABCP 담보대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