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화된 피의사실공표죄 11년간 ‘기소 0건’···수사공보 법률 제정 등 권고

검찰 과거사위원회 정례회의 모습. / 사진=연합뉴스
검찰 과거사위원회 정례회의 모습 / 사진=연합뉴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과거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과 PD수첩 사건 등에서 무분별한 피의사실공표로 당사자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확인했다. 과거사위는 수사기관에 의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피의사실공표 행위에 대해 관련 법률 제정 등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전날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으로부터 ‘피의사실공표 사건’의 최종 조사결과를 보고받고 이 같이 심의했다고 28일 밝혔다. 과거사위는 구체적인 피의사실공표 피해 사례로 송두율 국가보안법위반사건(2003년),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1991년), 이석기 국가보안법위반사건(2013년), PD수첩 사건(2008년) 등을 언급했다.

과거사위는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의 경우 국과수가 필적감정 결과를 회신하기도 전에 그 결과를 언론에 공표하는 등 지나치게 상세한 내용이 검찰 수사팀의 구두 브리핑을 통해 공표됐다고 지적했다. PD수첩 사건의 경우 사실상 피의자신문조서에 해당하는 질의사항 문건을 언론에 배포하는 등 유죄의 예단을 불러일으킬 염려가 있는 피의사실공표를 했다고 봤다.

하지만 피의사실공표로 형사 기소된 사례는 지난 11년간 전무했다. 과거사위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접수된 사건이 347건에 달하지만, 실제로 기소에 이른 사건은 단 한건도 없다. 반면 피해자들이 국가 및 검찰 수사팀 관계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이러한 피의사실공표가 위법하다고 판시됐다.

과거사위는 “법률상 범죄로 규정된 피의사실공표죄가 존재함에도 이와 병행해 수사기관에 의한 공보 방식으로 피의사실공표를 허용하는 규정(법무부훈령에 따른 수사공보준칙)을 둔 것은 법체계상의 심각한 문제로 판단된다”며 “법상 허용되는 수사공보 행위와 처벌대상이 되는 피의사실공표 행위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수사공보 대상 범죄도 단순히 대중의 호기심 충족이나, 알 권리와 같은 막연한 추상적 이익 때문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보도의 공익적 이익이 있는 범죄로 제한돼야 한다”며 “수사공보가 이루어지는 경우 공보 대상자 혹은 공보로 인해 법률적인 불이익을 입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해관계자에게 수사공보에 대한 반론권을 보장하고 공보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편, 2017년 12월 발족해 총 17건의 검찰 인권침해 및 수사권 남용 사례를 규명해온 과거사위는 오는 31일 약 1년 6개월간의 활동을 종료한다. 앞서 29일에는 김학의 전 차관 사건 최종 조사결과 및 과거사위 활동 마무리 소감 발표를 진행하며, 30일에는 용산지역 철거 사건에 대한 심의 결과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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