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등 영향에 글로벌 선박 발주량 전년比 30.4% 감소 전망
현대미포조선, 로팩스 2척 계약 취소 공시···일각선 '피크아웃' 우려도
증권·조선업계 "계약취소로 공정지연 문제 완화 기대···높은 선가 받아낼 수 있어"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선박이 건조되는 모습. / 사진=HD현대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선박이 건조되는 모습. / 사진=HD현대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최근 3년간 대규모 발주에 따른 기저효과, 경기침체 우려로 올해 신규수주는 다소 감소할 것이다.” 

김현준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이같이 말했다. 선박 발주가 고점을 찍고 하락세로 진입하는 ‘피크아웃’이 도래할 것이란 분석이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역시 올해 글로벌 선박 발주량은 2900만 CGT(표준선 환산톤수)로 지난해 발주량(4168만 CGT) 대비 30.4%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선박 발주량 감소 우려는 올 들어 현실화되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1월 기준 전세계의 선박 발주량은 257만 CGT, 96척으로 작년 동월 대비 26% 감소했다. 

전반적인 발주량이 준 데다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내세운 중국과 격차도 여전하다. 중국은 전세계 선박 발주량의 53%인 136만 CGT(41척)를 수주했고, 한국은 97만 CGT(32척)를 가져와 38% 점유율로 2위 자리를 지켰다. 

김 선임연구원은 “조선 3사의 수주점유율이 높은 대형 컨테이너선과 LNG선의 발주가 감소하고 있다”면서 “중국 조선소들의 점유율이 높은 탱커 및 벌크선 발주량 증가로 조선 3사의 신규 수주와 점유율이 소폭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현대미포조선이 건조한 여객화물 겸용선(Ro-pax). /사진=현대미포조선
현대미포조선이 건조한 여객화물 겸용선(Ro-pax). /사진=현대미포조선

◇현대미포조선, 여객화물 겸용선 계약 취소 공시…경기침체 영향 본격화 우려도

최근 경기침체 여파로 국내 조선사가 기수주한 선박의 계약 취소 건도 나왔다. 현대미포조선은 전날 뉴질랜드 소재 선주사인 키위레일 측 요청으로 여객화물 겸용선(Ro-pax) 2척에 대한 계약을 해지한다고 공시했다. 계약 규모는 4169억원이다. 현지 정부의 자금 지원이 중단되며 키위레일이 계약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업계는 현대미포조선의 로팩스 계약 취소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선주사가 계약금 포기할 만큼 향후 경기침체가 지속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되지만, 3~4년 치 일감을 채운 현대미포조선은 오히려 기수주한 저가 선박을 고부가 선박으로 대체할 수 있어 수익성 측면에선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로팩스는 여객과 화물을 함께 운송할 수 있는 선박으로 현대미포조선의 주력 선종은 아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암모니아 운반선(VLAC) 등 고부가 선박보다 수익성도 떨어지는 선종으로 평가된다. 

특히 해당 선종은 현대미포조선의 주력 선종인 중형 탱커나 피더컨테이너선 수요가 부진했던 시기인 2021~2022년 선종 다변화를 추진하고자 수주했던 선박이다. 현대미포조선이 당시 수주한 비주력 선종들은 이 회사 공정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미포조선은 지난해 선주사와 협의 끝에 4개 계약에 대해 인도일 일정을 연기했다. 공정지연, 저가수주 등 원인으로 현대미포조선은 지난해 HD현대 조선 계열사 중 유일하게 1662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증권업계는 수주 계약 취소로 현대미포조선이 겪고 있는 공정지연 문제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수주 계약이 취소된 선박이 바로 병목현상을 유도한 이른바 비주력 선종 중 하나”라며 “실제로 회사가 지난 4분기에 설정한 충당금 중 일부가 해당 선박 건조와 관련됐다”고 말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조선 3사 “발주량 문제 안 돼···양보단 질”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2년 연속 감소하며 일감은 부족해졌지만, 수주의 질은 오히려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은 일감을 나타내는 수주잔량은 보합세를 유지하면서도 조선 3사의 독(건조 시설)은 고부가 선종으로 채워지고 있다.

조선 시장 상황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신조선가 지수도 오름세다. 지난달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는 181.27포인트를 기록하며 4개월 연속 올랐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18.6포인트(11.5%) 상승한 수치다. 

신조선가 지수 상승은 현대미포조선의 계약 취소가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 중 하나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불황기에 계약 취소가 발생하면 단기간에 싸게 슬롯을 팔아야 하거나 슬롯을 비우고 지나가야 하는 악재로 작용한다”면서 “신조선가 상승세가 가파른 지금은 더 비싼 선종으로 계약 갱신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고부가 선박을 선별 수주하는 조선 3사 입장에선 전체 발주량 감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국 업체들이 저가 선박 물량을 가져가더라도 국내 조선사들은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며 고부가 선박에서 우위를 점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어서다. 특히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규제에 대비해 선주사의 친환경 연료 추진 선박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신조선가 지수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현대미포조선 관계자는 로팩스 계약 취소 건과 관련해 “지난 2021년 6월 선박 수주 당시에는 준수한 계약금액을 받아낸 것으로 평가됐지만 이후 원자재값이 크게 올랐다”면서 “해당 계약의 수익성이 낮아진 상태서 계약이 취소되면서 더욱 높은 선가를 받아 독(dock)을 채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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