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고령층 판매, 금소법 '적합성 원칙'에 맞지 않아"
불안전판매 나오면 DLF 배상안 수준으로 정해질듯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KB국민은행, 신한은행, NH농협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서울 본점 전경 / 사진=각 사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을 판매한 시중은행에 대한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에 대해 관심이 집중된다. 불완전판매로 인정된 사례가 나오면 시중은행의 신뢰성은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불완전판매 사례에 대해 금감원은 배상안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선 지난 2019년 대규모 원금손실이 발생한 파생결합증권(DLF) 배상안이 기준이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시중은행, 고령층에 ELS 2조원 판매···불완전판매 사례 나올까 ‘전전긍긍’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담은 ELS 판매 과정에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판매사인 시중은행을 조사했다. ELS는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통상 3년) 때까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약속한 수익을 지급하는 파생 상품이다. 하지만 미리 정한 수준보다 가격이 내려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예금보다 2~3배 높은 금리를 제공하고 6개월 조기 상환 매력으로 재테크 수단으로 오랜 기간 인기를 누렸다.  

최근 홍콩H지수가 하락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잡은 ELS도 대규모 손실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지난 2021년 초 홍콩H지수는 1만원이 넘었지만 현재 5400~6000선에 머물고 있다. 이대로라면 2021년에 상반기에 가입한 ELS의 경우 3년 만기가 다 돼는 내년 상반기에 원금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조사 결과 은행이 원금 보장이 가능한 것처럼 설명해 가입을 유도한 불완전판매 사례가 나오면 시중은행의 신뢰성에 큰 상처를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판매한 ELS(ELS의 신탁 형태 ELT, 펀드 형태 ELF) 중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규모는 8조4100억원이다. 이 가운데 국민은행이 판매한 규모는 4조7726억원으로 절반이 넘는다. 신한은행이 1조3766억원으로 두 번째로 많고, 농협은행이 1조4833억원, 하나은행이 7526억원, 우리은행은 249억원 순이다. 

특히 이번 ELS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판매가 많이 이뤄진 점이 문제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11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이 홍콩H지수 ELS를 70대 이상의 연령층에 판매한 규모는 약 2조원에 달했다. 구체적으로, 70(70~79세)를 대상으론 1조8276억원, 80대는 2084억원, 90대 이상의 초고령층에겐 90억8000만원 어치가 팔렸다. 

은행들은 강화된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맞춰 ELS를 판매했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고령투자자의 경우 지정인 알림서비스를 통해 가족, 지인 등 고령투자자가 지정하는 제3자(지정인)에게 상품 가입내용을 문자 메시지로 안내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금융사가 적합하지 않은 소비자에게는 투자권유 자체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금소법 상 ‘적합성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는 점을 거론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이 원장은 지난달 28일 “(은행들은) 자필 자서를 받았다든가, 녹취를 확보했다든가 해서 불완전판매 요소가 없으니 소비자 보호를 했다는 입장인 것 같다”면서도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취지와 적합성의 원칙을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료=각 사,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불완전판매 나오면 배상안도 마련될 듯···DLF 사례 참고할까

불완전판매 사례가 확인되면 금융감독원은 배상안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금융권은 지난 2019년 발생한 DLF 사태 당시 처음으로 배상기준안 방식을 채택한 바 있다. 금감원은 해당 사태에서 배상기준안에 따라 금융사가 손해액의 40~80%를 배상하도록 했다. 이를 기준으로 ELS 배당안도 마련될 것이란 예상이다. 

은행 입장에선 억울한 측면이 있더라도 당국의 배상안은 모두 받아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금융당국은 과도한 이자장사에 몰두한다는 이유로 은행권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에 시중은행은 2조원 규모의 상생금융 지원책을 내 놓을 것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ELS 투자 특성을 고려해 새로운 배상안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DLF 배상안은 55%를 기본 배상비율로 하고, 투자 경험이 많은 투자자들의 경우 투자자 자기책임사유에 따라 배상비율에서 5~10%포인트를 차감했다. 이 기준으로 하면 상당수의 ELS 투자자들은 낮은 배상비율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ELS 투자자들은 6개월 조기상환을 통해 재투자를 했기에 투자경험이 많은 경우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ELS가 수익이 나는 기간동안엔 투자자들이 손실에 대한 인식 없이 재가입을 한 경우가 많기에 다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ELS는 일부 투자자들이 가입 가능했던 사모펀드와 달리 '국민 재테크' 상품이기 때문에 시중은행은 긴장을 많이 하는 분위기"라며 "배상 대상자가 많고 배상 수준이 높으면 시중은행도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