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해지 규제 폐지 및 PLCC 확대가 주효했다는 분석
카드 발급 과정서 투입된 비용이 매몰 비용으로 전환···수익성 악화 우려
관리 소홀에 따른 분실 가능성 커 금융사고 위험성 지적
"본인 니즈에 맞는 카드 선택 추세···무실적 고객 확보 위해 고심"

8대 전업 카드사 휴면카드 수 추이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전체적으로 휴면카드 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그 중에서도 BC카드가 지난해 8곳 전업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BC) 가운데 휴면카드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휴면카드 증가 원인으로는 자동해지 규제 폐지와 함께 특정 업체에 특화된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PLCC) 확대가 주효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카드 발급 과정에서 투입된 비용이 매몰 비용으로 전환돼 카드사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고 미사용 카드의 경우 분실 가능성이 커 금융사고가 일어날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올해 들어 카드업 영업환경이 전반적으로 악화된 만큼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휴면카드 수는 1555만5000매로 집계됐다. 휴면카드 수는 지난해 1분기 1373만6000매 수준이었으나 2분기와 3분기 각각 1428만4000매, 1464만2000매로 지속 증가했다.

휴면카드란 카드사가 발급한 개인 또는 법인 신용카드 중 1년 이상 사용 실적이 없는 카드다. 회원이 아닌 카드 수를 기준으로 조사하기 때문에 개인이 카드를 다수 발급받아 1년 동안 한 장의 카드만 사용하면 나머지 카드는 휴면카드로 전환된다.

휴면카드가 전체적으로 급증한 원인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지만 업계는 휴면카드 자동해지 규정 폐지를 주된 요인으로 꼽는다. 9개월 넘게 카드를 미사용하면 자동으로 해지되도록 한 여신전문금융업 감독규정을 금융당국이 2020년 폐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휴면카드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특정 사업자와 협업해 혜택을 제공하는 PLCC, 카드사마다 내놓는 각종 신상 카드 등 신용카드 상품이 많아지면서 발급량이 증가한 영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들이 카드 디자인, 카드사 일회성 마케팅 등에 혹해 카드를 발급받았지만 정작 실제 사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카드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PLCC카드란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Private Lable Credit Card)의 약자로 카드사가 특정 브랜드와 1:1 계약을 맺고 고객에게 해당 브랜드에 대한 차별화된 혜택을 제공하는 카드다. 협업 브랜드는 카드사가 보유하고 있는 고객의 데이터를 보다 적은 비용으로 확보가 가능하며 동시에 카드사는 고객 수를 늘릴 수 있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추세다.

휴면카드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BC카드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4분기 기준 BC카드의 휴면카드 비중은 38.5%에 달했다. BC카드 5장 중 2장은 사실상 사용하지 않는 셈이다. 비록 지난해 1분기(49.58%) 보다 11.08%포인트 줄어든 수치이지만 카드사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어 하나카드(15.23%), 롯데카드(14.61%), 우리카드(13,75%), KB국민카드(10.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BC카드 관계자는 "휴면카드 문제는 모든 카드사의 공통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면서도 "자사의 경우 상호저축금융이나 일부 증권사 등 신용카드 발급 라이선스가 없는 금융사들을 발급해주고 있기 때문에 휴면카드 비중이 고유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높은 휴면카드 비중은 위탁 발급한 하이브리드 카드상품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고 덧붙였다.

휴면카드 비중은 고객 충성도를 가늠하는 잣대로 인식된다. '휴면카드 비중이 크다'는 말은 곧 '브랜드 충성도가 낮다'는 뜻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카드사 입장에서는 휴면 상태에 접어든 무실적 소비자들을 다시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분위기다.

가장 큰 문제는 비용 출혈이다. 미사용 휴면카드가 증가할수록 초기 상품개발비를 포함해 마케팅비, 발급비, 배송비 등 매몰 비용이 증가한다. 카드를 발급하려면 그 과정에서 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휴면카드가 증가하면 이를 거두기 어려워진다는 설명이다. 회수할 수 없는 회원관리 비용, 마케팅 비용 등이 지속적으로 늘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도 상존한다. 

아울러 휴면카드는 소지자의 관리가 소홀한 만큼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크다. 지난 2020년 카드회원 표준약관 개정으로 이용정지 카드의 본인 외 사용 등에 따른 피해에 대한 책임은 원칙적으로 카드사가 부담하고 있지만 카드 소지자 역시 범죄로 인한 정신적·물질적 손해을 감당해야 한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서는 휴면카드가 카드 복제와 같은 범죄에 취약할 수 있고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정리할 것을 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휴면카드에 대한 효율적 관리책 마련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올해 들어 조달금리 상승과 연체율 관리 등 다양한 악재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카드사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비용 부담과 파생하는 잡음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본인의 니즈에 맞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기존 카드의 사용 빈도가 줄어들거나 쓰지 않는 경우가 늘었다"며 "카드사들이 무실적 소비자를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고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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