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적립금 감소···금리경쟁서 밀려
유동성 위기 피했지만···자산운용 자금↓
치열한 경쟁···보험료 크게 늘리기 어려워
금융 불안정 지속···자본성증권 발행도 부담

/자료=롯데손해보험,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롯데손해보험의 퇴직연금 사업이 지난해 부진했던 탓에 올해 자산운용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는데 비상등이 켜졌다는 평가다. 롯데손보는 전체 자산의 절반이 퇴직연금 적립금으로 이뤄진 곳이다. 보험시장 내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 보험료를 크게 늘려 자금을 확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금융시장 불안정성도 이어지는 만큼 자본성증권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기도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롯데손보의 작년 9월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9조2386억원으로 전년 말(9조6027억원) 대비 4%(3641억원) 줄었다. 아직 공시되지 않았지만 작년 4분기에는 더 많이 감소해 12월 말 기준으로 적립금이 7조원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으로 전해진다. 1년 사이에 2조6000억원 가량 줄어든 셈이다. 

롯데손보의 핵심 사업은 퇴직연금이다. 전체 자산 18조4137억원 가운데 퇴직연금 적립금으로 운영하는 자산(특별계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48%(8조8314억원)에 달한다. 국내 보험사 가운데 사실상 가장 비중이 크다. 총자산 규모가 비슷한 한화손해보험은 퇴직연금 비중이 0.01% 정도에 그친다.   

롯데손보의 퇴직연금 규모가 크게 줄어든 이유는 금융사 간 치열해진 ‘금리 경쟁’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시중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퇴직연금의 확정급여형(DB)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금리도 계속 상승했다. 원리금비보장형 상품에 집중하던 증권사들도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내놨다. 

특히 지난해 4분기엔 채권시장이 얼어붙자 퇴직연금은 보험사들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마저 나왔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중소형 증권사들은 퇴직연금 시장을 위기 탈출의 방법 중 하나로 생각했다. 특히 DB형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약 80%가 만기가 돌아오는 12월엔 8%대의 보장 금리를 약속한 곳도 나왔다. 이에 롯데손보와 같이 퇴직연금 비중이 높은 보험사는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롯데손보는 작년 12월 1년 만기 DB형 원리금보장형 상품 이율을 5.11%로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했다. 그 결과 지난해 4분기에 퇴직연금 적립금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롯데손보는 자금이 부족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환매조건부채권(RP)매도 한도를 기존 1500억원에서 3조3000억원으로 크게 늘렸다. 

롯데손보는 유동성 위기란 급한 불은 껐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롯데손보는 퇴직연금을 보완할 사업이 마땅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감소하면 보험사는 그만큼 자산운용에 활용할 자금이 쪼그라든다. 만기가 3개월 이하인 RP매도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만기가 1년 이상인 안정적인 조달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보험영업을 강화해 보험료를 늘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업권 특성상 보험계약 실적을 단기간에 크게 늘리기가 쉽지 않다. 롯데손보는 올해 적용되는 새 회계제도(IFRS17)에 대응하기 위해 보장성보험 판매 확대에 올인했다. 이를 위해 사업비를 전년 동기 대비 15.5%(485억원) 크게 늘렸다. 하지만 보장성보험 신계약 판매 실적은 같은 기간 7.5%(약 14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더구나 장기 보장성보험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한 점도 고민거리다. 최근 생보사들도 보장성보험(제3보험) 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해 시장 점유율을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올해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계속되는 점도 부담이다. 신종자본증권, 후순위채권 등 자본성증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 신용등급 AA등급 이상의 대기업 회사채는 잇달아 발행에 성공하는 등 시장이 다소 안정을 찾긴 했다. 하지만 그 이하 등급의 기업은 아직도 자금 조달이 어려운 처지다. 롯데손보는 회사채(후순위) 신용등급이 A-다. 더구나 올해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자본성증권 발행에 계속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보험업 전문가는 “롯데손보는 퇴직연금 사업 부진으로 인해 부족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선 자본성증권 발행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다만 올해 국채 금리가 소폭 내려갔을 뿐 회사채 금리는 여전히 높기에 자본성 증권 발행에 따른 이자부담은 계속 클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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