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여 정치인·관료 출신들, 금융권 주요 자리 차지
금융권의 기본 영업행위에도 국회가 직접 지시 내려
코로나19로 버틴 금융권, 관치로 망가질 우려  

[시사저널e=이용우 기자] “금융관치에는 좌우가 없고 여야가 없다.”

한 금융권 인사가 해준 말이다. 관료 출신 인물들이 금융권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정치인들이 은행의 자율 경영에 한 마디씩 내뱉는 것에 대한 소견이다.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규제의 대상이 되는, 절대적 을의 위치를 금융권 사람들은 최근 다시 느끼고 있다. 이 관계자의 말뜻은 관치는 누구든 해보면 단맛을 느끼기에 좌우, 이념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병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차기 보험연수원장으로 내정된 것을 두고도 금융권에선 말이 많다. 보험연수원 원장후보추천위원회가 민 후보에 대해 “보험연수원을 이끌어 갈 적임자”라고 했지만 그가 가진 보험 관련 경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정무위원회를 거쳤다고 하나 이를 보험 경력으로 말하기엔 억지가 있다. 

그나마 은행연합회장 선출 과정에서 출사표를 올렸을 때가 후보로서 적합해 보였다. 하지만 민 전 의원은 당시에도 은행권 근무 경력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고 결국 은행연합회장 자리는 김광수 전 NH금융지주 회장에게 돌아갔다. 민 전 의원의 이름은 금융권에서 그렇게 사라지는가 싶더니 결국 보험연수원장 자리를 꿰차게 됐다. 

민 전 의원이 보험연수원장에 오르면 보험연수원과 생·손보협회장 자리는 모두 정치 및 관료 출신들이 차지하게 된다. 정희수 신임 생명보험협회장은 2017년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했고, 2018년 12월부터 보험연수원장을 역임했다. 정지원 신임 손해보험협회장도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입문, 금융감독위원회 은행감독과장,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거쳐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역임했다. 

요즘 들어 부쩍 친여 성향의 정치인과 관료 출신들이 금융권에서 한 자리 맡는 것 외에도 권력의 힘으로 금융권을 좌지우지하려는 모습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최근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시중은행의 간부들과 화상회의를 갖고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 완화를 주문하면서 논란이 됐다. 은행연합회를 통한 검토가 아니라 정치권의 은행 경영에 대한 직접적 관여라고 판단돼 금융권의 반발을 사고 있다. 여당 대표의 말 한마디가 갖는 힘을 생각한다면 경솔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는 비판이다. 

또 은행의 영업점 감축 행보를 두고도 금융당국만 아니라 정치권까지 나서 제동을 걸고 있다. 금융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나 정치권의 발언이 보다 더 힘을 갖는다는 걸 생각했을 때 은행의 자율적 경영 판단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 우려된다. 시장의 논리가 아닌 관치의 논리로 국내 금융시장이 움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권력과 감독당국의 역할은 다양하겠지만 금융권의 부정과 비리를 감시하고 낙하산의 출현보다 금융전문인이 주요 자리에 오르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도 주된 역할과 책임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기본적인 역할도 제대로 못 하는 모습이다. 경영 자율판단을 침해하는 수준에까지 왔다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고장이 나지 않은 금융시스템이 관치의 손에 닿기 시작하며 고장 나기 시작할 것이란 지적도 꼭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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