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분류시 '셧다운제'보다 훨씬 강한 규제 불가피…업계 "과학적 근거 부족하다" 규제 저지위한 국제공조 나서

지난해 11월 열린 지스타 2017 행사장 모습. 게임은 이미 국민들의 대중적인 취미 활동으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 사진=넥슨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게임업계는 강력히 반발하면서 이를 저지하기위한 국제 공조에 나서고 있다.

WHO는 오는 5월 열리는 국제질병분류기호 개정(ICD-11)에서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등재하는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WHO의 ICD-11 초안은 게임 장애를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지속하거나 확대하는 게임행위의 패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아울러 게임에 대한 통제 기능 손상, 삶의 다른 관심사 및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는 것,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것 등 3가지를 장애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진단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WHO가 게임장애를 ICD에 포함할 경우, ICD를 기초로 만드는 한국질병분류코드(KCD)에도 게임장애가 등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이미 각종 규제를 받고 있는 게임업계 입장에서는, WHO의 게임중독 질병코드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국내 게임산업의 대표적인 규제인 ‘셧다운제’의 경우 개정 요구에도 불구,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강제적 셧다운제는 16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이용을 차단하는 제도로 2011년 4월 청소년법 개정안에 포함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5년 발표한 셧다운제 규제의 경제적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셧다운제 실시 후, 국내 게임시장 규모가 1조1600억원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셧다운제를 능가하는 강력한 규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에 국내 게임업계는 이번 WHO의 게임중독 질병 분류와 관련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K-GAMES)와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한국모바일게임협회 등 관련 협회 8곳은 지난 2월 ‘비과학적인 게임 질병화 시도에 반대하며, ICD-11 개정안 관련 내용 철회를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협회는 “의학계나 심리학계에서도 ‘게임 장애’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린 바 없다”며 “WHO의 최근 움직임이 게임 장애와 관련된 과학적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명확한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는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게임 장애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서는 임상적 실험을 통한 데이터로 이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과학적 엄밀성이 부족한 자의적 판단에 따라 단순히 게임을 좋아하는 이용자들이 ‘게임 장애’ 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류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4차 산업혁명의 한 축인 게임 산업 종사자들이 ‘질병 유발 물질 생산자’라는 오명을 쓰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게임산업협회(K-GAMES)는 지난 1일 미국(ESA), 캐나다(ESAC), 호주 및 뉴질랜드(IGEA), 유럽 18개국(ISFE) 등 각국 게임산업을 대표하는 유관 단체, 협회들과 힘을 모아 게임 질병화 시도를 반대하는 국제 공동 협력에 나섰다고 밝히기도 했다.

강신철 K-GAMES 협회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증명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장애를 질환으로 분류하려는 WHO의 계획에 대해 전 세계에서 반발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WHO의 게임 장애 분류 시도는 투명성이 부족하고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으며 객관적인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만큼 즉각적으로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소식을 접한 유저들 역시 WHO의 결정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직장인 김정수(29·가명)씨는 “게임을 오래한다고, 이를 질병으로 분류할 생각이라면, 영화를 많이 보거나 책을 많이 읽는 것도 똑같이 중독으로 분류해야 하지 않겠냐”며 “명확한 기준과 근거 없이 단순히 ‘게임은 나쁘다’라는 인식은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이정민(25·가명)씨는 “요즘 학생들이 게임을 많이 하는 것은 게임중독이라기보다는 다른 취미 생활을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며 “게임을 중독으로 몰아가기 이전에, 학생들이 왜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는 지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게임업계는 향후 토론회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게임의 질병 분류 등재와 관련된 다양한 대응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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