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세계 전략]② 인도, ‘쌍트로 신화’ 잊고 ‘중국화’ 경계하라
쾌속질주 현대차, 인도 시장환경 급변 가능성 대비해야
인도는 떠오르는 ‘자동차 노다지’다. 중국에 버금가는 인구와 넓은 영토가 강점으로 꼽힌다. 인도 정부까지 나서 외산 브랜드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어, 성장잠재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중국에서 고전 중인 현대·기아차도 일찌감치 인도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점찍었다. 현지 전략차종 판매량은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있고, 기아차는 현지 공장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인도시장의 중국화(化)를 경계한다. 경쟁업체가 진입하고 성장세가 둔화되는 시장 성숙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 ‘쌍트로’로 시작한 현대차 인도 공략기
업계 관계자들은 현대차의 인도시장 진출을 두고 신의 한수라 평가한다. 현대차는 1996년 인도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만 해도 인도는 아프리카와 더불어 자동차시장의 불모지였다. 민족 간 내분이 잦았고 도로 등 기간시설은 엉망이었다. 자동차정책을 총괄하는 정부의 컨트롤타워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현대·기아차는 인도의 넓은 영토와 인구에 주목했다. 인도 인구는 13억명에 육박한다. 영토는 328만7590㎢로, 남한 면적의 33배다. 낙후 지역들이 도로로 연결되면 자동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주변에 우려를 뒤로하고 현대차는 1998년 인도 시장에 현지전략차종 쌍트로를 내놓는다. 쌍트로는 현대차 1세대 외국 현지 전략 경차다. 아담한 차체를 가진 쌍트로 인기는 상상이상이었다. 출시 첫해부터 불티나게 팔려나가며 스테디 셀링 모델로 자리잡았다.
쌍트로는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17년간 인도에서 132만2335대 판매됐다. 현대차 인도시장 누한 판매량의 37%다. 효자모델 쌍트로를 등에 업고 현대차는 2003년 인도 자동차 산업 역사상 최단 기간인 5년 만에 50만대 판매라는 쾌거를 이룬다.
◇ ‘크레타’로 이어가는 인도 성공신화
현대차 주력무기 쌍트로는 지난해 1월 단종됐다. 그럼에도 현대차의 인도시장 판매량은 고공행진 중이다. 현대·기아차도 소형차를 앞세워 인도시장을 공략 중이다. 빈부격차가 큰 인도에는 차가 필요하지만 경제력이 받쳐주지 않는 수요층이 많다. 그렇다보니 대형 고급세단 보다는 가격대가 저렴한 소형차가 주목받는다.
현대차는 쌍트로 이후 인도시장에 신형 i20, i20 액티브, 그랜드 i10, 산타페, 크레타 등을 출시했다. 그 중 지난해 7월에는 소형 SUV 크레타소형 승용차 엘리트 i20와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크레타가 각각 2015년 인도 올해의 차, 2016년 인도 올해의 차로 선정되며 선전하고 있다.
크레타의 경우 현지기업인 마힌드라사 볼라로를 제치고 소형 SUV 최다 판매모델로 등극했다. 이에 현대차는 소형 SUV 크레타 생산량을 20%가량 늘리기로 결정했다. 크레타 생산량은 기존 월 5000대에서 6000대로 늘려 올해 인도시장에 7500대, 수출시장에 2500대를 추가 공급할 계획이다.
크레타를 비롯해 전 모델 라인업이 고른 팔려나간 덕에 현대차는 지난해 전년비 15.7% 증가한 47만6000대를 판매했다. 인도 내수시장에서 현지 기업인 스즈키마루티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업계 관계자는 “인도에서 스즈키마루티는 국민차다. 외국브랜드인 현대차가 넘어서기에는 버거울 수 있다. 그럼에도 현지 업체인 마힌드라 등을 제치고 수년째 2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현대차 현지전략모델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 인도차 시장 ‘성숙기’ 진입시점이 관건
현대차가 인도시장에서 순항 중인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인도시장에 추가적인 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는 현재 인도 첸나이에 1·2공장을 운영 중이다. 연간 65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현대차는 준중형 SUV인 투싼을 연내 인도시장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투싼의 인도 현지생산이 결정될 경우, 소형차만 생산하던 1·2공장만으로는 버거울 수 있다. 여기에 기아차 역시 인도 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기아차가 인도시장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이유는, 인도 정부의 친(親) 시장주의가 한 몫하고 있다는 평가다. 인도 정부는 제조업 육성을 위해 정통부, 재무부 주도로 외국 제조업체를 유치하기 위해 정부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 기업에 대한 세금 인하 혜택을 넓혀가고 있다.
인도 정부는 제조세를 기존 12%에서 8%로 인하했다. 자동차산업은 가격경쟁력이 핵심이다.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제조비용을 낮춰야 한다. 인도 시장의 낮은 세율은 원가절감에 큰 도움이 된다. 법인세 역시 내달부터 기존 30%에서 25%로 인하되며 친환경차 물품세도 감면할 예정이다.
변수는 인도 정부의 태도가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사례를 든다. 중국 역시 외국 브랜드 진입 초기, 공장 부지 등을 저렴하게 제공하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다. 문제는 외산차 시장이 점차 커지자, 자국 토종 업체를 보호하는 정책이 점차 강해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도 역시 자동차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 시장 환경이 급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인도 정부는 오는 4월부터 승용차에 대해 다양한 세목을 신설해 과세한다. 100만 루피(약 1750만원) 이상 자동차에 1%의 사치세가 신설되고 차량 크기 및 유종(油種) 등에 따라 1~4%에 이르는 사회간접자본(인프라)세 등이 새롭게 부과된다. 지난해까지 예상할 수 없었던 정책 변화다. 자동차 시장이 소폭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금은 인도 세금 정책 등이 현대차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다만 시장 환경은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 중국 역시 불과 2~3년 전과 지금의 자동차 시장 환경이 전혀 다르다. 현대차가 인도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변화에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관건은 현대차가 인도시장에서 외산차 이미지를 지우는 것이다. 인도는 자국기업에 대한 충성도가 크다. 현대차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차량 자체에 대한 경쟁력과 별개로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히 펼쳐야 한다. 결국에는 공정하고 깨끗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는 게 향후 인도 정부와의 협력 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