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시장 양적 성장에도 질적으로는 미흡
출판사들 '맞춤형 독립 콘텐츠'라는 인식 약해
전자책 시장규모가 1000억 원을 넘어서며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세가 착시효과라는 내부 목소리도 나온다. 양적 성장은 도드라지지만 질적 성장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전자책 맞춤형 콘텐츠에 대한 관심미비가 문제로 거론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표한 2015 출판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자책 유통사 기준으로 추정한 시장규모는 1004억 수준이다. 주요 통신사‧포털사이트 매출액을 포함할 경우의 규모는 최소 1200~1300억 원이다.
향후 전망도 낙관적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2016년과 2017년 전자책 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높게 예측”한다며 “내년이 되면 지금보다 2배 가까이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장을 뒷받침할 정책 환경도 우호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25일 이기성(70) 계원예술대 명예교수를 새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으로 임명했다. 이 신임원장은 한국전자출판연구원 원장, 한국전자출판학회 회장 등을 지낸 전자출판 전문가다. 출판산업을 아우르는 자리에 전자책 전문 학자가 온 셈이다.
하지만 출판계 현업에서 일하는 관계자들의 견해는 유독 부정적이다. 시장은 커졌지만 개별 출판사가 전자책에 특화한 콘텐츠전략이나 투자방침을 가진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 대형출판사 관계자는 “전자책 부서에 기존 4명이 있었지만 지금은 2명으로 줄고 외주업체와 일 하고 있다”며 “아직까지는 전자책을 겨냥한 콘텐츠라기보다는 오프라인 도서를 옮겨놓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실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보고서를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국내 전자책 1000억 규모 시장에서 600억 가량은 장르문학(로맨스, 판타지, 무협)에 치우쳐 있다. 장르문학의 20%는 웹 소설을 전자책으로 다시 출간한 것이다. 만화의 판매비중도 높다. 제작을 위탁하는 비중도 높다.
기존 출판사 입장에서 전자책은 새 시장이 아니라 부가 수익사업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자기계발서적을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 관계자는 전자책을 출간함으로써 “기존 콘텐츠를 다른 방식으로 가공할 수 있는 부가 수익원이 생긴 것”이라며 “콘텐츠를 다양하게 노출시키는 데 용이하다”고 말했다. 전자책 자체를 독립적인 콘텐츠로 보지 않는 셈이다.
실제 전자책 유통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잘 드러난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자책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을 하나만 꼽아달라는 질문에 콘텐츠의 양적 부족(24%)과 질적 미흡(20%)을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두 개를 동시에 뽑아달라는 질문에서는 출판사 시장참여 미흡(16%)을 꼽은 응답자도 많았다.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 된 해외사정은 다르다. 전자책 선진국으로 통하는 미국과 영국의 경우 시장 발전에 발맞춰 콘텐츠도 양적‧질적으로 크게 늘었다. 이와 같은 콘텐츠 증가는 종이책 시장과 별개로 전자책을 찾는 수요를 증가시켰다. 특히 자체출판을 하는 독립작가의 존재가 눈에 띈다.
소병희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8월 발표한 ‘전자책 출판의 동향과 지원정책’을 통해 “전자책이 가져온 세계 서적 시장에서의 변화는 독립작가의 자력 출판 증대”라며 “미국의 경우 종이책 시장에서 활동하는 독립작가 비중은 4.5%였지만 전자책 시장에서는 15%였고 2020년에 50%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경우는 다양한 접근 채널 증가와 함께 시장 참여자들의 적극적 투자와 활동도 주요 성장 기반으로 꼽혔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이 같은 시도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형출판사 관계자는 “회사에서도 전자책에 대해 큰 매출을 기대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현상유지 정도가 목표인 듯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