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케아 상륙 1년, 완제품, 출구, 직원이 없다

불편함을 파는 가구점...세대별로 호불호 엇갈려

2015-12-15     김지영 기자

 

이케아가 경기도 광명에 1호점을 낸지 1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누적 방문객수가 1100만명을 넘어섰다. 올 한해 매출은 2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개점 초기, 다양한 논란과 함께 ‘불편을 파는 컨셉’이 한국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가 최대 변수였다. 이케아가 유독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에서 외면 받았던 전례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다.

반면 가구공룡, 유통혁신기업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기도 했다. DIY(가구의 제작·수리·장식을 직접 하는 것, Do-it-yourself) 가구 열풍을 불러왔고 저렴한 가격으로 가구 시장 생태계 자체를 바꿀 것이라는 평가도 이어졌다. 


한국에 상륙한 지 1년, 이케아가 만든 가구 산업의 변화상을 확인하기 위해 광명점을 찾았다. 이케아는 비가 오는 평일, 궂은 날씨에도 많은 인파가 이케아 광명점을 방문했다. 아이를 동반한 젊은 가족과 커플, 친구, 사업 파트너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쇼핑을 즐겼다.

이케아에는 완제품, 빠른 출입구, 친절한 직원이 없다. 3가지가 없는 불편함이 한국 소비자에게도 통(通)했을까.  


 

이케아 2층에는 60여개의 쇼룸에 가구와 소품으로 연출된 60여개의 쇼룸이 있다. / 사진=김지영 기자

 

◇ 완제품 없는 이케아

이케아 매장은 1층은 마켓홀 (Market-hall), 2층은 쇼룸(Show-room)으로 구성됐다. 보통 마켓들은 위에서 아래로 쇼핑을 하는게 일반적이라면 이케아는 들어서자마자 ‘쇼룸부터 둘러보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이케아는 2층의 쇼룸으로 소비자들을 안내했다.

창고형 건물의 노란 외벽 회전문으로 들어서자마자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펼쳐졌다. 2층은 이케아의 주력상품인 가구코너가 있다. 쇼룸은 거실, 주방, 서재, 침실 등 다양한 생활공간과 어린이 공간까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 놨다.

이케아의 쇼룸에는 완제품이 없다. 쇼룸은 완성된 형태의 공간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부품으로 조립된 가구와 소품들의 조합이다.

이케아에서는 쇼파와 침대 옆에 어김없이 수많은 스타일의 페브릭이 진열되어 있다. 무늬와 색상, 두께감과 재질 등이 다양하다. 가구 구성을 고른 뒤 그에 맞는 천과 쿠션을 선택해야 한다. 

이케아 가구의 트레이드 마크인 DIY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구매자는 부품들을 직접 조립‧수리해야 한다. 직접 만드는 재미가 있겠지만 무거운 목재와 철재 부품을 조립하기가 녹록치는 않아 보였다.

이때 쇼룸의 벽면 한쪽에는 ‘도와드린다’는 안내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배송과 조립을 마친 완제품은 별도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무게나 구매 가격별 배송비를 받고 구매금액의 일정 비율을 소비자가 부담하면 조립과 설치까지 제공한다.

이케아의 판매 가격에는 배송과 조립, 설치 ‘비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한 50대 여성은 “싸다고 해서 왔는데 배달비 따로, 조립비 따로 하면 결국 그게 그거”라고 인상을 썼다.

그럼에도 1층에 마련된 배송‧조립 신청 코너에는 상당히 많은 고객이 줄을 서 있었다. 줄을 서 있던 이영진(34)씨는 “만들 사람은 저렴하게 사서 만들어 쓰고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은 돈을 더 지불하면 되니까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케아 매장 2층에 이정표를 보면 ‘돌아가는 길’과 ‘가는 길’이 있다. 결국 쇼룸 구경을 시작하면 60여개에 이르는 쇼룸을 끝까지 보거나 왔던 길을 돌아가야 했다. / 사진=김지영 기자

 

◇ 미로같은 동선, 출구 찾아 삼만리

마냥 신기하고 재밌는 표정으로 쇼룸을 둘러보는 무리 속에 지친 기색으로 혹은 난감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고객도 섞여 있다. 이케아에는 중간 출입문이 없다.

이케아 매장 2층에 이정표를 보면 ‘돌아가는 길’과 ‘나가는 길’이 있다. 결국 쇼룸 구경을 시작하면 60여개에 이르는 쇼룸을 끝까지 보거나 왔던 길을 돌아가야 했다.

중간 중간 제품과 제품 사이에 빈 공간인 비하인드 통로가 있기는 하지만 인파를 따라가다 보면 왔던 곳을 빙빙 돌기 십상이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는 비상계단은 말 그대로 비상시 사용하라며 굳게 잠겨 있었다.

아이와 함께 2층을 쇼핑하던 이경혜(38)씨는 “아이가 힘들어해서 나갈 길을 찾다 돌고 돌았다”며 “결국 쇼파 전시장에서 앉아서 쉬었다”고 했다. 기자 역시 레스토랑과 카페 앉았던 시간을 더해 2층을 빠져나가는데 3시간이 꼬박 걸렸다.

그만 구경을 마치고 나갈려고 하다가도 출입구를 찾다 마주한 쇼룸에 다시 눈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또 같은 곳을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다소 과해 보였던 소품들도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나마 1층 매장의 동선은 2층에 비해 덜 복잡했다. 소비자는 2층에서 고른 제품번호와 열 번호, 코너번호로 1층 창고형 쇼핑홀에서 제품을 살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린 끝에 계산대 너머 출구를 발견했다. 제품을 계산하고 나가야 출구로 이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물건을 사지 않으면 막혀 있는 계산원 옆을 비집고 나오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건 2층도 마찬가지다. 2층에서 나가는 문을 찾으면 어김없이 “결제할 물건이 없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물건을 사지 않으면 진입금지 표시가 커다랗게 박힌 문을 열고 외진 코너를 돌아 엘리베이터를 타야했다. 

 

◇ 직원찾기는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박미영(32)씨는 친구와 매장을 둘러 보다 직원을 한참이나 찾았다. 쇼룸에 진열된 조명의 조작법을 묻기 위해서였다. 쇼룸이 60여개나 되지만 어느 한곳에서도 들어서는 고객을 반기거나 제품 설명을 해주는 직원은 없었다.

대신 하얀 정사각형에 안내(information)를 뜻하는 ‘i’ 알파벳이 적힌 구역에 찾아가서야 직원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간혹 노란 옷을 입은 직원이 흐트러진 상품을 정리하기도 했지만 고객에게 먼저 인사하거나 상품을 권하지 않았다.  

덕분에 고객들은 쇼룸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다. 아이들은 제방인 양 침대에 눕거나 책상에 앉아 책을 보는 시늉을 했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전시된 조명을 켜고 끌 수 있다. 

직원이 없다보니 눈치 볼 필요가 없어 좋았다. 체험 공간마다 직원이 서있다면 눈치가 보일 수 밖에 없는 탓이다. 고객이 찾기 전에 직원이 고객 쇼핑에 관여하지 않은 것도 이때문인 듯하다.  

이케아 광명점을 여러차례 방문했다는 한 여성은 “다른 곳에선 직원이 '고객님'이라 부르면서 따라다니면 마음 놓고 쇼핑할 수가 없다. 이케아에선 그런 일이 없어 편하다"고 말했다.

반면 40대 남성은 “물건이 너무 많은데 뭐하나 물어보려고 해도 여기 저기 직원을 찾아다녀야 한다”며 “젊은 사람들은 몰라도 나이든 사람들은 힘들다”고 했다.  

이케아 매장에는 일정한 거리마다 인포메이션 데스크가 설치되어 있다. / 사진=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kjy@sisa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