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석학 릴레이 인터뷰]⑥ 이성환 고려대 뇌공학과 교수
“AI, 스마트폰처럼 쓰는 날 곧 도래”
리모콘의 발명은 혁신이었다. 리모콘 하나로 TV를 켜고 전등을 끌 수 있어 인간의 삶은 한층 더 편리해졌다. 전문가들은 이제 곧 리모콘조차 필요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 예언한다. 리모콘이 그랬듯, 인공지능(AI) 역시 빠르게 우리 일상을 파고들 것이라 확신한다.
국내에서 AI, 그 중에서도 뇌공학 분야를 이끌고 있는 이는 이성환 고려대 뇌공학과 교수다. 이 교수는 AI는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라 말한다. 기계 다리가 인간의 다리를 대신하고, 인간의 의지만으로 로봇을 움직이는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것이 이 교수 생각이다.
◇ “1980년대, 인공지능은 상상 속 학문”
이 교수는 뇌공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한국에서는 고려대 뇌공학과 주임교수, BK21 플러스 뇌공학글로벌소프트웨어 인재양성사업단 단장, 한국정보과학회 인공지능 소사이어티 회장 등을 맡고 있다.
뇌공학은 이름 그대로 ‘뇌를 공학적으로 운영하는 법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사람의 뇌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컴퓨터가 흉내낼 수 있도록 연구함과 동시에 뇌 질환을 진단·예측하는 법을 공부한다. AI 시대의 핵심 학문으로 꼽힌다.
이 교수의 20대는 AI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서울대학교 학부생 시절 계산통계학을 전공하며 비정형 데이터 계산법을 익혔다.
“1980년대만 해도 인공지능은 상상 속 이야기였다. 대학에서 통계와 전산에 대해 공부하며 20대를 보냈다. 대학원에 가서야 패턴인식이란 분야를 알게 됐고 그때부터 AI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패턴인식이란 인간의 시·청각 인식 활동을 기계가 대신 하도록 하는 학문을 말한다. 미래 AI 발전 속도를 좌우할 기술로서 세계적인 석학들이 연구에 참여 중이다. 전 세계 5만명 가까운 연구원들이 국제패턴인식학회라는 학술단체를 만들어 교류 중에 있으며, 이 교수는 국제패턴인식학회 이사로 재임 중이다.
◇ “국내 이공계 수준, IT 기술 등에 업고 빠르게 클 것”
이 교수가 생각하는 국내 뇌공학 분야 수준은 세계 평균에 못 미친다. 하지만 국내 IT 발전 속도가 빨라, 뇌공학 수준도 곧 탄력을 받게 될 것이란 게 이 교수 생각이다.
“대한민국 이공계 수준 자체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최대 5년 이상 떨어진다. 인력 뿐 아니라 정부지원, 시설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유럽 역시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협력 네트워크가 잘 돼 있어 국내보다 연구수준이 높다. 하지만 국내 IT 기술이 세계적 수준이기에 컴퓨터 관련 학문인 뇌공학도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 교수는 뇌공학 등 AI 연구가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필수적이라 말한다. 그 중에서도 보험 관련 정책 재정비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AI 기술은 당장 돈이 되는 학문은 아니다. 따라서 기업 투자보다는 정부에 의한 투자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 또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투자 비용이 비싸 상용화하기 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따라서 산업 전반을 키우려면 소비자가 관련 제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험제도를 신설·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지원이 없다면 기술은 연구 단계에서 끝날 수 있다.”
◇ “AI, 장애우의 희망”
이 교수는 AI가 인류에게 재앙이 될 것이란 비관론은 단기적으론 틀린 명제라 말한다. 현재 기술력으로는 로봇이 인간의 기초적인 의지를 읽어내는 작업도 버거운 수준이란 게 이 교수 설명이다.
“인간의 의지로 TV를 켜고, 기계 다리가 인간의 뇌파를 읽어 움직이는 정도의 기술력은 이미 어느 정도 개발된 상태다. 하지만 인류의 지능을 뛰어넘는 수준은 지금으로서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20년 이상 연구가 진행된다면 AI 지능에 대해 우려가 다시 제기될 수는 있을 듯하다.”
이 교수는 AI에 대한 우려로 인해 연구가 중단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당장 AI가 가져올 혜택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이 교수 생각이다. 무엇보다 신체가 불편한 장애우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다고 진단한다.
“팔·다리가 불편한 장애우들에게 인공지능은 기적이 될 수 있다. 지난 8월 LED만 보면 로봇다리가 뜻대로 움직이는 기술을 독일 베를린공대 클라우스 뮐러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개발한 논문이 신경공학저널(Journal of Neural Engineering)에 실렸다. 인간의 의지만으로 인공 다리가 움직이는 기술이다. 연구가 계속진행된다면 하체 마비 장애우들이 휠체어 없이 걷는 날이 올 수 있다.”
◇ “뇌와 컴퓨터 연결되는 날, 머지않았다“
이 교수는 또 AI로 인해 새로운 직업들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 예고한다. 즉, AI가 일부 직업을 없애 실업난이 가중될 것이란 주장은 과장됐다고 분석한다.
“과거 자동차가 처음 발명될 당시 마부들의 반발이 대단했다. 마차가 없어진다면 생계가 어려워지고 직업도 사라질 것이란 우려 탓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동차 산업이 커지며 새 일자리들이 창출됐다. 로봇 역시 마찬가지다. 관련 산업이 커지면 또 다른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이 교수는 멀지 않은 미래에 AI가 스마트폰처럼 일상에 스며들 것이라 예고한다. 이 교수의 목표는 은퇴 전 뇌공학 관련 연구를 매듭 짓는 것이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연구를 계속해 나갈 것이고 은퇴 전까지 관련 연구가 완성됐으면 한다. 연구가 마무리단계까지 진행된다면 AI는 일상이 될 것이다. 10년 전 스마트폰이 대중화될 것이라 예상한 이가 있었나. AI도 마찬가지다. 머지않아 기술의 한계성은 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