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가계부 어디로]① “박근혜 정부 절반 성적은 F학점” 지킬 수 없는 약속들
-사라진 고교 무상교육 예산…핵심 복지공약 재정 부담은 지방 정부에 떠넘겨 -‘성적표’ 같다더니 예산안 발표 시 언급조차 없어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 해 2013년 이른바 '공약가계부'를 발표했다. 역대 정권 처음으로 국정과제에 필요한 돈과 재원확보 방안을 대차대조표로 정리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스스로 "이 정부의 성적표"라고 언급하며 이행 사항을 주기적으로 점검·평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2년 7개월의 시간이 흘러 박 대통령 임기의 절반이 지났다. 추석 연휴를 맞아 박 대통령이 말한 성적표의 점수를 확인해보자.[편집자주]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가계부는 이미 실패했다. 공약은 줄줄이 후퇴했고, 재정 계획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는 야당의 말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공약가계부 작성에 핵심적으로 참여했던 여당 의원의 입에서 나온 쓴소리였다.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공약가계부를 기준으로 볼 때 사실상 F 학점이라는 언급도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국정과제 이행에 들어가는 비용을 134조8000억원으로 추산했다. 4대 국정기조에 따라 ▲경제부흥 33조9000억원(25%) ▲국민행복 79조3000억원(59%) ▲문화융성 6조7000억원(5%) ▲평화통일 기반구축 17조6000억원(13%) 등을 쓰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세입을 확충해 50조7000억원, 세출을 줄여 84조1000억원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약가계부 발표 당시 예산실장을 맡았던 방문규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지난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가계부에 있는 기초연금, 반값 등록금 등 대부분 공약사업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취재 결과 공약가계부에 포함된 140개의 국정과제 중 일부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대표 사례가 고등학교 무상교육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약가계부에서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2017년 전면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2014년부터 매년 25%씩 수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고교 무상교육 예산은 올해에 이어 내년 예산안에도 빠졌다. 김관복 교육부 기획조정실장은 "고교 무상교육은 국가 및 지방교육재정 등 전반적인 국가재정상황을 감안해서 추진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신혼부부·대학생·사회초년생 등을 위해 14만 호를 공급키로 한 행복주택 사업도 차질을 빚고 있다. 올해 6월을 기준으로 사업계획승인을 했거나 할 예정(3만8000여가구)인 물량은 총 6만4000가구로 전체 목표의 46% 수준이다. 국토교통부는 목표 물량 50% 달성이 눈앞에 있다고 밝혔지만 내년 이후 추가 부지 확보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에서 목동 지구는 지정을 해제했으며 다른 시범지구에서도 여전히 행복주택 사업 추진에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공급 확대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태다.
반면 공약을 무리하게 추진해 재원 마련에 비상이 켜진 사업도 있다. 0~5세 보육료·양육수당 예산은 2013년부터 올해까지 4조7000억원이 소요됐다. 공약가계부에서 5년간 필요하다고 본 5조3000억원의 89%를 이미 지출한 셈이다. 그나마도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을 시·도교육청의 의무지출경비로 편성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 공약가계부 발표 당시 경제 상황이 바뀔 때마다 ‘롤링플랜’(계획과 실적 간 차이를 고려해 계획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거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매년 예산안을 발표하며 한 차례도 공약가계부를 수정하지 않았다. 예산안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공약가계부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