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로 비춘 유쾌한 일상

2025-11-25     Living sense

벼룩시장에서 건져 올린 빈티지 보물들과 현대미술이 공존하고, 멤피스 디자인 주방의 대담한장식성과 미니멀한 핑크 침실의 섬세한 절제미가 극단의 대비를 이루며 생동하는 이 집에서, 건축가와 화가 부부는 자신들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가족의 삶을 완벽히 융합했다.

부부는 집에 놓을 다양한 가구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벼룩시장에서 찾은 1960년대 커피 테이블, 비코 마지스트레티의 체어 등 저마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어 더 소중하다.

파리 북부 교외의 생투앙Saint-Ouen은 유럽 최대 규모의 예술품 및 골동품 시장으로 명성이 높다. 약 7만㎡에 달하는 방대한 부지에 골동품 상인들과 전 세계에서 찾아온 방문객들로 활기가 넘친다. 북적이는 거리 한복판에 건축가 위고 뱅스Hugo Vince와 화가인 그의 아내 캐롤라인 데르보Caroline Derveaux가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드 세데의 새빨간 소파에 앉은 화가 캐롤라인 데르보와 그 뒤에 서 있는 건축가 위고 뱅스.

위고는 이곳으로 이사 온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7년간 친구로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한 우리에게 생투앙에서의 생활은 운명적인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동네의 역동성을 통해 영감을 얻지요. 무엇보다도 벼룩시장이 막 문을 여는 토요일 이른 아침 정적이 지나고 수많은 이야기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이 즐겁습니다.” 이어서 캐롤라인은 “집을 구할 당시 아들 라슬로Laszlo가 있었고, 이듬해에는 쌍둥이 딸 클레오Cléo와 칼립소Calypso가 태어날 예정이었습니다. 대가족을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절실했지요”라고 언급했다.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의 모습. 컬러, 형태, 소재 플레이로 그래픽적이면서도 편안함이 감돈다. 공간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시티 테이블과 코브라 체어는 부부가 집에서 가장 아끼는 가구다.

위고 뱅스는 파리 기반의 건축 회사인 아틀리에 아슈아Atelier HA의 공동 창업자로, 동료인 아델 누리Adèle Nourry와 함께 이 집의 리모델링을 맡았다. 이번 목표는 부부의 독자적인 영역인 건축과 현대미술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지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넘어, 캐롤라인은 공간의 첫인상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벽 안으로 냉장고를 매립하는 대신 그 존재감만큼은 강렬히 부각시켰다.

 “이곳에 처음 들어섰을 때, 저를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빛’이었습니다. 파리 같은 도시에서 하루 종일 자연광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호사이니까요.” 그렇게 빛과 색채를 실내에 가득 불어넣겠다는 의지는 다채로운 디자인을 선택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이를 더욱 극대화하고자, 그들은 마룻바닥 전체를 흰색으로 칠해 하얀 캔버스처럼 유지하기로 했다.

거실과 주방을 구분하는 벽체의 절단면, 라디에이터와 배관 역시 선명히 채색해 재기 발랄한 분위기를 더했다.

70㎡ 규모의 공간 구조도 새롭게 구성했다. 기존의 주방을 거실 한편으로 옮긴 덕분에 개방적이고 친밀하며 가족 중심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개조 과정에서 위고는 특히 주방 설계가 까다로웠다고 밝혔다. 다섯 식구를 위해 충분한 수납공간과 대형 냉장고라는 기능적 필수 요소를 갖추어야 했지만, 그는 현실적인 제약에 굴하지 않고 소재와 색채를 활용한 과감한 시도를 이어갔다. 부부의 창의적 비전과 장인들의 기술이 합쳐진 주방은 거대한 거울을 활용하여 트롱프뢰유Trompe-l’oeil, 즉 착시효과를 내도록 정교하게 계획되었다. “주방 가구 뒷벽 전체를 거울로 조성해 시각적 확장감을 노렸는데, 이 큰 반사면을 몸집 큰 가구로 가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붙박이 수납장 깊숙이 냉장고를 완전히 매립해 공간의 연속성을 고수하는 해법을 찾았지요.”

부부가 직접 만든 가구와 그림으로 가득한 아이방. 작은 코듀로이 소파는 라트비아의 아동 가구 및 인테리어 용품 브랜드 위기와마Wigiwama의 제품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가전 제품에서 나아가 멤피스Memphis 디자인을 접목한 유쾌한 오브제로 탈바꿈시키며 눈에 띄게 존재감을 강조했다. 멤피스 디자인은 1980년대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 양식의 핵심 운동으로, 기하학적 형태와 화려한 색 및 패턴을 활용해 장식성과 예술성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노란색과 민트색의 고광택 래커를 칠하고, 조형미가 돋보이는 손잡이가 달린 냉장고는 공간에 기발한 위트를 더함과 동시에 그래픽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전한다. 수납 가구의 도어와 선반 역시 냉장고의 색상과 통일해 일관성을 확보했다.

 

그 주변으로는 선반 여러 개를 설치해 평소 즐겨 읽는 책들을 배치했다. 조리대는 브러시드 스테인리스 스틸을 적용했는데, 이는 시간이 지나며 최적의 파티나를 형성하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 파티나란 금속이나 목재 표면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기는 깊고 은은한 광택, 한 마디로 세월의 흔적을 의미한다. 다이닝 공간 한가운데에는 이탈리아의 건축가, 디자이너, 그리고 멤피스 디자인 그룹의 설립자인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가 1983년 선보인 시티 테이블City Table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와 함께 놓인 4개의 코브라 체어는 지오토 스토피노Giotto Stoppino가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고안한 것으로, 이 두 가구는 부부가 가장 아끼는 소장품 중 일부이다.

벌우드로 만든 헤드보드는 미니멀한 부부 침실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가미하기 위한 시각적 포인트다. 수납이 가능한 침대 하단부는 거울로 마감했다.

주방과 나란히 위치한 거실에도 알록달록한 색들이 넘실댄다. 두 공간 사이, 벽과 천장의 경계면은 전통적인 몰딩 대신 선명한 레드 톤이 교차하는 스트라이프 패턴으로 마감했다. 강렬하고 원색적인 대비는 공간을 경쾌하게 분할하고 도발적인 미학을 완성하는 데 일조한다. 빛의 유희를 창조하는 커다란 ‘태양 거울’ 천장 조명은 아들과 함께 만든 것이다. 캐롤라인은 “햇볕을 좋아하는 라슬로가 거실에 늘 해가 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조명을 만들게 되었죠”라고 사연을 들려준다. 가족의 예술적 협업과 사랑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위고는 가구 선정 과정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놓는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고객들에게 제안할 가구를 찾기 위해 벼룩시장을 누볐던 것처럼, 이번엔 저희 집에 놓을 다양한 가구들을 고르기 위한 보물찾기의 여정을 오래 지속했습니다. 다만, 각자 원하는 바가 매우 달랐기 때문에 상호 합의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죠. 결정하기까지 거의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캐롤라인 데르보의 그림으로 장식한 공간. 그녀는 남편에게 방문 상단에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내달라고 요구했다.

스위스의 가구 브랜드 드 세데De Sede의 새빨간 가죽 소파가 시각적 구심점이 되는 가운데, 그 아래에는 프랑스의 텍스타일 브랜드 시빌 드 타베르노Sibylle de Tavernost의 러그를 깔아 안락한 질감을 더한다. 이를 중심으로 아르떼미데Artemide를 위해 비코 마지스트레티Vico Magistretti가 디자인한 녹색의 비카리오Vicario 라운지체어, 노란색 아동용 의자의 비비드한 컬러가 팝아트적인 감각을 부각시킨다. 1960년대식 커피 테이블은 생투앙의 벼룩시장에서 찾았다. 벽면에는 캐롤라인 데르보 본인의 작품인 코쿤 사이클Cocoon Cycle을 걸어 두었다.

 

집은 예술과 건축, 빛과 색채로 꽉 찬 즐거운 생활 터전으로,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삶의 기쁨’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공유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벽난로가 있는 안방에서 바라본 거실. 싱그러운 그린 인테리어가 집에 생기를 돋운다.

앞선 공간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심플한 마스터 베드룸은 부부가 제일 애착하는 장소다. 방은 부드러운 파우더 핑크 색조로 물들어 있으며, 동일한 톤의 커튼이 온종일 포근한 온기를 선사한다. 자연이 빚어낸 유니크한 나뭇결이 특징인 벌우드Burl Wood에 래커를 칠하고 물결무늬로 맞춤 제작한 침대 헤드보드에 대해 캐롤라인은, “하트를 연상시키는 모양이 마치 러브호텔에서 볼 법한 침대 같죠?”라며 농담을 던진다. 수납형 침대 프레임은 거울로 마감하고,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아르데코 양식의 벽 조명이 어우러져, 장난기 넘치는 센스를 보여준다. 한편, 침실과 주방을 비롯한 집 안 곳곳에서 ‘거울’은 주요한 디자인 요소 겸 차별화된 장치다. 복도부의 천장 전체도 거울로 덮어 은은한 사이키델릭 효과를 부여했다. “거울을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더불어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려는 실용적인 관찰 방법이죠!”라고 위고는 덧붙인다.

가족의 일상을 포용하는 천장 조명 ‘태양 거울’은, 아들과 함께 제작해 더욱 애정이 간다.

부부가 이토록 다채로운 공간을 조성한 것은 직관적인 미적 선택 그 이상이다. 비판적인 눈으로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고 급진적인 스타일을 시도하기까지, 그간 예술사에 족적을 남긴 거장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부부는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과 장 팅겔리Jean Tinguely, 건축가 앙티 로바그Antti Lovag가 설계한 미래 지향적인 모습의 버블 하우스인 라 메종 베르나르La maison Bernard, 멤피스 그룹의 설립 멤버였던 나탈리 뒤 파스키에Nathalie du Pasquier와 그녀의 파트너 조지 소든George Sowden과 같은 인물들을 거론하며, “사랑 안에서 신선한 모험을 감행했던 선구자들에게 늘 주목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위고는 마지막으로, “집은 예술과 건축, 빛과 색채로 꽉 찬 즐거운 생활 터전으로, 우리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삶의 기쁨’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가르치고 공유하는 장이기도 합니다”라고 결론짓는다.


CREDIT INFO

freelance editor    유승주
photographer    아모리 라파라 Amaury Lapar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