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설계 인재 뺏기' 나선 마이크론

‘HBM4 지연설’ 속 국내 반도체 경력직 엔지니어 대상 영입 제안 활발 대만 D램 생산공장 근무할 HBM 설계 엔지니어 채용 “한국도 설계 엔지니어 부족···삼성·SK에 껄끄러운 상황”

2025-11-25     고명훈 기자
마이크로  HBM4 시제품 / 사진=마이크론

[시사저널e=고명훈 기자] 차기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엔비디아 품질 승인 지연 논란에 휩싸인 미국 마이크론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있는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국내에서 신입·경력 HBM 설계 엔지니어 채용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25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다음달 신입 공채와 별개로 HBM 설계 경력 엔지니어채용을 공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포함해 국내 반도체 회사에서 재직 중인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영입 제안을 펼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마이크론 본사 채용팀에서 링크드인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연락하기도 하고, 헤드헌터를 통해서도 접근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마이크론이 채용 중인 직무는 디지털 및 아날로그 회로 설계 및 분석 담당이다. 구체적으로 D램 회로 시뮬레이션과 최적화 및 플로어 플래닝(Floor Planning)을 포함하고 있다. 플로어 플래닝은 칩 레이아웃 영역 내 메모리 셀을 최적의 위치에 배치하고 연결하는 과정으로, 칩 설계 과정에서 물리적 설계 단계의 핵심 공정으로 꼽힌다.

삼성 서초사옥(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 사진=연합뉴스

마이크론이 국내 엔지니어들에게 제안하는 주 근무지는 대만 타이중 공장(팹16)이다. 해당 공장은 마이크론의 최대 D램 생산기지이자 첨단 HBM의 핵심 생산 거점이다. 기존 타오위안 공장(팹11)과 더불어 연내 월 생산량 41만 5000장 규모의 캐파(생산능력)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작년엔 대만 디스플레이 기업 AUO의 타이중·타이난 공장 두 곳을 인수해 HBM용 D램 생산기지로 전환하는 등 캐파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두 공장의 합산 생산능력은 연말까지 월 10만장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다음달부턴 서울대, 고려대, 한양대 등 국내 주요 대학을 돌며 기업설명회와 신입사원 현장 채용도 진행한다.

마이크론은 앞서 올 초 일본 법인 마이크론 재팬을 통해서도 국내 신입 엔지니어를 모집하는 공개채용을 진행한 바 있다. 마이크론 재팬의 히로시마 공장에서 근무할 인재를 채용한 것으로, 주요 모집 분야는 최첨단 D램 등 반도체 메모리 솔루션 개발, 설계, 제조 엔지니어 등이다.

마이크론은 히로시마 공장을 1γ(감마) D램 공정을 적용한 차세대 HBM의 생산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1감마 공정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c 공정에 해당하는 차세대 D램 기술로, 10노급 6세대 D램 공정에 해당된다.

삼성전자는 내년 주력 제품으로 자리 잡을 HBM4(6세대)부터 코어 다이 제작에 해당 D램 공정을 활용했으며,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각각 2027년을 목표로 1c·1감마 D램을 활용한 차세대 HBM을 준비 중이다. 마이크론은 내년 가동을 목표로, 히로시마 공장에 월 생산량 17만장 규모의 캐파를 구축할 예정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이 대만을 주요 거점으로 HBM을 생산하다 보니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인재 채용을 확대 중이며, 특히 메모리에 강점을 둔 한국에서 HBM 설계 경력 엔지니어에게 좋은 여건에서 근무할 수 있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며 적극적인 영입 활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마이크론의 최근 이러한 행보가 해외 경험을 쌓고 싶은 국내 인재들의 수요와 맞물리면서 대만 타이중 공장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비중도 실제 전보다 크게 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좋은 인재를 영입하겠다고 온 해외 기업을 우리가 막을 순 없겠지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입장에선 설계 엔지니어 한명 한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껄끄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현재 주요 거래선인 엔비디아로부터 HBM4 납품을 위한 품질 인증 절차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진다. 홍콩 GF증권은 이달초 내놓은 분석 보고서를 통해 엔비디아가 제시한 데이터 처리 속도 ‘초당 10Gbps’를 맞추는 데 마이크론이 난항을 겪고 있다며, HBM 전면 재설계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HBM4 대량양산 시점이 경쟁사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보다 1년가량 늦은 2027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단 전망이다.

마이크론은 해당 보고서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엔비디아에 전달한 자사 HBM4 시제품이 초당 11Gbps 이상의 속도와 2.8TB/s급 대역폭을 달성했으며, 기존 계획대로 내년 상반기 첫 출하를 목표로 한단 내용이다. 회사는 이미 내년 HBM3E(5세대)와 HBM4 물량의 판매를 모두 완료했다고 전했다.

스콧 더보어 마이크론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 RBC 캐피털 마켓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최근 (마이크론이 HBM4 전면 재설계가 불가피하다는 내용의) 보도 중 상당수는 특정 국가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내용으로, 우리는 HBM4 설계 변경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적이 없고,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BM4는 가능한 많은 부분에서 HBM3E의 공정, 설계, 검사 단계를 동일하게 가져가는 전략으로 개발됐으며, 성숙 수율에 도달하는 속도는 전작 보다 훨씬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비용 개선과 수익 확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