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크레딧 전망]① 조선·방산, 업황 견고···상향 사이클 본격화

K조선·K방산 실적 호조···주요 기업 신용등급 잇따라 상향 HD현대·한화오션·삼성중공업, 실적 회복에 재무지표 개선 방산 4사, 대형 수출 계약 본격 매출화···추가 상향 여지도 자금 수요 커지는 2026년, 회사채 조달 환경 ‘우호적’ 유지

2025-11-24     정용석 기자
HD한국조선해양이 2023년 인도한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시운전 모습. / 사진=HD한국조선해양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글로벌 경기 둔화와 금리 부담이 기업 전반의 수익성을 짓누르는 상황에서도 조선·방산업계의 신용도는 오히려 상승세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초대형컨테이너선 중심의 발주 확대와 대형 방산 수출이 실적을 밀어올리면서 주요 기업들의 신용도가 차례로 상향된 것이다. 

신용평가사들은 올해 등급을 올린 데 이어 내년에도 추가 상향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업황 회복이 실적 개선과 현금흐름 확대로 이어지면서 조선방산 기업들의 재무지표가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어서다.

◇ 고부가 선박 일감 쌓이자 신용도↑

올해 조선업계 신용등급을 끌어올린 건 고부가 선박이다. 인도 시점에 가장 많은 매출을 인식하는 조선업 특성상 어떤 잔고가 쌓여 있는지가 향후 신용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과거 저가 수주한 일감이 모두 해소되고 LNG운반선, 초대형컨테이너선 등 수익성이 좋은 선박이 본격적으로 인도되기 시작하면서 수주잔고의 질이 개선됐다는 게 신평사들의 평가다. 

조선소들의 실적 개선이 이어지자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HD현대중공업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 ‘안정적’에서 A+ ‘긍정적’으로 바꿨다. 별도 영업이익이 2023년 1778억원에서 지난해 7025억원, 올해 3분기 누적 1조4000억원대를 넘기며 실적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평가다. 순현금 규모가 3조원 이상으로 커지면서 재무지표도 안정됐다. 내년 12월 예정된 HD현대미포 합병도 사업 안정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반영됐다.

한화오션은 올해 가장 큰 폭의 등급 조정을 받았다. 한국기업평가는 무보증사채 등급을 BBB+에서 A-로 상향했다. 2020년 8조6000억원 수준이던 수주잔고가 올해 9월 말 기준 28조9000억원으로 확대되면서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늘어나는 구조로 바뀌었다는 평가다. 영업이익률은 같은 기간 0.9%에서 9%대까지 올라섰다.

삼성중공업도 지난 6월 두 신평사(나이스·한기평)가 BBB+에서 A-로 신용등급을 상향했다. 32조원 수준의 수주잔고를 확보해 향후 매출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등급 상향에 작용했다. 다만 단기차입금이 여전히 큰 폭으로 남아 있어 운전자본에 따른 재무 부담은 남아있다는 분석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 사진=한화

◇ 방산, 올해 신용도 가장 강한 상승세

신평사 평가에서 가장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인 업종으로는 방산이 꼽힌다. 전 세계적인 지정학 위기가 계속되면서 K방산 수출이 급증했고, 이에 따라 매출 성장과 현금창출력 개선이 동시에 나타난 결과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21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무보증사채 및 기업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끌어올렸다. 실적 개선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올 3분기 누적 매출은 18조원을 넘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뛰었고, EBITDA도 3조원에 가까운 수준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4조원이 넘는 자본을 확충한 점이 신용도 개선의 핵심 근거로 제시됐다. 방산 수주가 수년 간 이어질 구조인 만큼 향후 투자 확대에도 재무 부담을 감당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한화그룹의 방산 계열사인 한화시스템도 AA-(긍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조정됐다. 신평사들은 방산·ICT 양대 사업부의 외형 성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익성이 견조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등급 상승 원인으로 꼽았다. 군용 레이다·전자전 시스템 등 첨단 무기 분야의 수주가 확대되면서 실적의 변동 폭이 줄어들고 있다는 평가다.

현대로템은 수주잔고가 쌓이면서 신용등급이 오른 대표적 사례다. 폴란드 K2 전차 1·2차 계약을 따내며 디펜스솔루션 사업이 전사 실적을 주도하는 가운데 레일솔루션 부문에서도 안정적인 국내외 물량을 확보했다. 올해 신평 3사는 모두 현대로템의 등급을 A+로 상향했다.

LIG넥스원도 지난달 AA-(긍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기업 신용등급이 한단계 올랐다. 천궁-II 수출에 따라 수주잔고가 2021년 8.3조원에서 올해 23.5조원으로 폭증한 점이 판단 근거로 작용했다. 수출은 내수보다 이익률이 높아 수익성 개선폭도 컸다. KAI는 국내 완제기 사업의 독점적 지위와 안정적인 군수 수요를 바탕으로 AA-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KAI)의 FA-50 경공격기. / 사진=KAI

◇ 내년 등급 상승 가능성은

조선과 방산 기업의 신용도 상승 흐름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신평사들은 올해 보고서에서 등급 조정의 기준을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했다. 조선업의 경우 ▲고부가 선박 비중 유지 ▲운전자본 부담 완화 등이 핵심 조건으로 꼽힌다. 

올해 조선 3사는 LNG운반선·초대형 컨테이너선 등이 전체 수주잔고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선가 하락 리스크를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올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 운반선 18척 가운데 16척을 한국이 수주했다. 나머지 2척은 한화 필리조선소가 건조를 맡는다.

여기에 미국 조선 재건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 대형 해외발 물량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어 내년에도 신용도 개선 가능성은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잠수함 등 특수선 수요가 늘어난 것도 호재다.

방산업계는 ▲현금창출력 강화 ▲지속적인 수출 확대 등이 등급 상향의 핵심 지표로 제시됐다. 단순히 올해 수출 실적이 좋았다는 수준을 넘어서 대형 프로젝트가 매출과 현금흐름으로 ‘제대로 흘러들어오는지’가 관건인 셈이다. KF-21, 폴란드 K2·K9 프로젝트 같은 다년간 사업이 본격 매출화되는 시점에 등급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한화 필리조선소 전경. / 사진=필리조선소 링크드인

◇ 조달 환경 ‘우호적’ 전망

조선·방산업체들의 신용등급이 올라가면서 회사채 시장에서의 조달 여건도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앞서 현대로템은 지난 10월 진행한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4310억원이 몰리며 8배의 경쟁률을 보였다. 한화시스템 역시 수요예측에서 1조6000억원의 주문이 들어오며 ‘완판’에 성공했다. A-에서 A로 올라선 한화오션도 시장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목표액의 6배 이상을 모았다.

조선·방산업체들이 내년부터 미국·폴란드 등 해외 시장에서 대규모 투자를 병행해야 하는 만큼 회사채 발행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높은 금리에도 자금 조달이 수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엔 “등급 개선으로 위험이 줄었다”는 신평사의 판단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한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조선과 방산 업종 기업들은 현금창출력이 확대되고 있어 유동성 대응능력 및 재무안정성은 우수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방위산업의 경우 정부의 예산집행 시기에 따라 운전자본 변동성이 높게 나타나지만, 현금창출력이 개선돼 양호한 재무안정성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