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재용 ‘원조 복심’ 박학규의 사업지원실, ‘TF’ 뗀 값 할까
[시사저널e=엄민우 IT전자부장] 작년 이맘때쯤 삼성전자는 DX부문 경영지원실장이었던 박학규 사장을 ‘사업지원TF 사장’에 임명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았지만 삼성 사정에 정통한 이들은 당시 이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업지원TF는 과거 미래전략실(미전실)이 해체된 이후 만들어진 조직이다. 미전실만큼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하진 못했지만 사실상 삼성전자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해 왔다. 주요 M&A 등과 관련한 논의도 모두 이 조직에서 이뤄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업지원TF는 정현호 부회장이 이끌고 있었다. 정 부회장은 잘 알려진 대로 삼성의 2인자였다. 그런데 그 바로 아래 박학규라는 거물이 배치된 것이다.
정현호 부회장이 집중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박 사장을 진정한 이재용의 원조 복심으로 여긴다. 과거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이 이 이재용 회장의 경제교사 역할을 하던 시절부터 인연이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의 ‘믿을맨’인 박 사장이 또 다른 측근 정현호 부회장 바로 아래 배치된 인사를 놓고 ‘옥상옥’ 인사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던 까닭이다. 당시 삼성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훗날 정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면 그 자리를 박 사장이 맡게 되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둔 인사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적어도 결과만 놓고 보면 그 해석이 정확하게 맞았다. 정 부회장은 사실상 일선에서 용퇴했고 그 수장에 바로 밑에 있던 박 사장이 앉게 됐다.
이제 시선은 자연스레 박 사장이 이끄는 사업지원실로 쏠린다. 박 사장의 사업지원실은 정현호 부회장의 사업지원TF와 다르다. 임시 조직인 ‘TF’가 아닌 상시 조직이 됐다는 점이 근본적 차이다. 법적 리스크를 끝낸 이 회장의 자신감이 반영됐다고 하는 대표적 포인트다. 사실상 ‘이제 우리도 실질적인 컨트롤타워가 있다’고 외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내부에 따르면 사업지원실은 조직에 퍼져 있던 몇몇 인재들을 불러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여전히 삼성전자 사업지원실을 여전히 과거 미전실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기본적으로 삼성 전체 그룹경영에 관여하지 못한다. 사업지원TF가 그랬듯 전자계열사로 영향범위가 제한된다. 또 기능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미전실이 수행하던 대외(대관) 기능은 여전히 빠져 있다. 자유롭게 대외활동을 하는 경쟁사들과 다른 입장에 놓인 것은 매한가지다. ‘국정농단 사태’의 후유증이다.
어찌됐든 많이들 기대하듯 이재용 회장이 본격적으로 본인의 색을 드러내려면 이 사업지원실이 제대로 작동해야 함은 틀림없다. 일단 오너의 복심이 수장이 됐다는 점, M&A팀도 신설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직을 다잡고 반도체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데엔 부족함 없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박 사장이 ‘재무통’이란 점에 우려하지만 아직은 ‘기우’다. 내부에 따르면 박 사장은 재무통의 장점인 꼼꼼함을 갖췄지만 추진력도 강하며 주요 사업부문에 대한 이해도 깊다고 한다. 최근 들어 삼성전자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재무통들이 주목받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관료화’의 문제이고 재무통이라고 무조건 비용만 줄이는데 혈안인 ‘월급쟁이 마인드 직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전영현 부회장과 노태문 사장에게 신뢰를 보여준 올해 인사 성격을 감안하면 박학규의 사업지원실은 ‘TF’만 뺀 것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재용 회장의 자신감과 박학규 사장의 살림살이, 전영현·노태문 투톱이 어우러진 삼성전자의 모습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