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에도 ‘미장 불패’···언제까지 지속될까
4분기 한 달여 만에 美 주식 99조원 매수···1분기 120조원 대비 매수세 가팔라 강세장으로 인기, 기술주 상승세도 한 몫 美 증시 전망은 엇갈려···“유럽·신흥국 분산투자” 제안도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국내 개인, 기관 투자자들이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세 속에서 최다 투자 중인 미국 주식을 꾸준히 순매수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투자자들은 미국 증시(미장)를 꾸준히 상승하는 안전 투자처로서 신뢰하는 모양새다. 다만 증권업계에선 미국 증시의 향후 추이에 대해 엇갈린 전망을 내놓았다.
21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일별 미국 달러 매매기준율은 지난 10일 이후 10거래일 연속 1450원선을 넘겼다.
평균 환율은 1462.22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1397.17)보다 65.05원(4.66%)나 상승했다. 국내 투자자들의 외화증권 적극 매매, 기업별 대미 투자 확대, 엔화 약세 등의 여파로 환율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단 분석이다.
원·달러 환율이 높아지면 국내 투자자들은 보유 중이던 미국 증시 주식을 매도할 때 더 큰 환차익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을 계속 순매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 전날까지 한 달여 기간 국내 투자자들이 매수한 미국 주식 규모는 670억9167만달러(약 99조원)로 집계됐다. 올해 분기별 최고 매수액이 1분기 810억8708만달러(약 120조원)인 점을 고려하면, 4분기 매수세가 가파르다. 또한 올 4분기 들어 절반 가량 지난 시점인 현재 순매수액 112억7556만달러를 기록해, 올해 들어 매 분기 순매수세를 유지하는 중이다.
◇ 서학개미들, 美 지수 추종 ETF에 수조원 순매수
국내 투자자들은 최근 유례없는 상승세를 이어온 한국 증시에 적극 투자하는 동시에, 안정적인 강세장으로 꼽히는 미장에 주목해온 것으로 분석된다. 자산운용사들은 이 같은 관심도를 고려해 미국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적극 운용해 성과를 거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미국 증시 지수를 추종하는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중 거래량 상위 상품 ‘TIGER 미국S&P500’(미래에셋자산운용)에 올해 들어 전날까지 2조6754억원이나 순매수했다. 또 다른 인기 상품 ‘KODEX 미국S&P500’(삼성자산운용)은 순매수액 1조3007억원을 기록했다.
당국이 내년 하반기 나스닥의 24시간 주식거래 개시에 앞서, 그간 중단됐던 미국 주식의 국내 주간 거래가 이달 초 재개된 점도 미국 증시 투자를 유인하는 요소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작년 8월 미국 증시 대체거래소인 블루오션이 시스템 과부하를 일으켜 국내 투자자가 요청한 6333억원 규모 거래가 일방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진 후 미국 주식 주간 거래를 중단했다. 이후 1년 3개월만인 지난 4일, 대체 거래소를 추가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고 주간 거래를 재개했다.
현재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증시가 폐장한 국내 주간에 대체 거래소를 통해, 직접 지정한 가격으로 주식 매매를 진행할 수 있다. 증권사들이 주식 거래 중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실시간 환율 우대, 소수점 거래 등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어 고객 편익이 더욱 커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업계 일각선 “미국 재정 불균형 직시해야”
증권가에서는 미국 행정부의 경기부양 위한 금리 인하 기조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국내 투자심리를 더욱 부추길 것으로 예상한다. 향후 미국 증시 상승세의 관건인 인공지능(AI) 산업에 종목별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 점도 증시에서 호재로 여겨진다.
엔비디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대형 기술기업(빅테크)들은 AI 데이터센터에 천문학적 규모로 투자할 계획이다. 외부 투자자들이 이에 동조해 미장에 자금을 지속 유입함에 따라 유동성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미장의 투자 매력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NH투자증권 글로벌전략팀은 최근 월간 보고서를 통해 “내달 초 미국 고용지표 둔화 발표가 이뤄지면 금리 인하 사이클이 재개될 가능성이 확대될 것”이라며 “이와 함께 AI 시설투자, 대외 무역협상 성과 등에 따른 종목별 펀더멘털이 개선되고 가치 평가(밸류에이션) 부담이 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업계 일각에선 미국 증시에 편중된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의 내년 이후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 이하 수준을 보일 것이란 비관론에 무게를 실은 주장이다.
첨단 기술 분야와 전통 제조업 분야 등 산업별 투자 규모나 소득·소비구조의 양극화와 같은 불균형 상태가 경기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단 지적이다. AI 등 기술 관련 투자의 현재 속도가 유지되기 어렵고 인플레이션, 소비자 구매력 약화 등이 작용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일부 자산운용사들은 향후 투자 전략 일환으로 미국 주식 중심의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유럽 산업재·방위 산업, 신흥시장 증시 등으로 자금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제안했다.
NH아문디자산운용은 “미국 성장 추이는 단기적으로 완만한 둔화세를 보이고 이후 회복되겠지만 잠재 성장률 이하로 남을 것”이라며 “투자자들은 글로벌 관점을 채택해 증가하는 주식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미국의 재정 불균형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