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사 과실 정황 포착···신안 좌초 선박건조사도 난감
전문가 “그라운딩은 배가 항로대로 가는지 모니터링 하지 않은 항해사 실수 가능성 커”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270명 가까이 태운 퀸제누비아2호(IMO번호 9901386)가 전남 신안 해안에서 좌초하면서 배를 건조한 HD현대미포(구 현대미포조선)가 난감해졌다. 해양경찰청을 비롯해 업계 전문가들은 사고 원인으로 뒤늦은 방향 전환 등 운항 과실을 유력하게 거론한다. 다만 건조사 입장에서는 선령이 5년도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과거 잦은 고장 전례가 빈번한 선박이었던 만큼 정확한 사고 원인을 결론 낼 때까지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19일 오후 8시 17분께 전남 신안군 장산면 장산도 남방 족도에 2만6546t급 여객선 퀸제누비아2호가 좌초했다. 퀸제누비아2호는 승객 246명과 승무원 21명 등 총 267명을 태우고 당일 오후 4시 45분 제주에서 출발해 오후 9시께 목포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여객선은 장산도 인근 무인도인 족도 위에 선체가 절반가량 올라서며 좌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선박이 방향 전환을 늦게 해 평소 항로를 벗어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선장 또는 항해사의 운항 과실 가능성을 높게 염두에 둔 것이다. 사고가 난 신안 장산도 인근 해역은 연안 여객선 항로가 밀집한 협수로로 자동항법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수동 운항해야 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국해기사협회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그라운딩 상태라고 하는데, 이 경우 항로를 잘못 잡거나 배가 항로대로 가고 있는지를 모니터링을 하지 않은 항해사의 실수가 크다. 이런 사고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인재로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육상에서 보는 지도의 경우는 등고선 땅의 높고 낮음을 알 수 있다. 역으로 바다에서는 배가 항해하기 위해 해도를 보고 수심을 파악한다. 해수선이 어느 정도인지에 맞춰서 여유수심을 갖고 항로를 잡아야 해서다. 항로는 그렇게 잡았을 텐데, 부주의함으로 인해 항로를 이탈했기 때문에 이를 뒤늦게 알고 ‘이대로 가다가는 배가 문제가 되겠다’ 싶어 방향 전환을 했지만 배가 자동차처럼 방향 전환이 쉽게 안 돌아가니 작은 섬에 걸쳐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확한 결과가 나오기까지 선박을 건조한 회사 입장에서는 찝찝함이 남을 수밖에 없다. 특히 업계에서는 유난히 잦은 고장이 있던 선박으로 기억된다. 이 선박은 HD현대미포가 2019년 11월 여객운송사업자 하이덱스스토리지로부터 의뢰받은 여객선을 건조 후 2021년 인도한 것이다. 선주는 같은 해 12월 인천~제주를 첫 취항했으나 한 달 만에 엔진 고장으로 운항을 중단했다.
제조사인 HD현대미포와 외부 평가기관인 노르웨이선급(DNV)이 고장의 발생 원인으로 엔진의 실린더에 금속조각이 들어간 점을 지목하면서 주요 부품을 새로 교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후에도 엔진이 거듭 말썽을 일으키면서 2022~2023년 2년간 6차례 가량 휴항을 반복했다.
이후 선박을 인도받은 지 2년 만인 2023년 11월 하이덱스스토리지는 씨월드고속훼리에 선박을 매각하면서 여객운송사업자 면허를 반납하고 관련 사업을 접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배를 700억원대에 새롭게 인수한 씨월드고속훼리가 목포~제주 운영하다 하루 전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빠르게 수습되면서 인명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자칫 HD현대의 건조 능력에 오점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특히 HD현대중공업은 ‘마스가’ 대응 및 글로벌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다음 달 1일 HD현대미포와 통합법인 출범을 열흘 가량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브랜드 관리와 품질 신뢰도 측면에서 불필요한 잡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HD현대 관계자는 “아직 해경 등으로부터 수사 협조 요청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고 원인과 관련해서는 선체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