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민 작가의 시간과 감각의 아름다움 탐구

2025-11-20     Living sense

Sculpting Time in Glass

예술과 주얼리는 결국 창작자의 감성과 철학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예술가들의 작업 세계를 들여다보며, 그 안에 담긴 개인적인 사유와 미적 감각을 주얼리라는 키워드로 풀어가는 아티스트의 보석함.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유리라는 물성을 통해 시간의 흔적과 감각의 아름다움을 탐구해 온 박선민 작가@re_bottle_maker다.

‘Re: Antique Blown Series’

존재감 있는 2개의 진주가 우아하게 시선을 끄는 ‘더블 진주 투웨이 귀걸이’. 탈부착이 가능한 드롭 펜던트는 다른 스터드 귀걸이와도 매치할 수 있어 다채로운 스타일로 즐길 수 있다. 15만9000원 룬느Lunne.

4가지 크기의 진주를 크기를 달리하며 리듬감 있게 엮어낸 ‘스피니 펄 네크리스’. 클래식한 진주에 위트를 더해, 하나만으로도 스타일을 완성해 주는 유니크한 아이템. 9만5000원 먼데이에디션Monday edition.


‘시간의연결성’

슬림한 로프 스네이크 체인 위에 볼드한 볼 장식이 포인트를 더한 ‘무빙 볼 네크리스’. 실리콘 볼로 길이 조절이 쉬워, 목에 가깝게 혹은 길게 내려 다양한 무드로 연출할 수 있다. 3만원 헤이Hei.

묵직한 밴드 위에 다양한 크기의 실버 볼을 세팅한 ‘버블 링’. 움직일 때마다 실버 볼 참이 부드럽게 흔들리며 손끝에 우아한 리듬을 더한다. 6만9000원 에포르Efor.


‘시간의연결성’

에메랄드 컷 블루 사파이어를 감싸듯 둘러싼 크고 작은 클러스터가 고급스러운 빛을 은은하게 채워주는 ‘블루 클러스터 반지’. 손끝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특별한 아이템이 되어줄 것이다. ‘블루 클러스터 반지’. 15만원 미스그린MSGRN.

애셔 컷 스톤의 섬세한 커팅 라인을 따라 프롱의 모양과 각도까지 정교하게 완성한 ‘애셔 테니스 팔찌’. 장식이 90도까지 부드럽게 열려 손쉽게 착용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됐다. 37만원 미스그린MSGRN.

 

INTERVIEW

유리 작업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본 유리공예 다큐멘터리가 시작이었어요. 가구부터 소품까지 모두 유리로 채워진 공간이 인상 깊게 남았죠. 하지만 국내에 유리를 전공할 수 있는 학교가 많지 않아 금속과 나무를 다루는 공예과로 진학했어요. 그러다 부산 여행 중 우연히 유리공방을 발견해 ‘프레임워킹’을 처음 접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유리 작업을 시작했어요.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리가 제 작업의 중심이 되었고요.

유리가 가진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유리의 가장 큰 매력은 색감과 물성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일본의 사타케 글라스처럼 캔디를 닮은 파스텔톤 컬러들은 볼 때마다 마음을 설레게 하거든요. 또 뜨거울 때는 살아 움직이는 듯 말랑말랑하게 변하다가, 식으면 단단하게 굳어 형태를 고정하는 그 순간의 변화도 정말 매력적이에요. 손끝으로 그 유연한 변화를 따라가며 감각적으로 느끼는 과정이야말로 유리 작업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싶어요.

유리라는 재료는 똑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작가님의 작업 방향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처음 유리를 시작했을 때는 그 화려함과 반짝임에 매료되어, 투명한 유리의 속성을 ‘여성의 나르시시즘’이라는 주제로 풀어냈어요. 하이힐, 가방, 꽃잎처럼 시선을 끄는 오브제를 통해 겉을 더 화려하게 꾸미는 현대 여성의 모습을 표현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겉모습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나 시간의 흔적에 더 관심이 생겼어요. 그 계기가 된 것이 유리병이었죠. 2014년 제주도 ‘모래로부터’ 전시에서 해변에 버려진 병을 작품 재료로 사용하면서, 이미 완성된 물건을 해체해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처음 경험했어요. 산업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병이 새로운 의미를 품고 조형물로 다시 태어나는 그 과정이 깊은 울림을 주었고, 이후 제 작업의 중요한 흐름이 되었습니다.

최근 작업에서는 유리의 투명함보다 오히려 불투명한 질감이 더 두드러지는데요. 이런 변화에는 어떤 생각이나 계기가 있었을까요?
투명한 유리는 말 그대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불투명하거나 반투명한 유리는 오히려 모든 걸 드러내지 않아서 더 은유적으로 느껴져요. 그러던 중 박물관에서 오래된 유리 유물들을 마주했는데,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거쳐 흐릿하게 변한 유리들이 마치 시간의 흔적을 품은 사물처럼 다가왔죠. 그 경험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시간의 연결성’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특히 촉감의 변화도 인상적이었어요. 원래는 차갑고 매끄러운 재료지만, 풍화된 유리는 오히려 부드럽고 사각거리는 촉감을 주거든요. 이렇게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감각적으로 확장되는 유리의 물성이 저에게는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공예의 지속 가능성은 무엇인가요?
저는 공예가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누군가의 일상에 스며들며 감정과 기억을 쌓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가족과의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싶다면서 와인병을 건네며 작품을 의뢰하신 분이 있었어요. 단순한 빈 병이 아니라 그날의 소중한 기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으셨던 거죠. 저는 그 병을 해체하고 조형적인 형태로 다시 만들어드렸고요. 이렇게 누군가의 기억이 담긴 사물이 새로운 형태로 태어나 또 다른 시간을 함께 채워가는 일, 그런 작업이야말로 제가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공예의 모습이에요.

작업에 영감을 주는 것은 주로 어떤 것들인가요?
저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유리병들을 유심히 보는 편이에요. 술병, 음료수 병, 화장품 병처럼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것들이 제 작업의 출발점이 되곤 하죠. 기본적으로 잘 버리지 않으려 하고, 버려진 것들도 그냥 지나치지 못해요(웃음). 또, 운전하다 문득 바라본 산의 능선이나 빌딩들이 겹쳐진 도시의 실루엣처럼 자연과 도시의 풍경에서도 영감을 받아요. 이런 장면들을 마음에 담아두는 게 조각난 병 조각들을 새롭게 조합할 때 전체적인 흐름이나 균형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작은 재료를 다루지만, 항상 조금 더 크고 넓게 보려는 시선을 잃지 않으려 해요.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 오면서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기준이나 원칙이 있었나요?
브랜드들과 업사이클링이나 환경적인 메시지를 담는 작업을 주로 협업했어요. 록시땅, 봄베이 사파이어, 멜릭서 등의 브랜드들과 함께했죠. 브랜드가 가진 성격이나 방향성이 제품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 들여다보는 과정이 저에게는 늘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록시땅은 브랜드 특유의 선명하고 알록달록한 색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그 화장품 용기들을 활용해 스탠드 조명을 만드는 작업을 했었어요. 브랜드가 가진 색감과 물성을 살려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결과물도 아름다웠죠.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작업이나 확장해보고 싶은 영역이 있을까요?
개인 작업은 제가 직접 병을 수거해 단품으로 제작하다 보니 생산 규모에 한계가 있어요. 더 확장된 작업을 위해서는 기업이나 단체, 국가의 지원으로 큰 규모의 시설이 마련되어야 가능할 것 같아요. 언젠가 건축 자재나 공간 디자인 분야에서 협업해 보는 게 작은 바람이에요. 예전에 유리를 천연 시멘트인 제스모나이트와 결합해 본 적이 있는데, 앞으로는 종이나 패브릭처럼 전혀 다른 소재와의 융합도 계속 실험해 보고 싶어요. 지금은 하반기 경주 전시를 준비 중인데요. 그동안 주로 작은 오브제나 소품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그 작은 작업들을 모아 하나의 큰 설치 작업으로 선보일 예정이에요. 작은 것들이 모여 더 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CREDIT INFO

editor    김소연
photographer    김잔듸
취재 협조    룬느 lunne.co.kr, 먼데이에디션 monday-edition.co.kr, 미스그린 dearmissgreen.com, 에포르 efor.kr, 헤이 hei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