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수출하면 괜찮다구요? 高환율, 문제 맞습니다

1470원대 환율, 기업들 원가·투자 계획 흔들려

2025-11-19     정용석 기자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달러로 파는 건 맞는데, 대부분 달러로 사옵니다. 어느 수준을 넘으면 이익보다 비용이 먼저 튑니다.”

식사 자리에서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환율 얘기가 나오자 한숨부터 쉬었다. 고환율이 수출 이익보다 원가 압박으로 더 빨리 돌아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원화 기준 수입물가지수는 138.17로, 2020년 10월(96.2)보다 43.6%나 상승했다. 원유 및 천연가스, 광산품 등 원재료는 80%가 넘게 올랐다. 원재료를 수입할 때 달러로 결제하는 비중이 높으니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게 된다는 설명이다.

올해 초만 해도 주요 기업 대부분은 환율을 1300~1400원대에 맞춰 사업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최근 환율은 예측 범위를 계속 벗어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며칠째 1470원 안팎을 벗어나지 않는다. 한 번 크게 튀고 가라앉는 모습이 아니다. 

기업들은 이 숫자 하나 때문에 매일 원가표와 내년도 계획을 다시 들여다본다. 석유화학·철강·부품업종은 원자재 가격보다 환율 영향이 더 크다. 주요 강관사들은 이달부터 출고되는 강관 전 제품 할인율을 축소했다. 

해외투자를 진행 중인 기업들은 계산이 더 복잡하다. 미국과 유럽 공장은 투자비부터 운영비까지 대부분 달러로 움직인다. 환율이 일정 구간을 넘으면 예산과 일정 모두 재검토가 필요하다. 중소·중견기업은 더 취약하다. 환헤지 여력도 제한적이고 달러 차입금 만기만 도래해도 자금 부담이 바로 커진다. 은행권이 최근 일부 제조업을 중심으로 관리 대상을 다시 점검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요즘 채권시장도 흔들린다. 금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튀고, 단기자금 시장 금리도 덩달아 올라간다. 2020년 코로나 때,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때처럼 ‘돈 도는 속도’가 둔해지는 조짐이라는 게 시장 설명이다. 기업들이 돈 구하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정부 움직임은 거의 없다. 환율이 불안해도 말 한두 번 하는 수준이고, 채권시장이 흔들려도 어떤 조치를 꺼낼지 감도 안 잡힌다. 오히려 돈을 뿌리겠다고 한다. 내년에만 국채 발행으로 232조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돈을 푼다는 선언이지만, 재정 신뢰도는 더 흔들리고 외국인 이탈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외국인이 채권을 팔아 나가는 순간 원화를 달러로 바꾸기 때문에 환율은 더 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환율은 기업의 비용이고 투자 일정이고 내년 계획이다. 고환율이 지속되면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 몫이다. 원·달러 환율이 1460원대에 머물렀던 올해 1월, 당시 여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은 위기 상황이라 금융·외환 당국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서학개미 탓은 그만하고 이제는 정부가 책임 있게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