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은 씨의 알록달록한 문구집
나의 모든 문구에게
힘이 나는 문구로 가득 채운 작은 박물관.
문구집文具宙에서 정다은 씨가 써 내려가는 알록달록한 미래 일기.
생애 두 번째 독립
문구 브랜드 ‘프렐류드 스튜디오@preludestudio’를 운영하는 정다은 대표. 그녀는 최근 9년 만에 두 번째 독립을 이뤘다. ‘독립’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설렘일 수 있지만, 자신의 첫 독립은 조금 달랐다. “즐겨 쓰지 않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실패’만큼 적절한 단어도 없어요.” 그토록 가고 싶던 문구 에이전시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서 첫 자취를 시작했지만, 집에 발 붙일 새도 없이 혹독한 야근이 이어졌다. “입사 첫 주말에 대전으로 내려가 부모님과 함께 밥을 먹는데, 앉은 채로 깜빡 존 거예요. 눈을 떠보니 어머니가눈물을 흘리고 계셨죠.” 결국 한 달도 채 안 돼 회사와 집을 모두 정리하고 대전의 본가로 돌아갔다. “학교 다닐 때에도 제가 제작한 문구를 판매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기억을 살려 소소하게 시작해 봤어요. 그 과정을 블로그에 꾸준히 올렸는데 그걸 보고 텐바이텐 MD님이 연락을 주신거예요.” 일주일 만에 11군데 업체에 물건이 입점되면서 취미로 시작한 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사업에 몰두한 지 9년. 이제는 든든한 단골 고객도 생겼고, 5년 전에는 오프라인 매장도 열었다. 쇼룸은 대전에서는 이미 유명한 핫플레이스가 됐다. 프렐류드 스튜디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5만 7000명의 팔로워가 브랜드의 성장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여러모로 안정된 지금. 그녀는 마침내 두 번째 독립을 해냈다. 바쁜 건 매한가지지만, 9년 전과 달라진 건 그간 내면이 훨씬 단단해졌다는 것. 또 하나는 그녀의 선택을 응원해 주는 좋은 사람들이 곁에 더 많아졌다는 점이다. “입주 한 달째라, 아직은 정리할 게 더 많긴 한데요. 짧게는 30분, 길게는 3시간 매일 물건을 진열하고, 부족한 것은 채우는 그 과정 자체가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는 느낌이 들어요.” 그저 문구가 좋아서, 문구와 함께하는 삶을 꿈꿨던 다은 씨. 그녀가 만든 문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줬던 것처럼, 온통 자신에게 힘을 주는 문구로 채워 넣은 이 공간에서 이제는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시간을 갖는다.
문구는 보기에도 예쁜 데다 실용적이기까지 해요.
이 도구를 잘 쓰면 자기개발에도 도움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꿈을 이루는 도구가 되기도 하죠.
그래서 제가 문구를 좋아하나 봐요.
꿈을 그려가는 집
이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세상의 온갖 문구로 가득한 복층. 각국의 문구점과 미술관에서 하나둘 모아온 소중한 수집품들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다. 한 취미를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온 사람이 아니고서야 만들기 힘든 풍경. “문구가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지만, 쇼룸에 전시해 놓으면 그 문구는 더 이상 제 것이 아니잖아요.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물건을 이곳에다 모아두고 싶었죠. 일명 ‘고객은 나 하나뿐인 쇼룸!’(웃음)” 문구들은 언뜻 보기에도 세상의 모든 컬러가 담겨 있다 말할 정도로 다채롭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을 점차 알게 되면 어느새 관심 없던 보라색도 저에게도 스며들게 돼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모든 색을 좋아하게 됐다는 다은 씨. 사람 때문에 모든 색을 사랑하게 됐다니. 그녀가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는 대목이다. 다은 씨는 이사를 하고 나서 친구들에게 마치 박물관의 티켓을 끊어주듯, 문구로 채운 다락에서의 시간을 선물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의 집엔 마감 시간이 없다는 것. 친구들은 이곳만 오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한다. 요즘 이곳에서 다은 씨는 새로운 꿈을 노트에 써 내려가고 있다. “고 3 때 일기장에 이런 말을 써놨더라고요. ‘나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할 것이고,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울 것이다.’ 스물다섯 살에 그 꿈이 모두 현실이 됐죠.” 기록의 힘을 믿는 그녀. 문구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제 브랜드의 자체 제작 상품을 좀 더 늘리고 싶어요. 언젠가는 호수가 가까운 곳에 2층짜리 쇼룸도 짓고 싶고요.” 올해 안에 스페인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는 다은 씨. “직접 가서 도대체 왜 요즘 자주 꿈에 나오는지 직접 확인해야겠어요(웃음).” 그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이 자신이 모아온 알록달록한 문구처럼 빛났다.
editor 권새봄
photographer 이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