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는 왜 고려아연 주식을 지금 더 샀나

장내 매수 206억원, 11개월 만의 지분 확대 잇단 판결로 MBK·영풍, 주총 전 ‘판세 우위’ 내년 주총 핵심은 6석···집중투표제 첫 적용 이사 수 상한·대법 판단 남아 ‘막판 변수’ 여전

2025-11-13     정용석 기자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왼쪽)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 사진=각 사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1년 넘게 이어진 고려아연의 지배권 분쟁이 다시 ‘지분 확보전’으로 번지고 있다. MBK파트너스가 지난달 장내에서 206억원 규모의 고려아연 주식을 사들이며 지분율을 44.24%까지 끌어올렸다. 법원이 임시주총 당시 영풍 측 의결권 제한이 부당하다고 판단하면서 MBK·영풍 연합이 다시 ‘표 계산’ 구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지분 확보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내년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경영권을 둘러싼 긴장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MBK파트너스는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를 통해 고려아연 주식 1만8000주를 사들였다. 매입 규모는 206억원, 단가는 108만~117만원 선이었다. 이로써 MBK·영풍 연합의 지분율은 44.24%까지 올라갔다. 작년 12월 이후 11개월 만의 매수다. 주가가 7월 80만원대에서 11월 110만원대까지 급등한 상황에서도 물량을 추가로 확보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재무 투자로 보기 어렵다.

◇ 법원 판결 뒤 지분 확대···MBK, 다시 표 싸움 불 붙여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올 1월 임시 주총을 앞두고 고려아연의 호주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이 영풍 지분을 10% 이상 취득하도록 해 순환출자 고리를 만들었다. 자회사 SMC를 통해 영풍 지분 10.03%를 보유하며 상호출자 구조를 만들었다. ‘고려아연→SMC→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되면서 상법에 규정된 ‘상호주 의결권 제한’에 영풍이 적용받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영풍은 이를 두고 “의결권 제한이 위법하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1심과 항고심 모두 영풍 측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은 지난 10월 “SMC는 우리 상법상 주식회사가 아니므로 상호주 제한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임시주총 당시 영풍 의결권을 제한한 행위는 위법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후 영풍은 자회사 와이피씨(YPC)를 새로 설립해 보유하던 고려아연 주식을 이전했다. 상호출자 구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영풍 관계자는 “현재 상호주 관계는 완전히 해소돼 내년 주총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의결권을 제한할 수 없다”며 “앞으로는 지분만큼 표가 온전히 행사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실제로 업계에서도 내년 주총에서 과거처럼 영풍 의결권이 절반 이상 묶이는 상황은 재현되기 어렵다고 본다.

서울 이태원 몬드리안 호텔에서 지난해 3월 28일 오전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가 진행 중인 모습. / 사진=연합뉴스

◇ 신주 무효 판결 땐 MBK 지분 46%로

또 다른 쟁점은 HMG글로벌 신주발행 무효 판결이다. 지난 2023년 9월 고려아연은 현대차그룹 계열사 HMG글로벌에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신주 104만5430주(지분 약 5%)를 발행했다. 당시 최 회장 측은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등 신규 사업 협력 목적이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에선 MBK·영풍 연합의 지분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영풍은 “정관상 허용된 대상이 아닌 외국 법인에 신주를 발행했다”며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6월 “HMG글로벌은 고려아연이 출자한 외국 합작법인이 아니므로 정관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며 영풍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제한한 중대한 위법 행위”라고 판단했다. 현재 이 사건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소송 결과는 내년 3월 정기주총의 표 대결 구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HMG글로벌은 신주를 배정받은 이후 지금까지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동안의 주총 표결 과정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은 없었다. 이번 판결 역시 당장 표 계산 구조를 바꾸진 않는다. 다만 1심 판결이 유지돼 무효가 확정될 경우 해당 지분이 법적으로 소멸되면서 전체 주식 수가 줄어드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MBK·영풍 연합의 의 실질 지분율은 44%에서 약 46%로 높아진다.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의 모습. / 사진=연합뉴스

◇ 내년 주총, 이사회 6석 두고 표대결···집중투표제 첫 시험대

상호주 해소와 신주 무효 판결로 주총의 ‘표 대결 구조’가 달라지면서 영풍·MBK 연합이 노리는 건 명확해졌다. 내년 3월 주총에서 이사회석을 다수 확보해 최 회장 측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다. 상호출자 고리가 끊기면서 영풍의 의결권은 전면적으로 회복된 상태다. 이에 따라 내년 주총에서는 임기 만료가 도래하는 이사들을 중심으로 표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19명 체제다. 직무 정지된 4명을 포함해 최 회장 측이 11명, 영풍·MBK 연합이 4명이다. 내년 3월에는 6명의 이사 임기가 만료될 예정인데, 집중투표제를 통해 어느 쪽이 더 많은 표를 확보하느냐가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양측은 주총 전까지 기관투자자 및 소액주주 설득 작업을 병행하며 표 단속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장 내년부터 주총 구도가 완전히 MBK·영풍 측으로 기울것이라고 예단하긴 어렵다. 고려아연은 올해 3월 정기주총에서 ‘이사 수 상한제’를 통과시켜 영풍·MBK 연합의 추가 진입을 막은 상태다. 19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그 이상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영풍·MBK 연합 측이 새 이사를 대거 진입시켜 과반을 확보하는 전략은 제약을 받게 됐다. 기존 이사 가운데 임기가 만료되는 인물을 교체하는 방식으로만 이사회 구도를 바꿀 수 있는 구조다.

법적 절차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상호주 의결권 사건은 대법원 판단을 남겨두고 있고 HMG글로벌 신주발행 무효 소송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정기주총 결의 취소 소송도 본안 심리가 이어지고 있다. 판결 시점이나 결과에 따라 주총 구도는 다시 달라질 수 있다. 법원 판결이 주총 이후로 미뤄지거나 일부 내용이 뒤집히면 양측의 계산은 다시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 일각선 ‘주가 관리’ 해석도

한편, MBK의 이번 장내 매수의 단순한 지분 확보 목적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매수 규모가 작아 의결권 구도 자체를 뒤흔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MBK가 굳이 장내에서 물량을 확보한 배경에는 주가 흐름과 주주 구성을 둘러싼 ‘심리전’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은 유통 주식 수가 많지 않아 매수세가 조금만 들어와도 주가가 크게 움직이는 종목”이라며 “실제로 지난 7월 80만원대이던 주가는 최근 110만원대를 넘어섰다”고 했다. 이어 “주가가 높게 유지되면 고려아연에 기존 우호 주주들의 매도 유인이 생기고, 동시에 행동주의 성향의 기관이나 해외 투자자 유입이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