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태원 SK 회장 ‘깐부 회동' 불참 놓고 설왕설래

‘AI동맹 결성’ 깐부 회동에 최 회장 불참 일정 탓 아닌 HBM4 협상 여진 탓? 삼성전자와 동맹 결성 과시로 무언의 압박 해석도

2025-11-12     노경은 기자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지난달 말 APEC 회의 기간 중 전 국민의 이목이 가장 집중된 것은 단연 ‘치킨 회동’이었다. 세계 시총 1위 엔비디아의 최고 경영자 젠슨 황과 한국 증권시장 내 시총 1위 삼성의 최고경영자 이재용 회장, 3위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회장까지 같은 식탁에서 흥겨운 분위기 속에 치킨을 즐겼다. 엔비디아와 삼성, 현대차의 시총을 합치면 대략 7770조원 수준이니 이들이 치맥, 소맥을 마시며 러브샷 하는 일, 입은 옷 등 일거수 일투족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젠슨 황의 방한 소식이 알려진 이후 언론에서 한국 기업 총수와의 회동 기대감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던 시총 2위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 자리에 없었다. 최 회장이 APEC CEO 서밋 의장이었던 만큼 바빠서 치킨 회동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그럼에도 업계 일각에서는 회동을 주도한 엔비디아 측과 SK와의 비즈니스 관계를 염두에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말 실적발표 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자사 HBM4에 대해 주요 고객사들과 내년도 공급 계획을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지난 수개월 간 엔비디아는  HBM4 공급계약 체결을 앞두고 SK하이닉스 측 큰 폭의 가격인상에 난색을 표하기도 하며 꾸준히 협상하며 가격 조율을 시도해 왔다. 결국 엔비디아가 흡족할 만한 수준으로의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아 HBM4의 공급계약을 이전 HBM3E 보다 50% 이상 비싼 가격에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시장 예상가를 10% 이상 웃돈 값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기술력으로 가격 주도권을 확보한 셈이고 반대로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가격 주도권을 내어 준 것이다.

엔비디아 측이 깐부치킨 회동을 주최하면서 최태원 회장만 빠진 상황은 가격협상에 대한 서운함, 그리고 삼성전자와는 AI 동맹을 맺은 사이라는 과시를 통한 무언의 압박 차원일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치킨 회동이라는 가벼운 형식 속에서도 엔비디아가 삼성 중심의 친밀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SK를 상징적으로 소외시켰다는 것이다. 깐부치킨 회동은 젠슨 황의 딸이자 엔비디아 마케팅담당 수석 이사인 매디슨 황이 깐부치킨이라는 장소를 선정하고 ‘AI깐부 결성’이라는 컨셉으로 직접 기획해 더욱 의미심장하다. 치킨 한 마리를 두고 웃고 있는 세명의 총수 사진은 언뜻 보면 화기애애하지만 그 속에는 AI 반도체 산업의 미묘한 힘의 줄다리기가 숨어있을 수 있다. 

한편 SK하이닉스가 조기 양산체제와 기술 선점을 무기로 선두를 지켜내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미세공정 혁신을 앞세워 추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도 최근 HBM4 개발을 완료하고 모든 고객사에게 샘플을 출하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주요 고객사들이 GPU 성능을 강화하면서 보다 높은 성능의 HBM4를 요구하고 있는데, 삼성은 이미 그 기준을 넘어서는 스펙을 갖추고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독주해 온 글로벌 HBM 시장에 판도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내년엔 지각변동이 일어날 지 눈여겨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