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틀리에, 사적인 정원

2025-11-11     Living sense

계절이 바뀌면 집도 함께 달라진다. 꽃이 피고 지는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플로리스트 고연수 씨의 집을 만났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유기적 형태와 컬러 조합을 보여주는 플라워 브랜드 ‘더아미’의 고연수 대표.
일반적인 아파트의 인상을 피하고 싶어, 독특한 컬러와 실루엣의 가구를 들였다. 

계절이 머무는 집

도시 한복판에서 식물과 빛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집. 플로리스트 고연수 씨의 집은 사계절 내내 꽃이 피어 있는 작은 아틀리에다. 거실 창 너머로 펼쳐진 울창한 나무들이 계절의 변화를 들여오고, 햇빛이 풍부하게 집 안 깊숙이 스며들어 식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집에서 식물이 잘 자라면 그 집의 기운도 좋아진다고 믿어요. 식물이 건강하다는 건 빛, 공기, 온도 같은 조건이 잘 맞는다는 뜻이고, 결국 그 집에서 사는 사람도 편안하다는 증거니까요.” 그녀의 말처럼, 이곳은 언제나 꽃을 들이며, 집은 계절과 함께 천천히 피어나는 정원이 된다.

천연석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더한 주방. 와인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한쪽에 깨지기 쉬운 와인잔과 글라스웨어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빌트인 캐비닛을 설치했다.
로쉐보보아의 ‘버블 암체어’와 키미작의 그림으로 거실에 생기를 더했다.
햇살이 스며드는 테이블 위에는 계절에 맞춰 고른 꽃이 놓인다.

그녀가 운영하는 플라워 숍 더아미@the_amie_에서는 시각적 완성도와 균형에 집중한다면, 집에서는 꽃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어떤 빛과 위치에서 가장 생명력을 유지하는지를 꼼꼼히 시험한다. 그렇게 쌓은 경험은 고객에게 제안할 플라워 스타일링에도 이어진다. 가능한 한 오래 감상할 수 있는 꽃을 선택하고, 시든 꽃을 빼내더라도 허전하지 않도록 다양한 종류를 조화롭게 매치한다. 한때 외면했던 카네이션도 오랜 시간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다시 좋아하게 되었듯, 이 집은 그녀의 취향과 감각을 매일 새롭게 다듬는 실험실이다. 

고연수 씨는 겉모습만 화려한 집보다 마감과 내구성이 탄탄한 공간을 원했고, 완성도와 디테일을 세심하게 신경 쓰는 디자인 스튜디오 채윰@chaeyum_offical과 함께했다. 채윰의 김경미 대표는 이러한 방향을 고려해 ‘모던함 속의 내추럴’을 키워드로 공간을 그려나갔다. 아울러 이 공간은 처음부터 꽃이 놓일 장면을 상상하며 설계됐다. 고연수 씨는 마감재를 고르기 전부터 “실버 화병을 쓸 것”이라 예고했고, 이에 가전을 모두 실버 톤으로 통일했다. 차가운 금속의 질감은 무늬목을 곁들여 따스함을 더했고, 계절마다 웜톤의 꽃을 매치해 집 안에 늘 포근함을 불어넣는다. 결국 이곳은 삶과 작업이 포개지고, 계절과 감각이 겹쳐지며 매일 새롭게 피어난다. 꽃이 피고 지는 리듬에 맞춰 공간은 또 다른 표정을 짓고, 그녀의 하루는 그 속에서 다시 시작된다.

해외여행에서 경험한 리조트와 호텔 침실의 무드를 더해, 집에서도 휴양지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한 침실.
아일랜드와 톤을 맞춘 천연 대리석 벽면에 은은한 조명이 더해져 주방이 한층 따뜻해졌다.
꽃과 식물의 아름다움이 조화롭게 스며드는 집을 연출하기 위해 함께 고민한 고연수 씨(좌)와 디자인 스튜디오 채윰의 김경미 대표(우).

온기가 시작되는 아일랜드

이 집에는 밥솥이 없다. 고연수 씨는 매일 솥 밥을 짓고 하루 두 끼를 정성스럽게 차린다. 그녀에게 요리는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가족에게 온기를 건네는 방식이다. 주방에 서 있는 시간이 긴 만큼,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손님과 눈을 맞추며 요리할 수 있는 대면형 주방을 원했다. 그래서 기존 ㄷ자 형태의 좁은 주방과 알파룸, 워킹 클로젯을 철거해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 30평대의 주방이 60~70평대의 주방처럼 확장됐고, 동시에 4개의 화구를 사용할 수 있는 대형 아일랜드가 자리했다. 아일랜드는 인위적인 마감 대신 천연 대리석을 그대로 올려 자연스러운 결을 살렸다. 꽃을 만지는 사람으로서 집에서도 가능한 한 ‘가공하지 않은 것’을 두고 싶었다는 그녀의 취향이 드러나는 선택이다. 공간은 시각적으로도 탁 트여 있다. 가구와 벽체를 단순화하고 상부장을 최소화해 답답함을 덜었으며, 개방형 선반과 넓은 조리대를 배치했다. 창과 조명 위치까지 조율해 빛이 깊숙이 스며들도록 설계했기에, 낮이면 햇살이 대리석 상판 위로 길게 번진다. 그 위에서 꽃을 다듬고, 따뜻한 한 끼를 만들고, 웃음소리가 얹히며 가장 따뜻한 시간이 완성된다.

서재는 맞춤형 선반 시스템으로 시각적 여백을 살리고, 책상 위치를 창가로 조율해 자연광이 충분히 들어오도록 했다
발랄한 컬러 조합으로 하루 종일 활기가 넘치는 아이방.
햇살이 드는 창가에는 프리츠한센의 ‘스완 체어’와 아르떼미데 ‘쇼군 테이블 램프’를 두어 아늑한 휴식 공간을 만들었다.

CREDIT INFO

editor    김소연
photographer    김잔듸·임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