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AI시대 '고용 없는 성장'
[시사저널e=정준화 산업부장] 바야흐로 AI 시대다. 국가와 산업을 막론하고 AI 중심의 성장을 외치고 있다. 국내 증시에서는 반도체 쌍두마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승승장구 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AI 시대 슈퍼갑' 엔비디아의 젠슨황과 이재용·정의선 회장의 깐부 맺음에 열광하고 있다.
시사저널이코노미는 2015년부터 매년 AI포럼을 개최하며 산업 변화를 점검해 왔는데, 지금처럼 AI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AI의 발전이 가져오는 생활의 변화를 실제 피부로 느끼고 있어서다. AI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는만큼 관련 기업들의 성장 그래프도 눈에 띄게 가파르다.
하지만 고용지표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매출은 배가 되는데 사람은 늘지 않는다. 기업 실적은 개선되는데 고용률은 오르지 않는다.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 되고 있는 셈이다. 여러 외신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해고된 인원은 100만명에 육박한다. 작년에 비해 55%나 급증했고,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다. 올초 정부효율부(DOGE)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제외하더라도 증가 폭이 크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연공편향 기술변화를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청년층 일자리가 21만1000개 감소했는데, 이 중 20만8000개가 AI에 많이 노출된 업종에서 발생했다.
과거에는 '매출 증가=인력 증가'라는 등식이 있었다. 매출이 커질수록 관리·운영 인력이 자연스럽게 늘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프트웨어 개발·CS·재무·경영지원 영역까지 AI가 침투해 과거의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이같은 변화는 기업의 이익률 개선으로 연결돼 투자자 입장에선 호재다. 그러나 사회 전체 관점에서는 생산성 증가분이 고용으로 이어지던 메커니즘이 멈춘 것이다.
오히려 AI를 통해 생산성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릴수록, 기존의 '성장과 고용의 동행'은 사라진다. 과거 대기업의 성장이 중견·중소기업의 고용 확대로 이어지던 낙수 구조도 희미해지고 있다.
즉 AI는 성장을 위한 엔진이지만 더 이상 고용의 엔진이 아니다. AI 발전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지만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이 간극을 누가,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지속돼야 한다. AI의 속도보다 정책 설계가 늦어지면, 기술 혁신보다 불안정이 먼저 도착할 수 있다. AI 시대의 성장은 ‘사람 증가’가 아니라 ‘연산량 증가’로 측정되는 시대에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