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호 퇴진·사업지원실 출범에 담긴 ‘이재용의 자신감’

정현호 부회장, 회장 보좌역···2선으로 후퇴 사법리스크 해소 후 첫 조직개편, 의사결정 구조 재정렬 차원 취임 3년·사법리스크 해소···막오른 ‘뉴삼성’, 사장단 인사도 물갈이폭 클 것 전망도

2025-11-10     노경은 기자
삼성전자 사업지원실 조직도 및 타임라인 / 이미지=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삼성 이재용 체제가 새 전환점을 맞았다. 2017년 국정농단 사태로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이후 대안으로 8년간 운영해오던 사업자원TF가 정식 조직으로 격상됐다. 사법리스크를 털어낸 이재용 회장이 조직 상시화로 의사결정 구조를 재편하려는 차원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10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지난 7일 단행된 인사 및 조직개편에서 사업지원TF를 제도권 상시조직 ‘사업지원실’로 공식화했다. 사업지원TF는 2017년 2월 국정농단 사태로 경영쇄신안 차원에서 미래전략실을 해체한 이후 금융계열사의 금융경쟁력TF, 삼성물산 계열 EPC와 함께 TF로 분산돼 전자 계열사들의 미니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다. 2017년 11월부터 8년간 임시조직 성격으로 운영되다가 정식 사업지원실로 격상한 것이다.

초대 사업지원실장으로는 기존 사업지원TF의 박학규 사장이 위촉됐다. 박 사장은 1964년생으로 충북 청주 청주고-서울대 경영학과-KAIST에서 경영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특히 삼성그룹 비서실 재무팀 출신으로 2014년부터 미래전략실 경영지원팀장을 맡아 그룹의 체질 개선을 주도했던 베테랑 경영진이라는 평가다. 동시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과 소비자가전(CE), 디바이스경험(DX부문) 경영지원실장을 잇따라 역임한 기술 전문가이기도 하다.

새로운 사업지원실의 하위 조직은 ▲전략팀 ▲경영지원팀 ▲피플팀으로 구성된다. 전략팀장은 최윤호 사장(기존 경영진단실장)이, 경영진단팀장은 주창훈 부사장(기존 사업지원TF 부사장)이, 피플팀장은 문희동 부사장(기존 사업지원TF 부사장)이 맡게 된다. 또한 지난해 11월 삼성글로벌리서치 산하 조직으로 신설된 경영진단실도 이번 개편으로 삼성전자로 흡수됐다.

그동안 사업지원TF장을 맡아온 정현호 부회장은 회장 보좌역으로 위촉됐다. 사실상 경영 2선으로의 후퇴다. 정 부회장은 과거 삼성전자 비서실부터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 등을 두루 거쳤다. 이후 이재용 회장의 경영 수업이 본격화한 시기부터 이재용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그룹 내 주요 사업 의사결정을 함께해온 그룹 내 2인자로 불린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사업지원실 정식 출범에 대해 체계적인 조직 운영을 위한 첫걸음으로 해석한다. 비록 과거 미래전략실과 같은 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는 아니지만 삼성전자 내에서의 전략적 의사결정과 사업 조율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 사진=연합뉴스

특히 무게감이 컸던 정 부회장의 용퇴를 두고 이재용 회장의 경영 자신감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기상 국정농단 사태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 단행된 첫 조직개편인데다, 글로벌 반도체 경기 회복의 여파로 삼성전자 실적이 개선된 영향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 부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이재용 회장의 직접적인 경영 관여가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이 회장은 올해 대법원 무죄 확정 이후 반도체와 AI, 글로벌 현장 경영에 속도를 내며 '뉴삼성' 청사진을 구체화하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해 삼성전자의 간판 사업 실적이 개선세를 보이는 데다 취임 3주년을 맞은 최근에는 엔비디아 젠슨 황 CEO(최고경영자)와의 끈끈한 '치맥 회동'으로 양사 간 동맹 분위기는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와 조직개편은 단순한 인적 변화가 아니다”라며 “조직 상시화로 내부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려는 신호이자 동시에 이 회장의 독자 노선에 대한 자신감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업계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그간의 정중동 행보를 마치고 경영 전면에 나서는 동시에 사업지원단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 찾기와 인수합병(M&A) 등 그룹의 청사진을 내놓을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 여부도 큰 관심거리다.

한편 곧 있을 사장단 인사도 큰 폭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통상 삼성전자 및 계열사 인사는 11월 중순 이후에 단행됐지만 올해는 초순부터 그룹 핵심조직 인사 발표가 나면서 사장단 인사의 인사 폭도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이 회장은 최근 세계 최대 AI칩 기업인 엔비디아를 비롯해 테슬라,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의 대규모 반도체 파운드리를 잇따라 수주했다. 엔비디아에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를 공급에 성공한 것은 물론 6세대 HBM4 제품 공급을 위해 샘플을 납품하고 공급 시기를 조율 중이다. 이에 따라 조만간 단행될 사장단 인사에서는 HBM 등 반도체 분야의 초격차를 회복하고 인공지능 전환(AX)를 선도할 조직개편과 인사 중용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