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일상에 스민 장준용 씨의 집
THE LIVING EXHIBIT
예술이 일상에 스민 장준용@junyongjang 씨의 집. 아내와 두 아이와 나눈 대화와 웃음이 모여, 매일의 시간은 온기를 품은 작품이 된다.
로망을 담은 두 번째 안식처
헬스케어 산업에 몸담고 있는 장준용 씨는 작년 12월,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렸다. 성동구의 첫 신혼집은 조용하고 안락했지만, 낮은 층고와 일반적인 아파트 구조로는 작품을 전시장처럼 걸어두고 싶던 바람을 채우기 어려웠다. 아이가 자라면서 이사를 결심한 그는, 마침내 그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자리한 이번 집은 페인트로 칠한 흰 벽과 나무 바닥이 어우러져, 우아함과 미니멀함을 동시에 지닌 전시장의 풍경을 닮았다. 현관을 열면 가로로 긴 복도가 이어지고, 양쪽으로 방이 2개씩 배치된 독특한 구조. 공간이 한눈에 드러나지 않고, 벽이 많은 구조라 오히려 작품을 거는 재미를 주었다. “클래식하면서도 심플한 갤러리 같은 분위기를 원했어요. 이 집을 처음 봤을 때 작품을 어디에 배치하면 좋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죠. 숨어 있는 공간 곳곳을 인테리어하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았고요. 벽지가 아닌 페인트로 칠한 것도 좋아요. 작품을 걸기 위해서는 못질을 해야 하는데, 페인트는 구멍을 쉽게 메울 수 있거든요.” 높은 층고와 큰 창문은 집에 개방감을 주며, 곡선 형태의 거실 벽은 공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 장준용 씨는 여기에 천장 벽면을 따라 매립 조명을 시공해 따뜻한 빛이 은은하게 번지도록 했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보면 빛이 위에서부터 들어오죠. 천장 조명을 켜면 그의 건축물처럼 자연광이 스며드는 것 같아 무척 마음에 들어요.” 아이들을 키우는 집이기에 수납도 중요했다. 아내와 상의해 거실과 주방에는 흰색의 붙박이 수납 선반을 두어 실용성과 깔끔한 미감을 모두 담아냈고, 선반 위에는 세라믹 작품들을 배치해 포인트를 주었다. 작품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가족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균형을 찾는 과정이, 집에 더 애정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예술이 머무는 자리
장준용 씨의 집은 그룹전을 연 작은 갤러리 같은 모습이다. 오래전부터 예술에 관심을 가진 장준용 씨.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델라웨어 강변의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 Fallingwater’을 견학하기도 하며 건축과 미술을 가까이했다. 동생이 분당 앤갤러리 N Gallery, @ngallery_art의 이사직을 맡게 되면서 예술은 장준용 씨의 일상 속으로 더 깊이 스며들었다. 새집을 꾸미면서도 예술 작품과 공간의 조화를 가장 중시한 그. 인테리어는 거실에서부터 출발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검은색 가죽 소파가 생각했던 공간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나무 마루와 잘 어울리는 리네로제 Ligne Roset의 테라코타 컬러 쁠룸 PLOUM 소파를 발견해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소파 위에는 전광영 작가의 ‘집합 Aggregation’을 걸었고, 맞은편 벽에는 TV 대신 뉴질랜드 화가 그레이스 라이트 Grace Wright의 노을을 표현한 대형 회화를 설치했다. “이전 집에서는 층고가 낮아 소파 위에 그림을 걸었을 때 답답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꼭 맞는 자리를 찾았죠.” 거실 한쪽에는 홍정우 작가의 페인팅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침실에는 장 보고시안의 작품을, 집의 벽 곳곳에는 강경구, 이석주, 김영주 작가 등 그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배치하며 전시장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예전에는 심플한 단색화를 좋아했어요. 소품도 블랙이나 화이트 같은 컬러를 좋아했고요.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점차 취향이 바뀌었는데요. 이젠 따뜻한 오렌지, 브라운, 우드 톤에 마음이 가네요.” 장준용 씨는 가구에도 깊은 애정을 쏟는다. 결혼 후 받은 첫 보너스로 마련한 칼한센앤선의 쉘 체어는 여전히 가장 아끼는 의자 중 하나다. 한 번에 모든 로망을 실현하기보다,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꿈꾸던 가구를 모아온 그. 최근에는 취향의 변화에 따라 나무 가구를 하나씩 들이고 있다. 이 집에 입주하면서는 비트라의 원형 테이블과 칼한센앤선의 위시본 Wishbone 체어를 주방에 두었는데, 가족이 식사 후 모여 대화를 나누고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장소가 되었다.
가족이 함께 꾸리는 전시
공간에 색다른 느낌을 불어넣고 싶을 때, 장준용 씨는 작품의 위치를 바꾸거나 새로운 것으로 교체한다. 그럴 때면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작은 전시 기획 회의가 열리곤 한다. 아이들도 의견을 보태며, 온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작품을 어디에 배치할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가족끼리 작품에 관한 생각을 교환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집에 대한 애정도 더 커지고,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예술 작품을 주의 깊게 보게 되죠.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은 벌써 거실의 무라카미 다카시 작품을 물려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재택근무 날에는 가족이 모두 외출한 사이, 거실에 둔 암체어에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을 즐긴다. 짧은 고요 속에서 마음을 정리한 뒤, 다시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작은 휴식과 아이들의 활기가 포개어지는 집. 변화하는 취향과 가족의 이야기가 깃들어, 날마다 새로운 장면이 펼쳐지는 공간이 되었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묻자, 장준용 씨는 주저하지 않고 아들의 서툰 드로잉을 꼽았다. “미술시장에서는 값이 매겨지지 않겠지만, 제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더없이 소중한 작품이죠.” 가족을 바라보는 그의 웃음에는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장준용 씨 가족의 두 번째 집. 앞으로 어떤 전시로 채워질지 기대된다.
editor 신문경
photographer 김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