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철용이 말하는 균열의 태동

2025-10-31     Living sense

단순한 복장을 넘어 누군가의 태도, 정체성에 영향을 끼치는 유니폼에도 얼룩은 묻기 마련이다. 최철용 작가는 개인전 〈유니 폼: 브로큰 트윌〉을 통해 규율과 저항 사이의 새로운 서사를 직조했다.

히토 슈타이얼, ‘미술관은 전장이 될 수 있는가’, 2013

유니폼은 현대인을 지켜주는 갑옷일까, 아니면 우리를 규정하는 굴레일까. 그 안에서 새로운 생각이나 양식이 피어날 가능성은 없을까. 패션 디자이너이자 현대미술 작가인 최철용은 지난 8월 28일부터 9월 28일까지 토탈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유니 폼: 브로큰 트윌〉을 통해, 유니폼이 지닌 동일성과 규율 속에서 드러나는 균열을 탐구하며 이 질문에 응답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유니 폼uni form’이라는 제목에서부터 ‘하나Uni’와 ‘형식Form’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두었다. 직조 기법에서 반복 패턴을 일부러 꺾거나 끊는 방식인 ‘브로큰 트윌Broken Twill’을 핵심 개념으로 삼아, 작가는 매끈한 표면 아래 감춰진 파열과 저항의 리듬을 시각화했다. 대표작 ‘기억의 파편이 새기는 푸른 상흔’은 유니콘, 권총, 우유, 군복 등 이미지들이 뒤엉킨 대형 회화로 집단적 기억의 상흔을 드러내며, ‘질서의 농도’와 ‘심연을 향한 은밀한 항해’ 등은 집단 속 개인, 사회적 몸의 긴장과 균열을 추적한다.

전시의 특별한 점은 개인전임에도 사진, 기획, 패션, 비평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코어 그룹’을 이뤄 다층적인 메시지를 발굴하고자 한 데 있다. 여기에 히토 슈타이얼, 안톤 셰벳코, 에밀리 브루, 막심 마리옹 등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초청해 유니폼의 사회적 의미를 확장시켰다. 이처럼 개인 작업과 여러 작가들의 시선, 그리고 기획·디자인·비평을 아우르는 ‘코어 그룹’과의 협업은 전시를 단일한 개인전이 아닌 담론적 플랫폼으로 확장시킨다. 이번 전시는 향후 베를린 P61로 이어지며 국제적 교류로 확장될 예정이다.

최철용, ‘기억의 파편이 새기는 푸른 상흔’, 2025 ©토탈미술관
최철용, ‘질서의 농도’, 2025

 

INTERVIEW

최철용 작가와의 대화

유니폼이라는 주제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시작은 이탈리아에서 워크웨어 룩을 디자인하면서였습니다. 광부들의 작업복에는 석탄 얼룩과 마모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그 흔적들이 직업과 삶을 대변한다고 느꼈습니다. 옷이 사람을 드러내는 동시에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내가 유니폼을 입는가, 아니면 유니폼이 나를 입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된 것이 전시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전시 전반에 ‘균열’과 ‘브로큰 트윌’이 중요한 회화, 디자인 코드로 등장합니다.
: 유니폼은 본래 깔끔하고 질서정연해야 하지만, 얼룩이 생기는 순간 그 질서가 깨집니다. 저는 그 균열이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내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로큰 트윌은 의도적으로 패턴을 꺾어내는 직조 기법인데, 반복과 변주 속에서 균열과 저항의 언어를 보여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 모두 신작이었죠.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 거의 ‘작두를 타는’ 듯한 고통이었습니다(웃음). 영감이 오든 안 오든 루틴에 맞춰 하루하루 작업을 이어갔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생활 자체가 굉장히 ‘유니폼적인 삶’이었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번 전시가 유니폼이라는 개념을 더 구체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른 작가들의 초청작도 함께 선보입니다. 개인전에서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이번 전시는 ‘코어 그룹’과 함께 기획했습니다. 기획자, 디자이너, 사진가 등 각자의 관점을 더해 개인전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구성했죠. 초청 작품 역시 주제를 다각도로 확장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추후 베를린이나 프랑스 등 다른 도시에서 이어질 때마다 여러 작가들이 합류하며, 담론이 자동적으로 확장되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전시에 대한 계획을 들려주신다면요.
: ‘유니 폼’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입니다. ‘유니 폼’이 첫 번째 에디션이라면, 이후에는 사회적 몸, 장식성, 욕망 등 더 구체적인 주제로 확장할 생각입니다. 우선 베를린 P61에서 열릴 전시에서는 디지털 기반의 작품을 선보이는 갤러리인 만큼 미디어 친화적인 방식으로 다시 변주할 예정이에요.


CREDIT INFO

freelance editor    유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