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전쟁-1] 국공립은 못 가고 사립은 없어지고···어린이집 잔혹사
자리 부족, 운영난에 무너지는 보육 현장 공공은 한정, 민간은 폐업···돌봄 공백 현실화
[시사저널e=최다은 기자] 아기울음 소리가 봄바람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7월 출생자는 2만1803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5.9% 증가했다. 출생률은 여전히 ‘세계 최하’ 수준이지만 13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 중이다.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인간 본연의 ‘아기와 함께하는 기쁨’을 알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 시작됐다. 낳긴 낳았는데 오롯이 애를 맡기고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맞벌이 부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맞벌이 비율이 절반을 넘어가는 시대에 보육정책에 대한 인식은 이에 맞게 변해오지 못한 탓이다. 출산을 장려했으면 보육정책을 손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시사저널e>는 아이 키우는 엄마 아빠들의 생생한 ‘육아전쟁’ 현장을 소개하고 ‘출산율 정상화’ 해법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국공립은 대기자만 수십 명이고, 동네 사립 어린이집은 문을 닫았습니다. 아이 맡길 곳이 없는데 회사는 계속 나가야 하니 막막할 따름이에요.” (둘째 아이 어린이집을 찾다 결국 휴직을 고민하는 경기도 의정부 직장인 박모씨)
아이를 맡길 곳이 사라지고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여전히 대기지옥이고, 사립 어린이집은 인건비와 운영난에 문을 닫는 사례가 매년 늘고 있다. 보육 서비스의 양극화와 돌봄 공백은 고스란히 가정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 특히 맞벌이·한부모 가정처럼 긴급 돌봄이 절실한 가정은 선택지가 더욱 좁다.
어린이집은 운영 주체에 따라 국공립어린이집과 민간 어린이집, 직장(사내) 어린이집, 가정 어린이집 등으로 나뉜다. 직장 어린이집을 제외하면 국공립 어린이집 선호도가 가장 높다.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 주최가 되는 만큼 민간보다 보육료 부담이 적고 보육 서비스의 질이 담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공립어린이집은 대기 인원이 많아 입소하려면 출산 전에 대기를 걸어놔야 할 정도로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 맞벌이·한부모 가정에 우선권이 주어지지만, 대기자 수가 너무 많아 실질적인 혜택은 제한적이다. 복직과 어린이집 입소 시점을 맞춰야 하는 맞벌이 가정은 입소 대기가 짦은 민간 어린이집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소규모 민간 어린이집은 국공립어린이집과 보육의 질 격차가 커질 수 밖에 없는 한계에 직면했다. 정원을 채우지 못해 운영난에 허덕이는 어린이집이 늘어나면서다. 어린이집이 폐업한 자리엔 노인복지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4만곳에 달했던 전국 어린이집은 2024년 6월 기준 2만7000여곳으로 줄었다. 2020년 이후부터는 매년 2000개 내외로 어린이집이 문을 닫고 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전체 어린이집 수는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특히 가정어린이집의 감소폭이 가장 컸다.
원아 수 감소와 정부 지원 축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운영 부담이 겹치면서 벼랑 끝에 몰린 원장들은 “버틸 수 없다”며 토로한다. 아이를 맡긴 학부모들은 어린이집 폐원에 따른 돌봄 공백을 불안해하며 거리가 먼 어린이집 전원을 고민하는 처지에 놓였다.
경기도 분당구 가정어린이집 원장 장모씨(57)은 “5~6년 전부터 신규 원아 모집이 잘 안되면서 어린이집 사정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며 “20년 동안 운영한 어린이집이라 최대한 버티기 위해 내 인건비를 포기하더라도 끌고 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원아 수가 줄어들다 보니 정부 지원도 적어지면서 풀타임 교사 월급을 줄 여력이 안돼, 파트타임 교사 위주로 채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직장인 김모씨(36)는 “복직 당시에는 빠른 입소가 가능하고 등하원이 편한 단지 내 가정어린이집이 좋은 선택지라고 생각했는데, 내년에 폐원 할 것 같다”며 “원장님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졸업하는 아이들을 제외하면 신규 입소 대기자가 없어 만 1세반 5명만 남게 된다”고 불안해했다.
그는 “지금 보내는 어린이집이 폐원하게 되면 집에서 더 먼 거리에 있는 다른 어린이집에 입소 대기를 걸어놔야 한다”며 “등하원도 길어지지만 아이가 새로운 어린이집에서 적응하는 2~3주 동안 하원을 일찍해야 하는데 이 기간 내내 연차를 낼 수가 없으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저출산에 의한 신생아 수 감소는 국공립유치원과 20명 이하 소규모 민간 어린이집 간 보육의 질 양극화를 초래했다. 또 민간어린이집 폐원이 늘어나면서 이 피해는 고스란히 부모와 아이들에게 전가됐다. 특히 돌봄을 지원할 조부모 세대가 없거나, 재택·탄력근무가 불가능한 직장인 가정은 더욱 벼랑 끝에 몰린다.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해 퇴사를 고민하거나, 값비싼 베이비시터에 의존하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아이 둘을 키우는 직장인 윤모씨(35)는 “둘째가 다니고 있던 어린이집에서 편지가 와서 열어봤더니 원에 아이들 인원 감소로 다음달까지만 운영하고 폐원한다는 내용이었다”며 “인근 주변 어린이집에 전화를 돌려보았지만 티오 자리가 없다, 정원이 다 차있어 당장 입소는 불가능하다고 연락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로운 어린이집에 아이를 적응시키는 것만으로 직장 생활하면서 부담인데 당장 입소 어린이집도 없어, 지방에 계신 어머니한테 둘째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지 연락하게 됐다”며 “계속 부모님께 의존할 수는 없고, 퇴사를 하자니 둘째 낳고 생활·양육비가 늘어나서 엄두가 안 난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수년간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해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책이 쏟아지지만, 정작 부모들은 마음 놓고 아이 보육할 시설과 서비스가 부족한 현실에 무너지고 있다. 보육 공백은 단순히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경력 단절 여성 증가, 저출산 가속화, 사회적 돌봄 불평등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돌봄 대안 다변화를 비롯해 지역별 사립 어린이집 운영 지원 강화와 보육 교사 처우 개선이 시급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