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다 기업인 국감 소환···실효성 논란 커지나
최태원·정용진 등 총수·건설사CEO 등 줄소환 “망신주기”vs“유일한 견제수단” 시각 엇갈려 대안 거론 상시국감엔 사정기관화 변질 관측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올해 국정감사에 역대 가장 많은 기업인들이 증인으로 소환된다. 재벌 총수부터 산업재해 다발 건설사, 온라인플랫폼 경영진까지 줄줄이 명단에 오르면서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국정 점검의 장인 국감이 국감이 기업 망신주기로 변질됐단 비판과 증인 소환이 단순 시간낭비가 아니라 일정한 성과로 이어진단 반론이 엇갈린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상설 국감은 자칫 또 다른 사정기관으로 변질될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된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각 상임위원회별 증인 채택이 이뤄지는 가운데, 올해는 역대 가장 많은 기업인들이 소환될 전망이다. 이미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159명을 넘어섰다.
특히 정부가 근절 의지를 강조하는 산업재해 발생 기업들이 다수 포함됐다.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는 올해 산재 사망자 1, 2위 기업인 현대엔지니어링, 포스코이앤씨 대표가 증인으로 채택됐다. 국토교통위원회는 두 회사를 비롯해 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 DL그룹, GS건설, 롯데건설, 대우건설 등 주요 건설사 대표들을 불러 세운다.
주요 재벌 인사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정무위원회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정무위는 28일 최 회장을 불러 계열사 부당 지원 논란을 점검할 예정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산자위는 24일 정 회장을 증언대에 세워 신세계가 중국 알리바바와 설립한 합작법인과 관련해 국내 소비자 정보 보호 방안을 살펴볼 계획이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은 홈플러스 사태와 롯데카드 해킹 문제와 관련해 정무위, 환노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3곳에서 증인으로 소환됐다. 해킹 문제를 두고는 김 회장 외에도 김영섭 KT 대표와 조좌진 롯데카드 대표이사도 함께 증인 명단에 올랐다.
온라인 플랫폼 불공정 거래 의혹과 관련해서는 쿠팡 인사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김범석 의장과 김명규 쿠팡이츠 대표가 정무위 증인 명단에 포함됐고, 김범준 우아한형제들 대표와 황성혜 구글 부사장도 국감장에 설 예정이다.
애초 여야 모두 경제 사정을 감안해 과도한 기업인 호출은 자제하자는 분위기였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업인들이 대거 증인에 포함됐다. 이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국회 역할을 감안하면 평소 대기업 총수나 고위 경영진을 직접 불러 대책을 논의하거나 잘못을 질타할 기회가 거의 없는데, 국감은 사실상 유일한 장이란 평가가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국감이 국정을 점검하는 자리가 아니라 기업 감사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업들도 ‘망신주기 소환’ 아니냐는 불만이 크다. 기업 대관 담당자들은 총수 불출석을 막기 위해 애쓰며, 소환 자체를 큰 부담으로 여긴다. 국감을 앞두고는 자사에 불리한 기사가 나오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운다.
여러 기업인들을 국감장에 세우다 보니 정작 발언은 거의 하지 않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러나 국회 사정에 밝은 한 전직 보좌진은 “국감장에서 증인이 직접 답변하지 않아도 이후 속기록이나 자료 제출 요구를 통해 압박이 이어진다. 국감장에서의 발언은 법적 효력이 있어 추후 강제 자료 제출이나 보고 요구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와서 몇 마디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 절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총수를 압박해 얼굴만 비추게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기업 입장에선 큰 부담이 되고 이후 대응 과정에서 일정한 성과가 나오기도 한다. 증인 소환이 단순 시간 낭비로만 끝나지 않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국감을 상시화하는 방안이 대책으로 거론되지만, 기업 옥죄기 성격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야권 관계자는 “국세청을 비롯한 사정기관들이 이미 상시 감독을 하고 있고, 국감은 보완적 성격인데 이를 늘린다고 효과가 크다고 보긴 어렵다”며 “지금 여당이 입법·사법·행정을 모두 쥔 상황에서 또 다른 사정기관을 세우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