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기금 개혁, 1%포인트의 힘
[시사저널e=양성일 전 보건복지부 차관] 국민연금 기금은 2024년 말 1212조원을 돌파하며 세계 3대 연기금의 위상을 다시 확인했다. 같은 해 수익률은 15.0%에 달해 운용 이후 최고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화려한 숫자 뒤에는 여전히 그림자가 짙다. 2025년 3월 제3차 국민연금 개혁으로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는 시점이 7년 늦춰지고, 기금이 소진되는 시점이 2065년으로 다소 늦춰줬을 뿐 전망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향후 10년이 골든 타임”이라 경고하는 이유다.
특히 기금 운용수익률을 단 1%포인트만 높여도 보험료율 2%포인트 인상과 같은 효과가 있으며, 기금 소진 시점을 최소 5년 이상 늦출 수 있다는 분석은 연금 개혁 논의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해외주식(34.3%), 해외채권(17.1%), 대체투자(17.0%) 등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며 127조 원의 운용 수익을 기록했다. 기금 전체로 15%라는 호실적이었지만, 단기 성적에 일희일비할 수는 없다. 연평균 수익률로 보면 최근 10년은 4.7% 수준으로, 캐나다(약 10%), 노르웨이(6.3~6.7%)에 못 미친다.
이 ‘1%포인트의 간극’이 한국 연금의 미래를 가른다. 실제로 정부는 올해 국민연금 개혁에서 기금 운용 수익률 목표를 4.5%에서 5.5%로 상향하고, 제도개혁을 통해 기금 소진 시점을 15년 연장하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제도적 뒷받침이 없다면 이 목표는 공허한 숫자에 그칠 위험이 있다.
연금기금 운용은 단순한 투자 기술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세계 주요 연기금들은 세대 간 계약을 지키기 위해 제도와 인력을 혁신해 왔다. 노르웨이는 석유 자원을 기반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기금을 자랑하지만, 핵심은 장기 분산투자와 ESG 원칙을 법제화했다는 점이다.
일본은 한때 국내 채권에 편중돼 낮은 수익률을 경험했으나 이후 해외주식과 대체투자를 확대하고 ESG 통합을 강화하며 장기 안정성을 추구하고 있다. 캐나다는 민간 수준의 보수체계로 글로벌 인재를 끌어모으고, 독립성을 강화해 정치적 간섭을 차단했다. 장기 참조 포트폴리오를 공개해 위험과 초과수익을 투명하게 관리하며, 최근 10년 평균 수익률이 약 9.8~10%를 기록했다. 세 나라의 공통 분모는 전문성, 독립성, 자산 다변화, 투명성이다. 한국이 벤치마킹해야 할 요인들이다.
국민연금 기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의 개혁이 절실하다.
첫째,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자. 기금운용본부의 운용역 보수체계를 민간 수준으로 전환하고, 성과 연동형 보상을 도입해 글로벌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 현재 운용역 1인당 관리 자산은 약 2조 원으로 해외 주요 연기금의 두 배에 달한다. 이 과중한 부담을 줄이고, 해외 사무소 확대와 현지 의사결정 권한 부여를 통해 글로벌 투자 역량을 키워야 한다. 또한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
둘째, 자산 배분 전략을 업그레이드하자. 현행 중기 자산 배분은 주식 55%, 채권 30%, 대체 15% 수준이다. 이를 넘어 AI·바이오 등 혁신산업·인프라·친환경 에너지 등 장기 성장 분야에 전략적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캐나다처럼 참조 포트폴리오를 공개해 성과와 리스크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노르웨이처럼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매매 프로토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해외자산 비중이 커진만큼 환 리스크 관리와 통화 헤지 제도화도 병행해야 한다.
셋째, 성과·리스크관리를 정교화해야 한다. 단기 수익률에 집착하지 않고 목표수익률(5.5%)과 초과수익률을 분리해 설정해야 한다. 평가 주기를 3~5년 단위로 설계해 장기성과를 검증하고, 운용비용·거래비용·위험 노출을 투명하게 공시해야 한다. 대체투자와 사모투자 확대시 유동성·평가 리스크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핵심은 ‘수익률 1% 포인트 제고’를 단발적 성과가 아닌 구조적 성과로 제도화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 개혁은 단순히 더 많은 돈을 버는 기술이 아니다. 국민이 낸 보험료를 미래에도 안전하게 돌려주기 위한 신뢰의 계약이다. 2024년의 호실적은 고무적이지만, 단기 반짝 성과에 그쳐서는 안 된다. 노르웨이의 전문성, 일본의 ESG 통합, 캐나다의 독립성이 보여준 길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엮어내야 한다.
그리고 연금제도와 기금 운용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는 다층적 안전망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국민연금은 세대 간 신뢰를 이어가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수익률 1%포인트의 차이는 모든 세대의 삶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안전판이다. 지금이 바로, 그 힘을 현실로 만들어야 할 골든 타임이다.
양성일 전 보건복지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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