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세상 속 노인들④] “노인에게 AI는 기술 아닌 관계의 수단”
이인정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시사저널e=송주영 기자] 인공지능(AI)이 빠르게 일상으로 스며들면서 노인들의 삶도 달라지고 있다. 혼자 사는 어르신의 곁을 지키는 돌봄 로봇, 건강을 살피는 생체 감지 시스템은 외로운 시간을 덜어주고 생명을 지켜내는 새로운 도구가 됐다. AI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노인의 정서와 안부를 보듬는 동반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어르신, 디지털 금융서비스를 이해하지 못해 도움을 청해야 하는 현실은 기술의 발전 속에서 노인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편리함의 그림자에 가려진 디지털 격차와 사회적 배제의 위험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이인정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노인의 AI 활용에 있어서는 기술역량의 격차 뿐만 아니라 관계 격차와 인식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AI를 배우는 ‘기술적 능력’을 넘어 배우고 활용하도록 격려하고 지원해주는 ‘관계망’, 기술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긍정적 인식’ 등이 함께 갖춰져야 진정한 디지털 포용이 이뤄진단 의미다.
이 교수는 ‘고령자 기술수용모델에 기반한 예비 노인의 AI 인식 예측 요인’, ‘노인대상 ICT 기반 돌봄서비스 이용자와 제공자의 경험’ 등 논문을 펴내며 노인복지와 기술을 중심으로 한 연구를 이어왔다. 디지털 환경에서 고령층이 겪는 사회적 배제와 복지체계의 대응 방안도 분석하며 기술과 복지의 접점을 모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Q.최근 AI 기반 디지털 서비스 확산이 고령층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보건분야와 돌봄분야에서 AI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면서 건강관리와 돌봄 지원에서 효과가 있단 점이다. 독거노인대상 생체감지시스템을 활용한 돌봄이나 돌봄로봇(예:효돌)은 우울이나 자살사고를 가진 노인에게 효과적이란 점이 다수의 연구를 통해 제시됐다. ‘노인 대상 ICT 기반 돌봄 서비스 이용자와 제공자의 경험’을 주제로 한 연구를 수행했는데 이 연구에서 AI돌봄로봇이 고립되거나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외국 연구에서 AI를 활용한 프로그램들이 노인의 신체기능과 인지기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고됐다. 예를들면 미국 로봇업체 렌데버의 렏데버핏, 한국 위로보틱스의 로봇 윔, 중국 페이스하트의 카이도미어 등 신체기능 유지에 도움을 주는 복지기술 등이 있다.
부정적 측면으로 가장 큰 문제는 디지털 소외의 심화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금융, 비대면 서비스 증가 등은 대면에 익숙한 고령층에게 새로운 서비스 활용에 어려움을 겪게 하는 요인이다. 문제는 이런 디지털 격차와 소외가 사회적 배제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사회의 소득격차, 지식과 정보의 격차로 인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Q. 고령층이 디지털·AI 서비스를 활용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 요인은 무엇인가
장애요인은 디지털 기술 자체의 복잡성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고령층의 심리적 사회적 맥락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디지털기술이나 AI 활용은 점점 더 고객 친화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아직 미흡하기는 하지만 고령자 친화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층이 디지털·AI 접근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고령자기술수용모델(STAM: senior technology acceptance model)에서 지적한 것처럼 신체적, 심리사회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디지털·AI가 익숙하지 않으니 아예 배척한다거나 너무 어렵게만 여긴다거나, 효용성을 낮게 보고 익숙한 것에 계속 의지하는 등의 디지털 태도를 주목해야 한다. 즉 디지털·AI 서비스를 접촉해보고, 도움을 받아 천천히 사용해보도록 돕고 효용성을 경험하게 하여 AI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미국의 AARP 산하 ‘시니어 플래닛’프로그램에서 고령층에게 AI를 경험해 일상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보니 AI에 대해 긍정적 태도로 변화되었다는 연구들이 있다. 즉 고령층의 AI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중요하며 이를 돕기 위한 사회적 맞춤형 서비스 마련이 필요하다.
Q. 고령층이 일부 AI 서비스만 적극 활용하는 ‘선택적 소외’ 현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선택적 소외가 실제로는 노인층의 친숙함과 효용을 기준으로 한 합리적 선택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의미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이나 건강관리와 같이 일상에서 직접적으로 이점이 체감되는 서비스들은 적극 활용할 의도를 보이지만 절차가 복잡하거나 불분명한 앱들은 상대적으로 외면될 가능성이 높다. 뉴욕에서 시범 운영중인 ‘조이’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노인에게 친숙한 매체인 텔레비전에 AI 동반자 기능을 접목해 기억훈련, 약복용 알림, 자동 영상통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 이후 고령층이 AI와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게 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기술을 도입할 때 노인에게 친숙한 환경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고령층의 디지털 포용을 촉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Q. 실제 생활속에서 고령층이 기술을 배우고 활용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노인이 기술을 배우도록 하는 것보다 가장 효과적 방법은 노인의 생활이 이뤄지는 공간에 AI 기술이 자연스럽게 유기적으로 통합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이 프로그램처럼 주거 공간에 익숙한 매체인 TV를 통해 AI와 대화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또한 가족과의 소통이 노인에게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가족과의 사진을 공유하는 것으로 SNS를 사용하게 된 어르신들이 있는 것처럼 낯선 도구가 아닌 관계를 이어주는 매체로서 인식하게 할 필요가 있다. 경로당, 노인복지센터, 지역사회복지관 등 노인의 커뮤니티 안에서 익숙한 관계를 통한 상호 교류 속에서 일어나는 기술 습득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Q.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AI 교육이나 사회복지 프로그램에서 개선이 필요한 점은 무엇인가
노인대상 디지털 교육이 단기 교육으로 일회성이거나 일시적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스마트폰 기본 기능이나 앱설치, 키오스크 활용 등에 국한돼 있어 내용 측면에서 보완될 필요가 있다. 교육 이후 활용에 대한 지속적 관리와 실제 생활과의 연계 지도도 필요하다. 지역사회복지관 등의 집단 학습 환경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상호교류하면서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예를 들면 외부 활동을 잘 하지 않는 어르신이 복지관에 나와 자신이 사용하는 AI챗봇 효돌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집단 프로그램으로 효돌 사용법이나 활용법을 나누고 산책을 하는 등 노인복지프로그램과 연계된 교육들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는 AI 의존으로 사회적 고립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예방적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내용에 있어서도 AI활용방법만이 아니라 AI 윤리에 대한 내용도 다뤄질 필요가 있다.
Q. 향후 고령층이 AI 시대에서도 충분히 서비스 혜택을 누리려면 정책적·사회적 지원 측면에서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기술접근성 보장정책이 먼저 이뤄질 필요가 있다. 최근 디지털금융분야에서 고령자 특화 UI등을 설계해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는데 이런 노력들이 AI 관련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고령친화형 설계 표준 제도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또한 노인층의 AI활용을 위해서는 사회적 지지망 강화의 노력도 필요하다. 가족뿐만 아니라 생활보호사나 지역사회복지관의 담당 사회복지사, 주변 이웃 등의 권유로 AI를 접하거나 배우게 되는데 이런 사회적 지지망을 통해 학습하고 상담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복지관의 지역주민대상 AI 교육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복지관에 AI 활용 체험관을 만들어 운영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또한 노인의 AI 활용에 있어서는 기술역량의 격차 뿐만 아니라 관계 격차와 인식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취약계층 및 고립을 겪고 있는 노인들에 대해 사회적 네트워크와 AI 접촉 기회를 확대해야 관계와 인식의 격차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예방적 접근으로 예비노인대상의 AI 활용 교육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Q. AI 기술 확산이 가속화될 경우 고령층의 사회적 소외 문제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AI 기술 확산은 고령층의 사회적 소외를 충분히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금융, 의료, 행정 등 생활 필수 영역들이 AI 중심으로 재편될수록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고령층이 서비스 접근성이 낮아지면서 배제될 위험이 높아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불평등과 생활불평등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고 악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Q. 고령층이 AI 시대에서 소외되지 않고 사회적 참여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은 무엇이라고 생각는가
단순히 디지털기기보급이나 AI 활용 교육 프로그램 제공보다는 고령자가 이러한 기술을 ‘관계와 참여의 수단’으로 인식하도록 돕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고령자가 생활 환경내에서 자연스럽게 AI를 접하는 환경이 구축되어야 하고 지역사회기반 학습과 교류 플랫폼이 구축돼 또래 고령층 집단과 어울리고 소통할 수 있는 수단으로 AI가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세대간 연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활성화해 젊은 세대가 디지털 멘토 역할을 수행하는 방법도 있다. 고령층은 단순히 서비스를 받기만 하는 수혜자가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한 선배 시민으로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고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