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 주택공급 속도전···모듈러 주택 ‘묘수’ 될까
공기 절반·안전성 강화···정부, 내년 시범사업 착수 해외선 이미 대세···국내는 공공 위주 ‘걸음마 단계’ 공사비 20~30%↑·고층화 제약···대중화 과제 산적 특별법 제정·R&D 250억 투입···제도 정비 속도
이재명 정부가 주택공급 속도전에 나선 가운데 모듈러 주택이 묘책으로 떠올랐다. 모듈러 주택은 공장에서 주요 구조물을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라 공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안전사고 위험도 낮출 수 있다. 다만 공사비 부담과 고층화 기술·제도 한계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아 단기간 대규모 공급에는 제약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공급 속도전’ 위해 모듈러 카드···민간 매입으로 판 키운다
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9·7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통해 수도권에서 매년 27만가구, 2030년까지 총 135만가구 공급 계획을 밝혔다. 이번 방안은 이재명 정부 들어 발표된 첫 번째 종합 공급 대책이다. 공급 목표를 인허가가 아닌 착공 기준으로 관리해 실제 시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공급 효과를 높이겠다는 점도 특징이다. 단기 성과를 내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조치로 풀이된다.
이번 대책엔 모듈러 주택 활성화 방안도 포함됐다. 임기 5년 안에 계획된 물량을 공급해야 하는 만큼 ‘속도전’이 불가피해서다. 건설 현장에서 직접 철근을 잇고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전통적인 철근콘크리트 공법은 공사 기간이 길고 인력 의존도가 높아 신속한 공급을 뒷받침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대안으로 꺼내든 카드가 바로 모듈러 주택이다.
모듈러 주택은 말 그대로 ‘조립식 주택’이다. 벽체, 바닥, 창호 같은 주요 구조물을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낸 뒤 현장으로 운반해 맞춰 세운다. 레고 블록을 쌓듯 모듈 단위를 끼워 맞추는 방식이라 현장에서는 조립과 연결 작업만 이뤄진다. 기존 방식에 비해 공정이 단순해 날씨나 인력 변수에 따른 지연이 적다. 전체 공사의 70% 이상이 공장에서 진행돼 품질 관리도 용이하다. 현장 공사 기간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민간이 지은 모듈러 주택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설계·시공 가이드라인과 매입가격 기준을 마련하고, 하반기부터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수도권 내 모듈 운반과 설치가 가능한 부지를 대상으로 저층 주택부터 공급한다. 이번 시범사업은 그동안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이 직접 발주해 공급해온 모듈러 주택과는 성격이 다르다. 민간이 짓는 모듈러 주택을 정부가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시장 판로를 넓히고 민간 참여를 끌어들이려는 취지다.
◇ 해외선 56층도 ‘뚝딱’···걸음마 떼는 K-모듈러
해외에선 이미 모듈러 주택이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은 매년 15만 가구, 전체 신축 주택의 15%를 모듈러 방식으로 짓고 있으며, 미국도 인구의 10%인 약 1000만 가구가 모듈러 주택에 거주한다. 영국은 서민주택 물량 4분의 1을 모듈러 주택으로 채우고 있다. 런던 크로이던에서 44층 규모 초고층 모듈러 아파트 ‘Ten Degrees’를 선보이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정부 주도로 공공주택의 90% 이상을 모듈러 방식으로 건설하고 있다. 세계 최고층 모듈러 주택인 56층 ‘애비뉴 사우스 레지던스’를 완공해 기술력을 입증했다. 북유럽 역시 신규 주택의 절반 가까이가 모듈러로 건설되는 등 시장이 성숙 단계에 들어섰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듈러 주택 공급이 아직 초기 단계다. 모듈러 주택은 공공기관 주도로 공급돼 왔다. LH는 2017년 서울 가양동에서 30가구 규모 모듈러 주택을 처음으로 선보인 이후 공급 물량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LH는 현재 12개 지구에서 2261가구 규모 모듈러 주택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가운데 768가구는 이미 준공을 마쳤다.
2023년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한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지상 13층·106가구)은 국내 최고층 모듈러 아파트로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통상 2년 이상 걸리는 공사를 1년여 만에 끝내며 공기 단축 효과를 입증했다. 의왕 초평A4(22층·381가구), 시흥거모(14층·272가구), 고흥 도양(15층·150가구) 등 6개 지구에서는 1493가구 규모 중고층 모듈러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 비싼 공사비·기술 한계···‘컨테이너’ 편견도 넘어야 할 산
다만 모듈러 주택이 빠른 시일 내 대중화되기에는 여러 제약이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높은 초기 비용이다. 공장에서 제작된 모듈을 대형 트럭과 크레인으로 옮겨 설치해야 해 물류비가 상당한 데다 발주 물량이 적어 대량 생산에 따른 단가 절감 효과도 제한적이다. 업계는 전체 공사비가 기존 철근콘크리트(RC) 공법보다 20~30% 가량 비싸다고 본다. 정부가 이번 9·7대책에서 저층주택에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공사비 영향이 컸다.
기술적 한계도 뚜렷하다. 국내 모듈러는 아직 중저층 위주로 적용돼 20층 이상 고층 주거시설에선 층간 소음, 내화 성능, 구조 안전성 확보 등이 쉽지 않다. 제도 역시 RC 공법에 맞춰져 있어 인허가와 사용 승인 절차가 복잡하고, ‘컨테이너 주택’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발목을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공 발주 물량 확대와 함께 품질 관리 기준, 맞춤형 규제 체계, 소비자 신뢰 확보 등이 병행돼야 시장이 본격 성장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도 이런 한계를 의식하고 제도 개선에 나섰다. 국토부는 2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모듈러 주택 고층화 및 내화 관련 연구개발(R&D)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모듈러 주택 보급 확대를 위해 ‘OSC·모듈러 특별법(가칭)’을 제정해 현행 RC 공법 위주 규제를 정비할 방침이다. 현재 특별법 초안을 마련해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단계다.
국토부 관계자는 “모듈러 맞춤형 기준과 품질 관리 제도를 마련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완화해 사업 여건을 개선한다는 구상이다”며 “동시에 공사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인센티브 제도도 도입하고 공공 발주 물량을 늘려 민간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