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달동네, 역사속으로”···구룡·백사·성뒤마을 개발 본궤도
수십년 표류 끝, 판자촌 재개발 속도 강남·노원·서초 동시 개발 8600가구 공급 이주 갈등·공사비 부담, 변수로 남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들이 수십 년간의 표류를 끝내고 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노원구 백사마을, 강남구 구룡마을, 서초구 성뒤마을 등 대규모 정비 프로젝트가 동시에 현실화 단계에 들어섰다. 공급 물량만 8600여가구에 달하는 데다 주요 입지에 위치한 만큼 서울 주택시장 전반에 상당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 구룡마을, 소유권 이전 완료···203가구 이주 관건
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내 토지와 가옥 등에 대한 소유권이 사업시행자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로 모두 넘어왔다. 소유권 등기 이전이 마무리되면서 후속 활동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SH는 올 하반기 철거를 시작해 내년 하반기부터 공공주택 건설에 착수하고 2029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이주 절차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SH는 연내 이주 완료를 목표로 임대 보증금을 지원해 이주를 독려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전체 1107가구 중 203가구가 남아 있다. 실거주 중인 가구로 대부분 임대주택 공급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분양권’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H는 법적으로 분양권 제공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진통이 예상된다.
구룡마을은 강남 최대 판자촌으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둔 개발 과정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이 모여 형성됐다. 지금도 판잣집과 비닐하우스가 남아 있을 정도로 주거환경이 열악하다. 2012년 8월 처음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됐으나 개발 방식에 대한 견해차 등으로 사업에 난항을 겪었다.
이후 2016년 SH가 사업시행자로 지정되며 개발의 물꼬를 텄다. 지난해 5월에는 개발계획 변경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당시 용도지역 상향과 용적률 완화로 계획 가구수가 2838가구에서 3520가구로 늘었고, 올해 3월에는 3800여가구 규모로 다시 확대됐다.
계획안에 따르면 구룡마을에는 최고 25층, 3887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공공임대 1896가구, 공공분 1031가구, 민간분양 960가구 등으로 구성됐다. 건설 용지는 주상복합용지 2개 블록(F1·F2)과 공동주택용지(M·B1·B2·B3) 4개 블록 등 총 6개 블록이다. SH가 4개 블록(F1·M·B2·B3)을 직접 개발하고 2개 블록(F2, B1)은 매각해 민간 건설사가 개발하게 할 계획이다.
◇ 백사마을, 16년 만에 본격 착공···‘네이처시티 자이’ 조성
노원구 백사마을도 최근 정비계획안이 확정되며 본궤도에 올랐다. 서울시는 지난달 21일 노원구 중계본동 30-3번지 일대 백사마을을 지하 4층~지상 35층, 26개 동, 3178가구 규모로 재개발하는 계획을 확정했다. 전체 물량 중 분양주택은 2613가구, 임대주택은 565가구다. 일반분양은 1353가구로 배정된다. 임대주택은 구역 내 세입자에게 200가구를 공급하고, 나머지는 서울 내 재개발사업 철거 세입자 등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백사마을 이주는 98% 가량 이뤄졌고 철거는 약 65%의 진행률을 보이고 있다. 올해 11월이면 철거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연내 공사에 착수해 2029년 상반기 준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공사는 GS건설로 단지명은 ‘네이처시티 자이’로 정해졌다. 단지는 불암산 자락과 조화를 이루는 자연친화형으로 설계됐으며 인근에는 동북선 경전철 개통이 예정돼 있다. 중계 학원가와 가깝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백사마을은 1960년대 후반 도심 개발 과정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이 모여 형성된 마을이다. 옛 주소인 ‘산104번지’에서 이름을 땄다. 경사지에 판잣집이 빼곡히 들어서며 서울 대표 달동네로 불렸다. 드라마 ‘서울의 달’ 등에서 과거 서울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재개발 논의는 2008년 개발제한구역 해제 이후 본격화됐다. 2009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2016년 사업시행자였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성을 이유로 포기하며 표류했다. 2017년 SH가 새로운 시행자로 나서 사업이 재개됐다. 2021년 사업시행계획 인가와 함께 GS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되며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 ‘사당역세권’ 성뒤마을···중견사들 수주전 치열
서초구 방배동 565-2 일원 성뒤마을 재개발도 본격화되고 있다. 이곳은 A1블록과 B1블록으로 나눠 최고 20층, 1600가구 규모로 개발된다. A1블록에는 SH가 900가구를 공급하고, B1블록엔 700가구 규모 민간 아파트가 들어선다. 내년 3월이면 착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준공 목표 시점은 2029년 3월이다.
성뒤마을은 1960~70년대 강남 개발로 밀려난 이주민들이 우면산 자락에 정착해 형성된 마을이다. 서울 지하철 2·4호선 사당역이 도보 10분 거리에 있을 정도로 역세권이지만 무허가 건축물이 난립해 있어 강남 대표 판자촌으로 꼽힌다. 개발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으나 사업 방식과 토지 이용을 둘러싼 갈등으로 표류해왔다. 2017년 SH를 사업시행자로 지정한 뒤 개발이 가시화됐고, 지난해 1600가구로 개발하는 계획안이 확정됐다.
현재 민간 분양이 추진되는 B1블록에는 설계 공모 절차가 진행 중이다. 제일건설·우미건설·중흥건설·호반건설 등 중견 건설사들이 참여해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강남권 마지막 노른자 땅’으로 불리는 입지와 희소성 덕분에 경쟁이 치열하다는 평가다. 토지 공급가격이 3.3㎡당 5500만원이어서 예상 분양금액은 5042억원에 달한다.
세 곳의 재개발 사업이 동시에 속도를 내면서 약 8600가구에 달하는 신규 물량이 서울 주택시장에 공급될 전망이다. 강남권 중심지와 교통 요지에 자리한 대규모 단지들이어서 주택시장에 미칠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강남·도심 프리미엄 단지 대비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대에서 공급될 가능성이 높아 실거주 목적 수요자들의 선택권 확대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일부 지역의 보상·이주 갈등과 건설비 상승 압박 등은 사업 일정과 최종 공급 시점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