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폐수누출’ HD현대오일뱅크, 징역형 임원 줄줄이 복귀
징역형·과징금에도 핵심 임원 동일 보직 복귀 환경부문·경영지원 라인 그대로 법적 한계 vs ESG 경영 괴리
[시사저널e=정용석·주재한 기자] HD현대오일뱅크가 페놀 폐수 무단 배출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구속됐던 임원을 보석 석방 직후 다시 동일 보직에 복귀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이 불법 배출의 위법성을 인정하고 환경부가 사상 최대 과징금을 부과한 상황에서 폐수 관리 책임이 있는 핵심 보직을 이들에게 그대로 맡긴 조치가 적절한지 논란이 커지고 있다.
1일 시사저널e 취재를 종합하면 올 2월 법원에서 페놀 불법 배출과 관련해 징역형을 선고받은 임직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여전히 회사 핵심 보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문을 총괄하는 이종현 상무는 여전히 ‘환경부문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페놀 방지시설 운영을 책임지는 핵심 인물이 그대로 경영에 남아 있다는 점에서 ESG 경영과 배치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치웅 PM본부장(전무)은 수감 기간 공석으로 뒀던 본부장 자리에 출소 직후 곧바로 복귀했다. 회사가 조직 공백을 감수하면서까지 자리를 비워둔 셈이라 사실상 책임 회피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고영규 전 HD현대케미칼 대표(부사장)는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현재는 HD현대오일뱅크 전략총괄 임원(부사장)을 맡고 있다. 퇴직한 강달호 HD현대오일뱅크 전 대표이사 부회장, 이정현 전 HD현대오씨아이 대표, 정해원 전 안전생산본부장을 제외하면 실제 의사결정 라인의 상당수가 여전히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비용 절감 위해 폐수 무단 배출···행위 위법성·은폐 정황 인정
이들은 폐수 내 페놀 농도를 축소 신고해 방지시설 설치를 면제받고, 기준치를 초과한 폐수를 자회사 HD현대오씨아이로 보내 적절히 처리되지 않은 공업용수를 HD현대케미칼에 공급한 혐의로 지난 2023년 검찰에 기소됐다.
검찰은 법에 따라 적절한 방지시설을 설치·운영했어야 함에도 이를 회피했고, 이 과정에서 폐수처리장 증설 비용 약 450억원을 아낀 것으로 판단했다. 이러한 행위가 조직적이고 장기간 반복됐다는 점이 공소의 핵심이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월 HD현대오일뱅크 전·현직 임직원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① 실제 환경오염 여부와 무관하게 배출 행위 자체가 위법하다는 점, ② WGS(가스세정시설)를 통한 배출은 합법적 처리로 볼 수 없다는 점, ③ 은폐·축소 정황을 근거로 고의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유죄를 선고했다.
피고인들은 지난 6월 2심 시작 이후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 중이다.
◇환경부 제도 도입 이래 최대 1761억원 부과···동일 보직 복귀 적절성 논란
법원이 불법 배출의 위법성을 확인했다면, 최근 환경부의 사상 최대 과징금 부과는 해당 행위의 불법성과 책임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킨 조치로 해석된다.
환경부도 1심 법원과 비슷한 사유로 지난달 28일 HD현대오일뱅크에 176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2000년 환경범죄단속법상 과징금 제도 도입 이래 최대 규모다.
형사재판과 행정제재가 모두 불법성을 인정한 상황에서 회사가 임직원 보직을 유지하거나 복귀시킨 것은 경영 공백 최소화라는 명분일 수 있다. 그러나 유죄 판결과 최대 과징금이 존재하는 만큼, 이 같은 인사 조치가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은 피하기 어렵다. ESG 경영과 투자자 신뢰가 강조되는 시점에서 기업 책임과 사회적 인식 간 괴리는 더욱 커질 수 있다.
남현우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지역뿐 아니라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준 사람들이 다시 환경 관련 업무를 맡는다는 건 도덕성과 책임경영 차원에서 문제가 크다”며 “앞으로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를 심각하게 보고 성명서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물론 1심 판결만으로는 형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가 인사상 불이익을 즉각 부과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취업규칙과 무죄 추정 원칙상 항소심·대법원 확정 전까지는 징계성 조치가 법적으로 제약되기 때문이다.
HD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아직 유죄가 확정된 것이 아니고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인 만큼 보석으로 나온 임원들의 보직 유지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