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멈추고 SK 적자 쌓이는데···효성, 수소사업 ‘속도조절’ 눈길

창원은 디폴트, SK는 적자···효성만 ‘수요 검증 후 투자’ "단기 성과 늦지만 장기 경쟁력 확보 유리" 평가도 수소 모빌리티·발전·산업 공정까지 활용처 다변화

2025-08-19     정용석 기자
프로판가스에서 탈수소 공정을 거쳐 폴리프로필렌(PP)과 부생수소를 생산하는 효성화학 울산 용연공장 전경. / 사진=효성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국내 수소산업이 무리한 선행 투자 전략을 세우다 디폴트와 적자에 허덕이는 사례가 속출하는 가운데 효성중공업의 ‘속도조절 전략’이 오히려 경쟁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창원시가 추진한 국내 1호 액화수소플랜트는 수요처 부재로 1년 넘게 멈췄고, SK이노베이션 E&S는 세계 최대 설비를 세웠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효성중공업은 충전소 인프라부터 구축해 수요 기반을 다진 뒤 플랜트와 활용처로 확장하는 방식을 택하며 ‘시장 공백’ 속에서 현실적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효성중공업은 이달 초 창원 액화수소충전소 토목공사에 착수했다. 이와 함께 울산 지역에도 설비 투자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전남 광양에 첫 액화수소충전소를 세운 데 이어 경남권으로 거점을 넓히는 것이다. 회사는 전국적으로 21개의 액화수소충전소를 순차적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 액화수소, 효율성과 안전성 앞세운 차세대 연료

액화수소는 기체 수소를 영하 253도까지 냉각해 만든다. 이 과정에서 부피가 800분의 1로 줄어들면서 저장·운송 효율이 크게 높아진다. 기체수소 운송 차량이 수백kg 단위만 싣는다면 액화수소 탱크는 3톤(t)까지 채울 수 있다. 단위당 운송 효율이 10배 이상 높아 업계에서는 액화수소를 대형 버스·트럭 등 수소 모빌리티 확산의 열쇠로 꼽힌다.

운송 과정의 안전성도 우수하다. 기체수소는 200바(bar) 압력으로 압축해 운송한 뒤 충전소에서 다시 900바까지 압력을 높여야 차량 충전에 쓸 수 있다. 반면 액화수소는 대기압 수준인 2바에서 운송 가능해 폭발 위험이 적고, 충전소에서는 기화 과정에서 바로 900바까지 압축되기 때문에 전력 비용도 절감된다. 충전 속도 역시 기체수소 대비 3배 이상 빠르다.

이 같은 장점 덕분에 국내 주요 에너지기업들이 잇따라 액화수소플랜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수요가 생각만큼 따라주지 못하면서 상업 가동 시기가 줄줄이 늦춰졌다.

창원시 성산구 두산에너빌리티 창원공장 내에 있는 '창원 액화수소 플랜트'. / 사진=하이창원

◇ 외통수 걸린 ‘국내 1호’ 창원 액화수소플랜트

국내 최초의 액화수소플랜트인 창원 사례는 정책 드라이브에 맞춰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내 최초의 액화수소플랜트는 경남 창원에서 추진됐다. 지난 2019년 창원시와 두산에너빌리티, 한국산업단지공단, 창원산업진흥원이 합작해 특수목적법인(SPC) ‘하이창원’을 설립하고, 1000억원을 들여 하루 생산능력 5t 규모의 플랜트를 세웠다. 2023년 1월 준공되면서 한국은 세계 9번째 액화수소 생산국이 됐다.

하지만 1년 넘게 상업운전은 시작도 못 하다 지난 6월에야 일부 가동에 나섰다. 수요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이창원은 지난해 3월 디폴트를 선언했고, 710억원을 빌려준 대주단이 경영권을 인수했다. 대주단은 창원산업진흥원이 하루 5t의 액화수소를 구매하겠다는 확약서를 근거로 강제 집행에 나섰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하루 8400만원, 연간 300억원 수준이다. 진흥원은 당장 재정 압박에 몰렸고 창원시로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최근 장금용 시장 권한대행은 “장기로 보면 외통수에 걸린 것 같다”고 토로했다.

◇ SK E&S, 세계 최대 규모에도 적자

SK이노베이션 E&S는 지난해 5월 인천에 세계 최대 규모의 액화수소플랜트를 건설했다. 약 7000억원을 투입해 하루 30t, 연간 3만t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수소 버스 5000대를 1년간 운행할 수 있는 물량이다. SK인천석유화학에서 발생하는 부생수소를 정제해 액화한 뒤 충전소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플랜트 역시 현재는 설비 1기만 가동하고 있다. 수요가 늘어나면 나머지 설비를 차례로 돌린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자회사 아이지이는 이미 누적 적자 184억원을 떠안았다. 업계에서는 “수요 기반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플랜트를 먼저 세운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효성하이드로젠 광양초남 액화수소충전소. / 사진=효성중공업

◇ 효성, 수요 따라가는 ‘속도조절’ 전략

창원과 SK 사례가 보여주듯 시장 검증 없는 설비 투자는 곧바로 재정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효성은 수요 기반을 먼저 닦는 전략을 통해 이러한 위험을 상당 부분 피했다는 평가다. 효성중공업은 2008년부터 기체수소충전소 사업을 시작해 현재 36개소를 운영,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광양 1호를 시작으로 21개의 액화수소충전소를 순차적으로 깔아 수요 기반을 먼저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조만간 서울에서도 액화수소충전소가 들어설 전망이다. 지난 5월 서울에너지공사와 ‘액화수소 인프라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는 등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다. 

울산 용연산업단지에 건설 중인 액화수소플랜트는 독일 린데와의 합작법인 린데수소에너지가 담당한다. 연간 1만3000t 규모로, 향후 3만9000t까지 확장할 수 있다. 당초 올해 3분기 준공 예정이었으나 회사는 상업운전을 뒤로 미루고 있다. “액화수소를 생산하더라도 유통망이 충분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효성은 또 충전 인프라와 플랜트뿐 아니라 활용처까지 연결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100% 수소로 발전하는 수소엔진발전기를 상용화했고 올해 2월에는 1400시간 연속 운전에 성공했다. 수소 모빌리티뿐 아니라 발전·산업공정까지 수요처를 다각화하려는 전략이다. 

효성이 투자를 멈추지 않는 배경으로 수소산업의 장기 성장성을 꼽는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액화수소 시장 규모는 지난해 423억달러에서 오는 2034년 810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이 7%를 넘는 만큼 단기 수요 부족에 따른 ‘속도조절’이 오히려 장기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