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자율주행 사고 낸 테슬라 수천억 배상···국내법은 운전자만 책임?

레벨2 ‘부분 자율주행’ 사고서 제조사 책임 인정 이례적 사례 국내는 운전자 중심 법리만 적용···‘완전 자율주행’ 규정 미비

2025-08-12     주재한 기자
서울시내 한 건물에서 충전 중인 테슬라 승용차들. / 사진 = 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미국 플로리다주 배심원단이 테슬라의 레벨2(부분 자율주행) 운전자 보조 시스템 ‘오토파일럿’ 작동 중 발생한 사망사고에서 운전자와 제조사 모두에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총 2억4300만달러(약 3380억원) 지급을 명령한 이번 평결은 테슬라 관련 사망사고에서 제조사 책임이 일부 인정된 이례적 사례로, 자율주행 안전성과 법적 책임 범위를 둘러싼 국제 논의에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자율주행 사고서 제조사 책임 첫 평결···테슬라도 33% 책임

사고는 2019년 플로리다주 2차선 도로에서 발생했다. 야간에 테슬라 모델S가 도로변에 주차된 SUV를 들이받아 차량 옆에 서 있던 보행자 2명 중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당시 차량은 오토파일럿이 켜진 상태였고, 운전자는 휴대폰을 줍느라 전방을 주시하지 않았다.

배심원단은 운전자 과실을 67%, 테슬라 책임을 33%로 배분했다. 원고 측은 ▲정차 차량·보행자 감지 실패 ▲고속도로 전용 기능의 일반도로 작동 허용과 경고 부족 ▲사고 구간에서 시스템 자동 해제나 위험 경고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주장했고, 배심은 이를 고려해 제조사의 일부 책임을 인정했다.

평결은 보상금 1억2900만달러 중 테슬라 부담분 33%(약 4260만달러)와 징벌적 배상금 2억달러를 합쳐 총 2억4300만달러 지급 명령으로 이어졌다. 확정판결은 아니지만, 그동안 유사 소송이 대부분 기각되거나 합의로 종결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 테슬라를 상대로 한 오토파일럿·완전자율주행 관련 소송이 십여 건 진행 중이어서 이번 평결이 후속 사건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레벨2 단계에서 제조사 책임이 인정된 만큼, 운전자 개입이 최소화되거나 불필요해지는 레벨4~5 완전자율주행 단계에서는 제조사 책임 비중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법리, 운전자 책임에 편중…제조사 입법은 미비

국내에서 레벨2 단계 사고는 운전자 주의의무를 전제로 기존 교통사고 법리가 적용된다. 2022년 개정된 도로교통법은 ‘자율주행 시스템을 갖춘 차량이라도 운전자는 시스템의 직접 운전 요구에 지체 없이 대응해야 한다’(제56조의2)고 규정해 운전자의 지속적인 개입을 전제했다. 제도 설계와 법 해석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보험연구원(KIRI) 보고서 역시 레벨 3 이하 단계에서는 “운전자는 항상 운전 가능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전방 주시 의무를 포함한 주의의무를 면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법률이 운전자 책임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것과 달리, 제조사 책임을 명시한 법적 근거는 미비히다. 이에 피해자가 제조사의 과실과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고, 운전자 과실이 우선 적용되는 구조가 고착화돼 제조사 책임이 사실상 배제되는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자율주행차 안전·책임체계 개선방안 연구’에서 과장 광고로 인한 운전자 과신을 법적 판단에 반영하고 제조사·운영사 책임 귀속을 명확히 하는 입법 필요성을 권고했다.

특히 레벨 4~5 완전 자율주행 단계로 가면 운전자의 물리적 개입이 전제되지 않아 ‘운행자’ 개념이 사실상 사라지는데도, 국내에서는 제조사·운영사 등 시스템 공급자에 대한 책임 귀속과 분담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구체적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한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가 허가제·안전기준 등 기본틀은 도입했으나 상용화를 전제로 한 책임체계의 구체화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는 이미 법률을 통해 책임 주체와 입증 구조를 명확히 하는 글로벌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EU는 2024년 개정한 제품책임지침(PLD)에서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AI)을 제품 범위에 포함하고 결함·인과관계에 대한 추정 규정을 도입해 피해자의 입증 부담을 완화했다. 영국도 같은 해 제정한 Automated Vehicles Act를 통해 자율주행 승인 차량의 책임 주체와 비용 분담 원칙을 법률에 반영했고, 독일 역시 2021년 자율주행법에서 레벨4 운행의 허용 조건과 운영자·시스템의 책임 범위를 명문화했다. 

제조물 책임 소송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한국은 제조사·운영사 등 시스템 공급자에 대한 법적 책임 규정이 여전히 미비하다”며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고 피해자 보호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입증 구조 전환, 주체별 기본 책임 규정, 사고조사 권한 강화 등 3대 과제를 조속히 입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