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기업 정년연장 논쟁, 중소업체엔 ‘그림의 떡’
국내 직장인 대다수는 ‘비자발적’ 조기 퇴직 대기업·정부, 고용안정 사명감 갖고 결단내려야
[시사저널e=최동훈 기자] 현대자동차가 지난달 20일 채용 시장에서 ‘킹산직’으로 각광 받는 생산 부문 인재 채용을 공고했다. 킹산직은 고연봉에 정년 보장까지 되는 ‘최고(king)의 생산직’이라는 뜻의 신조어다.
재계 3위 기업인 현대차의 직원들은 정년퇴직을 보장 받고 있다. 현대차가 지난달 발행한 2025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국내 이직(퇴직)한 현대차 임직원 3417명 중 정년퇴직, 해고 등 비자발적 사유로 회사를 그만둔 인원은 약 3145명으로 92.0%에 달했다.
현대차는 보고서에 정년퇴직자, 해고자 각 인원수를 기재하지 않았다. 다만 현대차가 작년 퇴직자 지원 제도 일환으로 진행한 노후설계 프로그램을 수료한 만 60세 임직원 수는 중복 수료를 고려해도 최소 2300명을 넘는 것으로 분석된다. 매년 수천명이 정년까지 근무하다 가는 셈이다.
이에 더해 현대차 노조는 현재 사측과 진행 중인 단체 교섭에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는 안건을 제시한 상태다. 기존 정년에 도달한 시니어 조합원이 직무 기술, 노하우를 후배에게 전수해 품질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편 현재 국민연금 개시 연령이 65세여서, 조합원들이 60세 퇴직 후 연금을 받기까지 발생한 소득 공백으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을 것도 우려했다.
현대차 같은 대기업들의 노사가 정년 연장 여부를 두고 입씨름하는 동안, 중소업체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은 입맛만 다실 뿐이다. 그들은 사측에 정년 연장을 요구하기는커녕 정년도 보장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기업들 대부분 경제 불확실성, 청년 고용 어려움 등을 들어 정년제 도입이나 정년 연장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0~2022년 기간 55~62세였던 직장인 1207명의 ‘노동궤적’을 분석한 결과, 해당 연령대에 정규 임금 근로 일자리를 유지한 집단은 109명으로 집계됐다. 모집단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 종단가중치를 적용하면 9.8%다. 100명 중 10명도 채 안되는 고령 직장인들만 정년 가까이 또는 정년을 넘겨 정규직에 근무했다.
다만 고령 근로자 109명이 질적으로 양호한 일자리를 얻었는진 의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당시 정년제를 운영하는 국내 사업체가 22.0%에 불과한데다 정년 퇴직 후 바로 정규직 취업하는 사례가 적은 점을 고려할 때, 109명 중 대부분이 정년 없는 소규모 사업체에서 기존 고용계약을 유지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임금 등 처우 측면에서 질적인 일자리인지 불분명한 사업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단 의미로 해석된다. 결국 대기업 임직원 아니면 정년 퇴직은 더욱 요원할 뿐 아니라 해당 연령대까지 일할 수 있더라도 질적인 일자리를 구하긴 어렵단 뜻이다.
최근 설상가상으로 미국 관세 정책으로 인한 국내 제조업 공동화 우려와, 인공지능(AI)·로봇 발전에 따른 인력 재배치·재훈련 압박이 커지고 있다. 미래차 시대에 대응한 전환 작업이 대기업보다 더딜 수 밖에 없는 중소업체 임직원들에겐 이 같은 변화가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현대차를 비롯한 대기업의 정년연장 합의는 낙수효과처럼 중소업체들 사이에 확산시킬 수 있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 2017년 60세로 정년 연장된 후 국내 산업 전반에 걸쳐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 연령이 상승했단 분석도 나왔다.
다만 여전히 고용 형태나 업종에 따라 정년제 수혜를 누리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대다수다. 대기업 노사는 국내 정년제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한단 각오로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 정부도 고령자 재고용을 의무화하거나 청년 고용을 동시에 확대할 수 있는 등 정책의 묘를 발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