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화 상징’ 스카이브릿지, 재건축서 찬밥 신세
서울시 심의·공공개방 조건에 스카이브릿지 설계 잇단 철회 조합 “인허가 지연·비용 부담 크다”···속도 우선 판단 확산 잠실·한남·송파도 제외···건설사들 상징성 대신 실익 전략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고급화 상징으로 여겨졌던 ‘스카이브릿지’가 재건축 설계에서 밀려나는 모양새다. 서울시의 까다로운 인허가 기준과 외부 개방 조건, 조합원들의 비용 부담 우려 등이 맞물린 결과다. 건설사들도 상징성보다 실익을 택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개포우성7차 조합에 제안한 설계에서 스카이브릿지를 제외했다. 대신 2개의 랜드마크 주거동 최상층에 스카이 커뮤니티를 만들기로 했다. 조망 가치를 확보하면서도 인허가 리스크는 줄이겠다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개포우성7차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재건축 단지로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이 수주전을 벌이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사업 지연을 초래할 수 있는 불안 요소를 원천 차단하면서도 사업성과 상징성을 확보한 설계안을 조합에 제시했다”고 밝혔다.
스카이브릿지는 고층 아파트 동과 동을 연결하는 구조물이다. 입주민 간 이동 편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조망 확보와 단지 상징성을 강화하는 설계 요소로 활용돼 왔다. 한강변을 포함한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고급화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설계 차별화와 조망 특화가 가능한 구조인 만큼 시공사 입장에서도 조합 설득용 카드로 자주 활용돼 왔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서울시가 도시경관 저해, 조망권 침해, 공공성 부족 등을 이유로 심의 기준을 강화하면서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인허가 지연 가능성을 우려해 사전에 설계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고 있다. 여기에 커뮤니티 시설의 외부 개방을 조건으로 내거는 사례가 늘면서 부담이 더 커졌다. 조합원들도 사생활 침해, 보안 우려, 관리비 증가 등을 이유로 반발하는 분위기다.
스카이브릿지는 설계와 시공 난도가 높고 유지관리 부담도 크다. 고층을 연결하는 구조물 특성상 안전 확보를 위한 구조 검토와 특수 시공이 요구된다. 규모에 따라 공사비만 200억~300억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외부 개방 조건이 붙을 경우 보안 설비와 운영 인력 비용까지 추가된다. 조합 입장에선 비용 대비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판단에 따라 설치를 포기하거나 대체 시설로 바꾸는 사례가 늘고 있다.
송파구 알짜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송파한양2차도 스카이브릿지를 없애기로 했다. 조합은 지난 21일 열린 현장설명회에서 건설사들에 스카이브릿지를 설계에서 제외해 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인허가 지연과 내부 반발 우려, 분담금 증가 등 현실적인 부담을 이유로 속도 중심의 사업 추진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모양새다.
비슷한 이유로 잠실주공5단지, 한남2구역, 성수전략정비구역 등에서는 스카이브릿지 설계안이 철회되거나 주민총회에서 부결된 바 있다. 잠실주공5단지의 경우 2023년 설계안에 스카이브릿지를 포함했으나 인허가 문제와 공공 개방 우려로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한남2구역도 서울시가 고도제한 완화 및 스카이브릿지를 허용하지 않으며 스카이브릿지 계획이 무산됐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스카이브릿지는 상징성과 화제성은 크지만 실제 인허가, 공사, 유지 측면에서 제약이 많아 조합과 건설사 모두 실익 중심의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향후 재건축·재개발 설계 트렌드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인허가 통과 가능성이 높은 실용적 설계가 확대될 전망이다. 정비업 관계자는 “외관 경쟁보다는 조망 특화, 분양가 경쟁력, 커뮤니티 효율화 등 실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흐름으로 전환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