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피 패러다임]① 상법 개정, 경영권 방어와 승계 난이도 급상승

이사 충실의무 확대와 3%룰 강화로 대주주의 소액주주 침탈 방지 일감몰아주기, 계열사 합병 통한 오너 일가 편법 승계도 어려워져

2025-07-04     이승용 기자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시사저널e=이승용 기자] 이사 충실의무 확대와 3%룰 강화를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되면서 그동안 국내 상장사들에서 횡행했던 대주주의 소액주주 주주가치 침탈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대주주 입장에서는 경영권이 이전보다 더 제약될 것으로 전망된다. 각종 우회로를 통해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기도 한층 어려워질 전망이다.

◇ 대주주만을 위한 경영 행태 없어질까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국회를 통과한 개정 상법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되는 것과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산해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이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되는 것 등 두 가지다.

기존에는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만 규정돼 있었다. 이에 대주주의 뜻에 따라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침탈하는 행위를 해도 처벌할 근거가 없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개정 상법은 유예기간 없이 통과 즉시 발효됐다. 이를 통해 기관 투자자 및 소액주주의 소송, 대표소송, 고발 등 권한이 한층 강화했다는 분석이다. 경영진으로서는 기존처럼 의사결정 과정에서 대주주의 뜻에 따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아질 전망이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이사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소송 리스크 증가, 경영권 공격 및 주주 관여 활동 확대, 주주 간 이견 발생 시 의사결정 지연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일상적인 경영활동을 수행하는 데 다소 차질을 빚을 수는 있다”며 “주당배당금 증액, 자기주식 매입 및 소각, 차등배당 시행 등 주주환원에 대한 요구의 유형이 더 다양해지고 요구의 빈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로 대주주의 편법 승계도 한층 어려워질 전망이다.

엄수진 연구원은 “이전까지는 특정 계열회사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사업 기회 유용, 부실 계열회사에 대한 자금 대여, 순환출자 형성, 불공정한 합병 비율, 물적분할 후 자회사상장 등 지배주주에게는 유리하고 소액주주의 권익은 침해하는 이사회의 결의 사항에 대해 이사의 책임을 묻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나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이사의 책임이 명확해지면서 대주주의 사익편취 행위 자체도 감소 및 억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박건영 KB증권 연구원도 “계열회사간 분할, 합병 등 지배구조 변화 시 지배주주에게만 유리한 의사결정은 향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와 함께 ‘3%룰’도 강화됐다. 지난 2020년 12월 상법 개정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감사위원 선임 시에 대주주 측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재산권 침해라는 재계의 반발에 사외이사가 아닌 이사가 감사위원을 맡을 시에만 적용하도록 했고 사외이사가 감사위원을 맡을 시에는 합산이 아닌 개별주주별로 3%만 의결권을 인정하기로 했고 1명을 분리 선출하도록 했다.

지난 2020년 3%룰이 도입되면서 몇몇 행동주의펀드들은 분리 선출하는 감사위원 몫에 자신들이 추천한 감사가 선임되도록 요구했다. 실제로 SM엔터테인먼트(얼라인파트너스)와 남양유업(차파트너스), 태광산업(트러스톤자산운용), BYC(트러스톤자산운용)의 경우 이들이 추천한 감사가 선임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사조그룹 같은 기업들은 최대주주 측 지분을 3% 단위로 쪼개는 편법으로 대응했다. 분리 선출하는 1명의 사외이사 감사위원은 개별 3%룰의 적용을 받기에 지분을 3%씩 쪼갠 대주주 측 뜻대로 임명할 수 있었다. 이를 막고자 이번 상법 개정에서는 감사위원 선임시 최대주주 측 의결권을 합산해 3%만 인정하도록 한 셈이다.

다만 이번 법개정으로 외국계 헤지펀드나 행동주의 펀드들이 연합해 특정 회사의 감사위원회를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다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행동주의펀드들의 이사회 진입 시도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여전히 부족 vs 보완 대책 있어야

다만 이번 상법 개정에서 집중투표제 및 분리 선출하는 감사위원 수 확대가 무산된 것을 놓고 반쪽짜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보유한 의결권을 특정 이사 후보자에게 몰아서 행사할 수 있게 허용하는 제도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소액주주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키기가 한층 용이하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상장사들은 집중투표제를 정관에서 배제하고 있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도입되지 않는다면 소액주주가 이사 선임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며 “결과적으로 대주주가 여전히 이사회 구성을 독점해 대주주 중심의 이사회가 유지되고 지배구조개선은 제한된다”고 분석했다.

분리 선출하는 감사위원 수를 1명에서 2명 이상 혹은 전원으로 확대한 안도 일단 보류됐다. 정다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분리선출될 수 있는 감사위원 수가 1명으로 유지될 경우 실질적으로 소수주주가 합산 3%룰을 적극 활용해 감사위원회 및 이사회에 진입시킬 수 있는 이사는 여전히 1명으로 제한된다”며 “그 외 다른 감사위원은 ‘1주 1표’의 비례적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사선임 단계를 거쳐야 감사위원으로 선임될 수 있으므로 이번 상법 개정을 통한 감사위원회 독립성 제고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도 공청회를 열어서 의견을 수렴한 후 이달 임시국회 내에 처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재계는 반발하고 있다. 전날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8단체는 국회 본회의 직후 공동 성명을 내고 “이사의 소송 방어 수단이 마련되지 못했고 3%룰 강화로 투기세력 등의 감사위원 선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우려했다.

재계는 배임 소송 남발 등 가능성을 보완하기 위해 우선 경영상 판단에 따른 결정에 대해선 배임죄를 면책해주도록 형법을 개정해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상속증여세 완화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수현 연구원은 “이번 상법 개정이 소수주주 보호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장치라면 자본시장 활성화 측면에서는 향후 상속·증여세 제도의 합리적 완화, 배당 분리과세 도입, 자사주 처리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 라인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