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인테리어

2025-07-04     Living sense

지구에게 미안하지 않은 인테리어.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상식이 된 지속 가능한 인테리어에 대하여.

기존의 벽과 마루를 그대로 활용하고 재활용 목재를 써서 만든 대형 테이블이 있는 스코틀랜드의 에어비앤비.

영국 여행 중 스코틀랜드의 한 조용한 마을에서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했는데, 기대 없이 도착한 그곳은 단순한 숙소가 아닌 ‘지속 가능한 인테리어의 박물관’ 같았고, 아니 어쩌면 지구가 좋아할 만한 집이었다;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독특한 감촉과 따뜻함에 놀랐는데, 알고 보니 지역에서 재활용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바닥재였고, 차갑고 미끄럽다는 고정관념과 달리 따뜻하고 견고하며 해변 자갈을 재구성한 듯한 패턴이 감각적이었다; 더 놀라운 건 벽과 천장으로, 주인에게 물어보니 밀짚(Straq bale insulation)을 단열재로 사용했는데,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나 보던 ‘밀짚 집’이 이제는 유럽에서 친환경 고효율 주택의 재료로 쓰이고 있었으며, 밀짚은 농업 부산물이라 공급이 쉽고 열 보존 능력도 뛰어나며 생분해까지 가능해 ‘지구를 위한 완벽한 재료’로 주목받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북 부안의 ‘파랑곳간’이라는 카페가 볏짚을 단열재로 적용한 사례가 있는데,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한 이곳은 시골 곡물 창고를 재생한 지속 가능한 건축물로 볏짚을 넣은 두터운 벽채를 직접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이곳에서는 직접 생산한 쌀을 전시 및 판매하며 작가 작품 등 지속 가능한 인테리어를 경험할 수 있다. 거실에는 다채로운 무늬의 카펫이 깔려 있었는데 그 역시 재밌는 사연이 있었다. 이 카펫은 세탁이 가능할 뿐 아니라, 재활용도 가능했다. ‘카펫도 빨 수 있어?’ 하고 놀랐지만 실제로 유럽의 친환경 인테리어 시장에선 이런 소재가 점점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섬유로 만든 카펫은 단순히 ‘에코’를 넘어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오래 쓰고, 고쳐 쓰고, 결국엔 다시 자원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이 숙소를 경험하고 나니, 유럽의 지속 가능한 인테리어 트렌드가 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지 체감이 됐다. 여기선 ‘예쁜 인테리어’보다 ‘가치 있게 잘 만든 인테리어’가 미덕이고 그것이 곧 ‘환경을 존중하는 라이프스타일’로 연결된다. 사실 유럽 각국은 지속 가능한 인테리어를 단순한 ‘디자인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으로 보고 있다. 스코틀랜드만 해도 지역 자원과 장인의 기술을 활용해 지역 경제를 살리는 동시에 탄소 배출을 줄이는 순환경제 모델을 추진 중이다. 영국 본토에서는 BREEAM 같은 친환경 건축 인증은 물론, 인테리어 전용 탄소 감축 지표까지 생겨났다. 프랑스는 ‘가구·인테리어 제품 생산자에게 재활용까지 책임지라’는 강력한 EPR(생산자 책임확장 제도) 정책을 도입했고, 독일이나 북유럽 국가들은 아예 ‘친환경 인테리어 공공 조달 기준’을 국가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런 제도적 뒷받침 덕분에 유럽의 지속 가능한 인테리어 시장은 매년 성장 중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유럽의 친환경 인테리어 자재 시장은 2024년 기준 약 600억 유로 규모로 추정되며, 연평균 10% 이상 성장 중이다. 점점 더 많은 소비자가 더 이상 “이게 예뻐요?”보다는 “이게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 수 있죠?”를 먼저 묻는다.

스코틀랜드에서 만난 에어비앤비는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체크아웃하면서 마지막으로 집주인에게 물었다. “이렇게 인테리어를 하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나요?”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당장은 어느 정도 비용이 들죠. 하지만 난방비는 반으로 줄었고, 이 집은 나보다 더 오래 살 거예요. 그리고 집이 팔릴 때는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겁니다.”

세탁 가능하고 재활용성이 높은 카페트를 적용한 스코틀랜드의 에어비앤비.

 한때는 벽지를 바꾸고, 조명 하나 달고, 소파만 새로 들여놔도 ‘인테리어 좀 아는 사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기후위기와 자원 고갈이 피부로 느껴지는 지금, 인테리어에도 새로운 가치 기준이 필요하다. 바로 ‘지속 가능성’이다. 이제는 인테리어도 지구와 공존할 수 있어야 하고, 나의 취향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지속 가능한 인테리어(Sustainable Interior Design)’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공간을 설계하고 채우는 데 있어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책임을 함께 고려하는 사고방식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지구에게 미안하지 않은 인테리어’다. 지속 가능한 인테리어는 전 생애주기(Lifecycle)를 생각한다. 자재의 생산, 가공, 운송, 사용,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과 자원 소비를 최소화하고, 동시에 인간에게 건강한 실내 환경을 제공하려는 목표를 가진다. 이를 위해선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재활용이 가능하거나 이미 재사용된 자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둘째, 자재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덜 들고, 유해물질이 최소화되어야 한다. 셋째, 한 번 만들면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게 높은 내구성과 긴 수명을 보장해야 한다. 넷째, 실내 공기질을 해치지 않는 저휘발성 유기화합물(VOC) 자재가 사용되어야 하며, 다섯째로는 지역 자원을 활용해 불필요한 운송 에너지를 줄이는 전략도 함께 요구된다.

해외에서는 이미 지속 가능한 인테리어를 제도화하고 산업화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에서는 ‘LEED for Interior Design and Construction’이라는 세부 인증 체계를 통해 인테리어의 친환경성을 평가하고 있다. 건물의 외관과 구조뿐 아니라, 내부 마감재, 조명 시스템, 가구 구성 등이 얼마나 친환경적인지를 인증으로 보여주는 시대다. 단순히 ‘에코’라는 말만 붙인다고 다 믿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영국은 한 발 더 나아가 ‘넷 제로 인테리어(Net Zero Interiors)’라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다. 말 그대로 인테리어를 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총량을 ‘0’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다. 유럽 전역에서 활용되는 BREEAM 인증은 자재 선택부터 폐기 단계까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평가한다. 프랑스는 보다 직접적이다. 2022년부터 가구와 인테리어 산업에도 ‘EPR’을 도입해, 제조자가 제품의 회수와 재활용까지 책임지도록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친환경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LG하우시스, 한샘, 현대리바트 등 주요 인테리어 기업들은 저탄소·저VOC 자재를 앞다투어 개발하고 있고, 친환경 건축물 인증(G-SEED)을 받는 민간 건물의 수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속 가능한 인테리어를 일반 소비자 관점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나 제도는 부족한 편이다. 친환경 자재를 선택하는 소비자는 늘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환경에 도움이 되는 선택인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소재’다. 지속 가능한 인테리어는 결국 어떤 재료를 쓰는가에서 시작한다. 최근 인테리어 업계에서는 ‘지구를 닮은 자재’들이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나무는 나무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면서도 강도와 탄성이 우수해 바닥재, 가구, 벽면 등에 폭넓게 사용된다. 또 하나의 강자는 코르크다. 나무를 베지 않고도 수확이 가능하며 방음·방습 성능이 뛰어나 벽 마감재나 바닥재로 활용도가 높다. 여기에 바다에서 수거된 폐플라스틱을 압축해 만든 타일이나 벽면 마감재, 대마초 줄기를 가공해 만든 ‘헴크리트(Hempcrete)’ 같은 친환경 콘크리트 대체재도 있다. 이 자재들은 단지 친환경적일 뿐 아니라 내구성과 단열 성능에서도 전통 자재를 뛰어넘는 경우가 많다. 버섯균사체(Mycelium)로 만든 가구나 재활용 천으로 만든 커튼 등은 소재의 상상력을 확장시킨 사례로 꼽힌다. 물론 에너지 절약을 위한 단열과 창호, 그리고 냉난방과 공기 순환 시스템, 물 절약형 변기 등 지속 가능한 인테리어의 적용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지속 가능성과 미학이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들이다. 지속 가능한 인테리어는 기술과 소재를 넘어, 철학과 가치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의 발전 방향은 분명하다.

유명훈 @sustainable.mark
국내 1호 지속가능경영 컨설턴트이자 ESG 전문가. ‘마크’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koreaCSR’ 대표이자 ‘존경과 행복’ 출판사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밀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의 저자로 지난 20여 년간 100개 이상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매년 100회 이상의 강연을 소화하고 있다. 강연할 때 입는 옷 하나도 지속 가능한 브랜드의 제품으로 착용할 정도로 세심히 신경 쓰는 그는, 현재 한서형 향기 작가와 함께 경기도 가평 ‘존경과 행복의 집’에서 거주하며 일과 삶 모두에서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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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송정은
words    유명훈 @sustainable.m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