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온, 투자 드라이브 끝 회수 국면 진입하나

글로벌 전기차 시장 부진 속 출하량 증가율 1위 북미·유럽 공장 가동률 회복···AMPC 수령도 최대 예상 “공격적 투자 끝, 이제는 실적 거둘 차례” 평가

2025-07-02     정용석 기자
SK온의 미국 조지아 배터리 생산 거점. / 사진=SK

[시사저널e=정용석 기자] SK온이 유럽과 미국 공장의 가동률을 빠르게 끌어올리며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국면을 정면 돌파하고 있다. 올 1~5월 글로벌 배터리 사용량 하락에 직면한 삼성SDI와 달리 SK온 배터리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18.1% 증가하면서 ‘선방’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고객사들의 수요 회복에 힘입어 올 2분기 배터리 출하량이 전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데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에 따른 보조금 수령 규모도 분기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최근 유럽 헝가리 3개 공장의 평균 가동률을 8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코마롬 1·2공장(총 17.5GWh), 이반차 공장(30GWh)을 합쳐 47.5GWh에 달하는 현지 생산능력 중 대부분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한때 50%대까지 떨어졌던 가동률을 회복한 배경엔 유럽 전기차 시장의 회복세와 폭스바겐그룹의 판매 확대가 있다. SK온 관계자는 “주요 고객사인 폭스바겐그룹의 전기차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헝가리 공장 가동률이 작년과 비교해 유의미하게 올라왔다”고 밝혔다. 

SK온은 폭스바겐의 ID.4, ID.7, 아우디 Q4 e-트론 등 주력 전기차 모델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이들 차량은 최근 유럽 시장에서 판매량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폭스바겐은 올해 1분기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약 15만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113% 성장했다. 시장 점유율도 26%로 테슬라를 제쳤다.

폭스바겐 코리아의 2023년형 ID.4. / 사진=폭스바겐 코리아

미국 공장도 ‘풀가동’ 체제로 접어들었다. SK온의 조지아 공장은 3~4월 기준 가동률이 100%에 근접했다고 알려졌다. 2분기 배터리 출하량은 약 4.3GWh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15% 이상 증가한 수치다. SK온이 미국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린 건 현대차그룹 영향이 컸다. SK온은 현대차가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 배터리를 단독으로 공급하고 있다. 

납품 물량 증가에 따라 받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수령은 덤이다. IRA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본토 내에서 생산된 배터리에 대해 셀 기준 1kWh당 35달러, 모듈 기준 45달러를 세액공제로 지원한다.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2분기 기준 약 2413억원 규모의 세액공제를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도 시행 이후 분기 기준 최대 규모다. 증권가에서는 SK온의 2분기 영업손실이 전 분기 2993억원에서 356억~1178억원 수준으로, 많게는 90% 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미국 전기차 세액공제가 올해 종료되는 만큼 연말까지 미국 생산 전기차에 대한 선호도가 많이 증가할 것”이라며 “SK온이 미국 설비를 90% 이상 가동 시 적자 대폭 축소, 흑자 전환도 가능해 보인다”고 했다.

연간 누적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 자료=SNE리서치

글로벌 통계에서도 SK온은 ‘반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5월 세계 전기차 배터리 총 사용량은 401.3GWh로 전년 대비 38.5% 증가했다. 이 가운데 SK온의 사용량은 16.8GWh로 18.1% 증가했다. LG에너지솔루션(39.9GWh, +14.3%)과 삼성SDI(13.1GWh, –8.8%)에 비해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삼성SDI는 사용량이 줄며 시장 점유율도 4.9%에서 3.3%로 하락했고 순위는 4위에서 7위로 밀렸다. LG에너지솔루션의 시장 점유율은 10.0%로 2.1%P 하락했고 배터리 사용량도 글로벌 평균 성장률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SK온은 점유율은 0.7%P 소폭 하락한 4.2%로 선방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간 SK온은 국내 배터리 3사 가운데 가장 공격적인 설비투자를 감행해 왔다. 2021년 SK이노베이션에서 물적분할된 이후 미국·유럽을 중심으로 신규 공장을 빠르게 확충하며 글로벌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재무건전성 악화와 대규모 적자라는 후유증을 안았다.

SK온은 지난해까지 누적 20조원 이상을 설비투자(CAPEX)에 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선투자’ 전략은 초기 수익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개되며 연간 1조원이 넘는 대규모 적자를 초래했다. SK온은 2023년 한 해에만 1조587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SK이노베이션 연결 실적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주요 생산기지의 투자 집행이 대부분 마무리되면서, 이제는 본격적인 ‘수익 회수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지난해 설비투자 규모는 2023년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올해 설비투자 규모는 지난해 절반 이하인 3조5000억원 규모를 지출할 예정이다. 투자 규모의 정점이 지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지난해 세웠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흑자’ 목표 달성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EBITDA는 기업이 실제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이는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SK온의 지난해 EBITDA는 –2714억원 수준이었지만 본업인 배터리 사업 수익성이 회복되고 AMPC 수취 예상액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올해부터 ‘현금창출형’ 계열사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 SK엔텀과의 합병 효과도 본격적으로 반영된다. SKTI는 최근 수년간 연 4000억~6000억원 수준의 EBITDA를 기록했다.

모회사 입장에서도 의미는 크다. SK이노베이션 연결 기준에서 SK온의 투자 부담이 줄어들수록 타 자회사나 신성장 부문에 대한 자금 배분 여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초부터 “단기적으로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시장에 집중하겠다”며 SK온 중심의 리밸런싱 전략을 명확히 한 바 있다.